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불 위의 가래떡과 눈폭탄 특보

우신이 빙의한 겨울밤, 창밖을 기록하는 한 가지 방식

by 잭옵

숯불 위의 굵은 가래떡 심정으로 뒹군 하루였다.


이쪽 방바닥에서 저쪽 방바닥까지 구르지만 숯불로 떨어질 일은 없으니 걱정은 없었다.


아무 이유 없이 배경음악처럼 켜져 있는 tv


예상치 못한 대설 특보, '눈폭탄' 이란다.


잘 익었나 젓가락에 꽂혀 세워지는 가래떡 모냥


자리에 앉았다.


"눈이라고?"


무료한 연못에 돌을 던져 파동을 일으키는 아이들 마냥


마음이 출렁였다.


"흐흐흐 재밌겠는걸"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녀도 동의하고 있었다.


손등이 간질거렸고 방울을 위로 올려 한번 흔들고 책위에 내려놨다.


왼손은 이미 각주쌀통을 뒤적이고 각주쌀 하나를 뽑았다.


부채는 '우신예찬' 책을 깡총 디디고


한 바퀴 몸을 뒤틀어 부드럽게 몸을 펼쳤다.




"어리석음만이 인간에게 영원한 행복을 준다.


어리석음만이 인간에게 영원한....


어리석음만이...."




그녀는 찌뿌둥한 몸을 늘려 기지개를 피고


몸을 좌우로 두어 번 흔들며 말했다.


"이렇게 방안에 하루 종일 뒹굴다니. 아저씨도 대단혀. 참 말로.


그러니까 이렇게 배가 나오지 에혀~"


하며 두 손으로 양쪽 배를 잡았다.


"어디 보자~~ 오늘은 이 아저씨가 무슨 각주쌀을 뽑으셨을까나"


장난스럽게 쬐끔씩 펼치기 시작했다.


'기술?'


'적기술?'


'학적기술?'


'현상학적기술........ 음'


그녀는 두 손등을 맞대고 손가락에 힘을 쫘악 폈다.


뭉툭한 손가락에 매니큐어라도 바를 듯.


그건 잘못된 생각이란 걸 이내 깨달았는지 고개를 저으며 일어났다.


우신은 부엌으로 미끄러져 사라지고


믹스커피가 가득 들은


적어도 두 개는 탄 머그잔을 왼손에 아슬아슬하게 들고 나타났다.


어어~ 긴 코트 소매가 커피에 닿은 것 같았다.


오른손으로는 의자를 질질 끌고,


그녀는 머그잔, 의자 그리고 그녀의 몸을 하나씩 창가에


조심스레 자리 잡았다.


추위에 움직이기 싫은 창문은 창틀을 놓아주지 않았다.


끼~끼~ 끼이~ 익


창문은 줄다리기 끝에 넘어지듯 열렸다.


그녀의 마음도 시원하게 열린 듯 떠들었다.


"호호호호호 상쾌하다"


"이제 마음껏 혼자 떠들어 댈 테다"


"가장 멀리에 산이 흐릿한 짙회색 빛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테두리는 옅게 번져 보인다.

그 앞쪽으로 오른쪽에는 흐릿 성당 첨탑에 흰 눈이 쌓여가고 있다.

위에 빨간 십자가는 산타클로스 모자를 떠올린다.

흰 크림이 잔뜩 얹어진 케이크 위에 빨간 체리가 생각난다.

필아우티아 여신 생일파티에서, 그 케이크를 그녀 얼굴에 던지던 장면이 번쩍, 눈앞에 다시 뜬다.

그 왼쪽으로는 네다섯 층 되는 상가 건물과 다가구 건물들이 비슷한 키높이로 울퉁불퉁하다.

가로등과 가까운 곳은 주황빛이지만 벗어날수록 회색빛에 희끗한 번짐이 간혹 느껴진다.

중간중간 네온빛이 번쩍 번쩍이면서 회색빛을 밀어낸다.

그 앞쪽으로는 중간중간 흰색으로 덮인, 전체적으로는 주황빛과 짙은 검은색 길이 보인다.

두껍고 긴 외투를 입은 사람 두명은 목은 짧게 손은 주머니에 감춘 채

뽀드득 소리를 내며 서로 교차하고 있다.

그 옆에는 길가에 긴 빗자루를 들고 빵빵한 패딩을 입고 있는 남자가 있다.

희미한 "후~ 후~" 하는 소리에 맞춰 입에서는 김이 솜처럼 생겼다 흩어졌다 한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몸에서 열기가 올라오는 것처럼 보였다.

나의 바로 앞 창문에는 뿌연 습기가 점점 사라지며

남자가 커피잔을 들고 있는 모습이 바깥의 전경과 겹쳐 보인다.

또 집안의 불빛인지 바깥의 불빛인지 헷갈리는 빛들이 창문에 겹쳐 보인다.

또 창문 여기저기에는 눈이 부딪혀 들릴 듯 말 듯 소리를 하얗게 만들고 이내 또르륵 흘러내린다.

모든 이미지에 하얀 눈이 깃털처럼 내려와 하얀 점들이 겹겹이 쌓여 보인다."

라고 말하며 그녀는 앉아있다.



'나는 이제 마음껏 혼자 생각할 테다.

한 아저씨가 긴 코트를 에워 입고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코트 안으론 오른 다리를 왼다리 위로 포개 앉은 모습이다.

가끔 오른발은 느린 리듬에 맞춰 살짝살짝 튕겨준다.

머그잔을 들고 있는 손목의 각도가 많이 안으로 굽혀있다.

반대 손등으로는 수염 난 턱을 괴고 바깥을 보고 있다.

그리고 간간히 턱을 괴었던 손은 있지도 않은 앞머리를 정리했다가 다시 귀밑머리를 정리한다.

커피의 김이 올라오면 내려앉는 눈과 만나 얇은 공백을 만든다.

그 공백이 잠깐 뿌연 선으로 남는다.

커피 한 모금에 바깥을 한번 응시했다가 네댓 마디씩 혼자 중얼거린다.'


촵!


부채를 접었다


코트는 스스로 마르길 바라며 소파에 펼쳐 던져 놓고


부엌에서 머그잔을 씻었다.



우신 현상학 기술.png





각주쌀통에서 굴러 나온 설명들

후설의 ‘현상학적 기술’
독일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1859–1938)은 “세계가 실제로 어떤가”보다 “경험이 의식에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묘사하는 일을 중시했다.
현상학적 기술은 사물·감정·생각이 의식에 주어지는 방식을 과학·심리 이론을 섞지 않고 느낌,양상 그대로 적어보는 기술을 말한다.


필아우티아(Philautia)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에는 우신 곁을 지키는 동료로 필아우티아(Philautia, 자기 사랑)가 등장한다.
이름 그대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힘”을 의인화한 존재로 적당한 자기애 덕분에 사람은 실패를 잊고 또 살아갈 수 있다고 우신은 말한다.

자기애로 가득 찬 여신의 얼굴에 케이크를 묻히는 장난을 치기에는 이만한 대상도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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