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 대신 불려야 할 자기 자리
어제 낮에 짤막한 예약 전화가 왔다.
많은 경험이 베어나는 점잖은 목소리였다.
아주 짧게 용건만 말하고 통화는 끝났다.
용건은 오늘 우신님과 잠깐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짤막하고 짧고 잠깐, 꾀어져 있는 듯한 단어들.
이름은 김부리라고 했다.
김부리? 그를 만나기 전까지 이름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이름에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추측해 보고
도대체 누가 그렇게 지었단 말인가? 혼자 따져 묻기도 했다.
김부리 , 김부리, 부리. 모르는 사람 이름을 혼자 수차례 불러봤는데 역시 이상했다.
끼~익 소리가 났다.
그런데 이상했다. 사락사락 종이발소리가 나야 하는데 나질 않았다.
끼~익과 사락사락은 리듬처럼 이어지는 게 보통인데
오늘 손님은 변주된 리듬으로 나타났다.
나도 그와 맞춰 엇박으로 인사하게 되었다.
"엇~ 여 여기는 어리석음을 드립니다."
상대는 짧은 몸으로 정중히 인사하며
"달나라에서 못 찾은 어리석음을 찾으러 왔습니다."
상담자를 보니 왜 사락사락이 오선지에서 사라지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상당히 키가 작았다.
아마 1미터를 조금 넘는 걸로 보였다.
사람들 말로는 얼추 다들 “난장이”라고 부르고 지나갈 몸이었다.
친밀감을 높이려고 고객의 이름을 부르며
"어제 전화주신 김부리님 맞으시죠?"
듣고 싶던 이름을 불러주니 썩 기분이 들뜨신 고객얼굴
"네 어제 전화했던 김불이입니다."
손짓으로 자리를 권하며
"우선 편히 앉으시고 차차 이야기를 나눠 주시죠"
나도 자리를 잡고 펜으로 종이에 메모할 준비를 했다.
우선 이름 '김부리' 한자 한자 적고 그를 쳐다보면서 준비되었음을 알렸다.
기억을 더듬으면서 천천히 입을 떼었다.
"저는 김불이라고 합니다."
이미 친숙한 이름인데.
다시 확인시켜 주는 그의 얼굴.
지금 보니 공장의 기름때 깊은 상처들과 주름이 겹쳐 보였다.
"선생님도 보시다시피 저는 키가 남들보다 좀 작습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삶은 좀체 나아지지를 않네요.
참 열심히 살았어요.
앉아서 칼도 갈아보고 건물에 올라가 유리창도 닦아보고 수도파이프 일도 좀 했었죠."
손동작으로 칼도 갈고 유리창도 닦는 시늉을 하는데
손톱사이 깊이 박힌 기름때가 사실을 증명했다.
"일거리가 손에 잡히면 잡히는 대로 해왔는데.
형편은 제 작은 키처럼 펴질 생각을 하질 않네요.
이게 다 제 이름 김불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 이렇게 오게 되었답니다."
나는 조용히 김부리라고 적은 이름에 동그라미를 여럿 그렸다.
방울을 잡고 한번 흔들고
각주쌀통을 가리키며 하나 뽑으라고 했다.
그는 짧은 몸을 일으켜 항아리에 손을 깊숙이 넣어 각주쌀하나를 뽑았다.
그의 손에 있는 각주쌀이 더 희게 보였고
그도 그걸 알았는지 냉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번엔 나의 차례,
"어리석음만이 인간에게 영원한 행복을 준다.
어리석음만이 인간에게 영원한....
어리석음만이...."
부채를 피고 어리석은 그녀를 불렀다.
이내 나는 나이면서, 동시에 그녀인 나를 옆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그녀는 시작부터 나에 대한 핀잔으로 입을 열었다.
"이런 이런 몹쓸 아저씨. 김부리가 뭐예요? 김부리가? 무슨 김주둥이라고 하지???? 에휴... "
이렇게 말하면서 김부리라는 글씨에 두줄을 박박 긋고 다시 정중하게 김불이라고 적었다.
