<어쩔수가없다> 나무 이야기를 할 수밖에

화분 자리, 손바닥, 햇빛, 그리고 벌목 장면까지

by 잭옵

다 보고 나서 영화의 스토리를 하나씩 되돌아보았다.


일단 카메라의 움직임, 구도, 이미지 좋았다.


거울, 디스플레이의 반영을 이용한 장면도 여럿 있었는데 “멋지다”라는 말만 나온다.


명감독다운 그림들이다. 웃프면서도 사회비판적이고 2시간이 넘지만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다만 여기저기 숨겨 있는 상징, 은유들은 지적 간지럼을 일으켰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어쩔수가없다> 알바 유령의 도움이 필요하다.


오늘도 나는 아무도 오지 않는 폐관된 극장에 어쩔 수 없이 불을 켠다.


사람 대신 먼지가 앉아 있는 좌석들 사이로 걸어가


늘 그렇듯 F열 10번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오늘은 이렇게 중얼거린다.



“컷과 컷 사이를 설명해 주소서. 노트의 유령이시여.”



스크린 뒤 어딘가에서


퇴근하지 못한 알바의 목소리가 느릿하게 걸어 나온다.


오늘 내가 할 일은 단순하다.


그가 중얼거리는 과몰입 노트를 최대한 알아볼 수 있는 인간어로 받아 적는 것.


집중하자.



“느낌으로는 나무가 중요한 건 알겠는데 전체적으로 설명 좀 해주시죠.”



[퇴근 못한 알바 유령]

“이 영화는 사람 이야기이지만 나무 이야기라고 봐야지.”



[알바 유령의 과몰입 노트에서]


사람 = 나무 = 종이

대놓고 주는 힌트는 아내 미라(배우 손예진)가 만수(배우 이병헌)에게 장난처럼 “식물인간”이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친절한 찬욱 씨.


<어쩔수가없다> 제목에도 의미가 숨어있다. '나무 수(樹)' 로 본다면 어찌할 나무,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름 만수. '일만 만(萬)'과 '목숨 수(壽)'로 상상할 수 있다. 만년만큼 장수하라는 이름인데 나무만큼 오래 사는 생물체는 없다. '일만 만(萬)'과 '나무 수(樹)' 로도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경우는 수많은 나무가 있는 숲을 떠올릴수 있고 마지막의 벌목장면과 연결된다.


만수는 오랜 기간 제지회사를 다녔고 올해의 펄프상을 받기도 했다. 만수는 실직 후 다른 직업으로 전환하지 못할 만큼 제지업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고집한다. 부인도 다른 일을 하라고 만수에게 권유하고 같은 처지인 구범모 (배우: 이성민)에게 그의 부인 이아라 (배우: 염혜란)도 다른 일을 하라고 절규하듯 소리치지만 눈물 어린 눈으로 제지업을 호소한다.


주인공 만수는 집에서 화분을 돌보고 분재를 손보는 게 취미.


자기 손바닥을 종이처럼 메모하는 데 사용한다. 사람 = 나무 = 종이 등식이 또 한 번 성립한다. 좀 더 생각을 확장해 보면 영화는 자본주의의 폭력성, 가장의 무게, 사람의 타락을 만수라는 종이에 써 내려갔다고 볼 수 있다.


경쟁자 고시조(배우 차승원)는 살해당하고 분재용 철사로 완전히 구겨져 공처럼 묶여 땅에 묻힌다. 자본주의에서는 사람도 필요에 따라 잔인하게 구겨질 수 있는 존재로 보여준다.


주인공 만수는 실직 이후 점점 죽어가는 나무가 된다. 제지회사 '문제지'의 작업반장인 박선출(배우 박휘순)을 죽이려고 화분을 들었다가 화분에서 떨어지는 물을 뒤집어쓰면서 각성하고 포기하는 장면은 죽어가는 나무가 물로 잠시 살아나는 장면이다. 바로 이어지는 화분 있던 자리와 자신의 일자리를 바꾸어 이야기하는 부분도 만수가 나무라는 걸 말해준다. (화분 자리 = 일자리 = 한 사람이 서 있을 자리)


만수는 점점 타락해가면서 태양과는 멀어진다. 그래서 회사도 '태양제지'에서 '문제지(moon 제지)' 로 옮겨가게 된다. 또 문제지는 중의적으로 문제적 종이라는 뜻이 될수 있고 이는 문제적 인간 만수를 말하기도 한다.


아들의 죄를 상징하는 휴대폰을 땅에 묻고 그 위에 나무를 심는다. 또 만수의 죄를 상징하는 시체 위에도 나무를 심는다. 그리고 “더러운 곳에 심어야 더 잘 자란다”라고 말하며 애써 자기 위로를 하려 하지만 딸이 그 나무 주위에 벌레가 너무 많다고 말해 그렇지 않을 거란 걸 보여준다. 죄는 결국 사람을 해친다고 말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벌목 장비가 거대한 고목들을 순식간에 뽑아 잘라 내버리는 장면은 기업의 대량 해고를 연상시킨다.


아래 포스터를 보자. 답 나오지 않는가? 또 친절한 찬욱씨





결론)

“사람은 나무다”라는 알레고리를 통해 실직으로 인한 한 가장과 한 가정의 도덕적 타락 그리고 이런 상황으로 몰고 간 자본주의를 이야기한다.


[퇴근 못한 알바 유령]

“오늘 과몰입은 여기까지.

네가 나무라고 해서 욕조에 너무 오래 들어가 있지는 말라고.”

휘-리릭.

스크린 뒤 어둠 속으로 기척이 사라진다.

남은 건 꺼진 빛, 먼지

그리고 어디선가 베어 나가고 있을지도 모를

숲에 대한 생각뿐이다.



※갑자기 글 쓰다 궁금해서 ai에게 난 무슨 나무 같니?라고 물어보니 은행나무 같답니다. 이유는 냄새가 나지만 잘 씻으면 몸에 좋다고...... 코도 없으면서.


어쩔수가없다.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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