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맞춤 학원

선생님 주무세요?

by 잭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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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딸랑'


편의점에서 담배만 사고 나왔다. 무심코 담뱃갑 뒤를 뒤집었다.


경고 문구는 수십 번 봤는데도, 볼 때마다 놀란 심장을 움켜쥐게 된다.

"폐암 이전에 심장마비 걸리겠다."


'폐암으로 가는 길'
'심장마비로 가는 길'
'뇌졸중으로 가는 길'


병원 앞으로 수많은 길이 모여들어가는 걸 상상하며,

"결론은 병원으로 가는 길..."


"담배 피우지 말라는 이야기군"

혼자 불만투로,


"넵. 국가가 이렇게까지 날 생각한다면. 끊겠습니다."

의지 없는 말로 국가를 다독였다.


머릿속으론 병원 앞길들을 생각했지만 발은 우신당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머리와 발, 갈길이 엇갈려서 인지,

살짝 언 길이 미끄러워서인지 작두날 위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무당처럼 허공을 몇 번 헛짚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깔깔대며 웃는 그녀의 얼굴이 휙 지나갔다.

엉덩이의 아픔이 척수를 지나기도 전에 이미 벌떡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좌우로 고개를 돌려 수치스럼의 목격자가 있는지 찾았다.

두 명이 주위에서 걸어가고 있었지만, 미끄러운 길을 조심하느라 다른 사람을 쳐다볼 여유는 없어 보였다. 다행이었다.

그래도 양 옆 카메라들이 숨죽여 비웃고 있는 게 신경이 쓰였다.


뒤늦은 얼얼함이 올라오자 다시 병원 앞의 수많은 길들이 떠올랐지만 우신당으로 재촉해 걸어갔다.


건물 안으로 한 남자가 막 들어서고 있었다.

말끔한 포마드 헤어스타일, 갈색 뿔테안경, 짙은 회색의 롱코트와 한쪽으로 맨 큰 서류가방이 던져 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조급해 보였다.


켜져 있는 핸드폰을 왼손으로 들고, 오른손으론 당겨야 하는 문을 밀며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밀었다.


"저 혹시 어리석음을 찾으러 오셨나요?"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그는 문을 한 번 더 밀었다.

그제야 ‘당기시오’가 눈에 들어온 얼굴로,


아주 작게 말했다.
"멍청하게 당기시오를 못 봤네..."


그제야 나를 쳐다보면서 우신당의 인사법이 뒤늦게 떠올랐는지,
"아 네~ 어리석음을 배우러 왔습니다."
가까스로 말했다.


빙글빙글 다섯 층을 돌아 올라갔다.


살짝 숨이 찬 채, 우리는 우신당 안으로 들어갔다.


문은 끼~ 익 하고 울었다.

종이발은 사락사락 대답했다.

삐그덕거림을 밟고 들어가,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그의 두툼함 안주머니에서 명함하나를 건네받았다.

'박주야 원장. 눈맞춤 학원. 선생님과 눈 맞추는 1:1 관리'


두툼한 안경에 빛이 반사되어 그의 시점이 어디 있는지 몰라 명함과 얼굴을 번갈아 봐야 했다.


"반갑습니다. 요즘 기말고사 때문에 바쁘실 때죠?

바쁘신대도 불구하고 무슨 일 때문에 오셨을까요?"


그는 아까부터 들고 있던 핸드폰을 자리옆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선생님, 제가 조그만 학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학원운영은 잘되고 있는데 갈수록 제 생활이 불안하고, 조급하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음. 비유하자면 마치 감옥 생활 같습니다."


다 이해한다는 듯,
"그러시군요. 감옥에 갇히신 것 같으시다고요."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이 제대로 온 게 맞나 확인하는 눈치로 말을 이어갔다.

"그게 아니고... 제가 감옥에 갇힌 게 아니라, 감옥 교도관 같은 느낌이 계속 듭니다."


'아뿔싸. 초반부터 내가 헛다리를 짚었구나' 하면서 허벅지를 눌렀다.


"딩 동 댕 동"
"딩 동 댕 동"


어디 눌린 듯 저음의 학교 종소리가 깊이서 들렸다.