김불이 씨도 살짝 엉덩이를 들어 나의 실수를 확인했다.
"그래도 난장이라고 쓰지는 않았네요"
그녀는 대화를 원래자리로 되돌려 놓으려 혼자 말하며
"무슨 각주쌀을 뽑으셨을까? 어디 볼까나?"
"알튀세르의 '호명'을 뽑으셨네요."
하면서 각주쌀을 펼쳐서 그에게 가까이 보여줬다.
그리고는 책상에 잘 펴놓고
잠시 쉬고 있던 방울을 들고 강하게 흔들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없이 방울만 크게 떠들게 했다.
왜 이렇게 방울만 흔들지 하고 생각할 때쯤까지 흔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방울을 가만히 종이 위에 올려놓았다.
"김불이 씨"
그녀가 그를 불렀다.
"김 불 이 씨"
그녀가 그를 또 불렀다.
"김"
"불"
"이"
"씨"
그녀가 한번 더 한 글자 한 글자 불렀다.
이름이 지나간 신당 안에는 공백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약간 흐트러진 숨소리가 틈을 찾아 새어 나왔다.
그의 눈가 주름이 흔들렸지만 그는 눈을 감았다.
그는 몸을 들었다가 옆으로 틀며
부스럭 소리에 어색함을 숨겼다
이런 분위기를 못 견뎌하는 우신은 창문을 바라보며
"왜 이렇게 춥지?
이 아저씨는 도대체 난방을 왜 안 하는 거야?
내가 벌어준 돈은 다 어디다 썼데????"
그는 약간 눌린 톤의 목소리로
"그렇게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들 저를 '난장이'라고만 부르죠.
키 작은 외모도 외모지만 제가 하는 일도 그렇고 형편도 절 닮아 초라해서 저를 그렇게 부르는데.
'난장이'라는 말은 저를 더 작게 만들거든요."
그녀는 고개를 저으면서
“놉 놉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죠. 아저씨."
그리고 그녀는 책상 위 종이를 가리키며 혼자 중얼댔다.
"딱. 요 프랑스 할배가 말한 대로네... "
"누가 '야, 난장이!' 부르면 아저씨는 몸이 먼저 돌아가잖아요.
생각은 나중이고. 맞죠?"
그는 부인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그녀는 종이에 '난장이'라고 적더니 그 옆에 또박또박 써 내려갔다.
‘키 작은 김불이’
"다음부턴 속으로라도 이렇게 받아쳐 주세요.
키 작은 김불이다 이눔아 하고."
'야, 난장이!'에 자길 부르는 줄 놀랐던 그는
"말은 안 했지만 난장이 소리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그녀는 투덜대듯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문제죠. 왜 좋은 이름 놔두고 말이야."
놀란 듯 그는 그녀를 쳐다봤다.
"좋은 이름이라고요? 김불이가 좋은 이름인가요?"
그녀는 손등으로 이마를 치며
"암요~~ 그럼요~ 좋은 이름이죠.
가는귀먹은 이 아저씨같이 '불이'를 '부리'로 듣는 사람한테만 빼고"
"그리고 제 생각에는 책제목도 '김불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었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입니다. "
그녀는 주먹을 쥐어짜며 파이팅 하는 포즈를 취했다.
이후 우신은 김불이 씨에게 싸게 제를 올려준다고 영업을 했다.
김불이 씨는 어리석은 척 영업에 넘어가줬다.
달 밝은 보름날
'김불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라고 쓴 큰 종이를
어느 굴뚝 위에서
휘~~ 태워 날려 보냈고 잘 날아갔다.
각주쌀통에서 굴러 나온 설명들
– 알튀세르의 ‘호명(interpellation)’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사람들이 어떤 이름이나 호칭에 무심코 “네” 하고 반응하는 순간 그 말이 그 사람의 자리가 된다고 보았다. ‘야, 난장이!’라는 부름에 먼저 몸이 돌아보는 김불이의 모습은, 이미 오랫동안 그 말을 자기 몫으로 받아들여 온몸의 습관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