놀란 듯 원장은 다급히 코트의 오른쪽 주머니와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종소리는 아직도 바닥에 깔려 있었다.

가방을 열고 서류들을 들쳐 꺼내면서 바닥을 훑었지만,

소리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코트를 더듬고 왼쪽 깃을 열자 그제야 제대로 된 학교 종소리가 들렸다.


의심의 눈빛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래를 향하며,
"죄송합니다. 꺼놓는다는 게 정신이 없었네요."


허벅지를 누르고 있던 손은 냅다 팥을 원장에게 던지며,
"어허~ 여기선 방울만 울려야지, 벨이 왜 울려요?"


그리고 방울을 흔들어 원장의 정신을 털었다.


다시 한번 천천히 그를 확인해 봤다.
핸드폰은 총 3개에다가 켜져 있는 핸드폰은 학원 CCTV였다.

가방 안에 보이던 건 학생카드와 성적표,

그리고 손목에선 스마트워치가 쉼 없이 진동으로 울었다.


"바쁘신 거 알지만 예의와 정성을 보이셔야죠. 우신님이 다 보고 계십니다."
라며 책만 가득한 책장 뒤 너머 어디를 가리켰다.


"어험.... 하던 이야기를 계속해보시죠."


"네 그러니까 저희 학원은 요즘 시대에 맞춰 아이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교육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상세 데이터로 성적을 분석하고, 센서와 태그로 학습태도까지 기록합니다.

아~ 한 가지 더, 사각지대 없는 카메라로 학부모가 언제든 확인할 수 있고요."

자랑스러워하며 급격히 상승하는 화살표들이 가득한 광고지와 CCTV 화면들로 꽉 찬 핸드폰을 가까이 보여줬다.


턱수염을 쓰다듬다 턱살을 앞으로 두 번 당겼다 놓으며,
"그건 좋은 일이지 않습니까?"


"네 이건 좋은 일이죠. 이런 시스템에서 아이들은 처음에 적응하는데 힘들어 하지만,

한 달 정도 지나면 다들 시스템에 맞게 행동한답니다.

물론 성적도 꾸준히 오르고 학원뿐 아니라 집에서의 태도도 바꾸기 때문에 학부모님들도 다들 칭찬하시죠."


그는 내가 학부모인 줄 착각한 듯 힘찬 목소리로 광고지를 흔들었다.


이번엔 턱살을 더 세게 당겼다 놓으며,
"딱히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요."


숨을 고르고 목소리도 차분함을 찾아갔다.

"하~ 문제는 여기부터입니다. 그런데 제가 기분이 영 안 좋다는 겁니다.

학원도 잘되고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뭔가 찜찜한 게 불안하고 초조하고 그렇다는 거죠."


말하면서 그는 힐끔 아래의 핸드폰의 CCTV를 확인했다.


이번엔 스마트워치를 훔치듯 보며,
"그리고 요즘에는 꿈에 자꾸 대머리 백인 아저씨가 나타납니다.

저를 새장 안에 가두고 끊임없이 뭐라고 말하는데 뭐라 하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저는 철창만 흔들다가 이불을 붙잡고 깨기를 반복하죠."


지금 보니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대머리 아저씨가 얼마나 쓰라린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충분히 상황 파악이 되었으니 그녀의 어리석은 목소리를 들을 차례가 되었다.


그에게 각주쌀 하나를 뽑게 했고, 방울소리로 회오리를 만들듯 각주쌀 주위로 원을 그리며 흔들었다. 각주쌀은 놀라 잠에서 깬 듯 이리저리 뒤척였다.


차마 못 보겠는지 원장은 몸을 살짝 뒤로 물러 고개를 돌리고,

습관인 듯 스리슬쩍 또 핸드폰을 확인했다.


나도 내 습관을 보여주듯 부채를 촤악~ 피고 그녀를 불렀다.


"어리석음만이 인간에게 영원한 행복을 준다.
어리석음만이 인간에게 영원한....
어리석음만이...."


나의 자리에는 그녀가 앉고 나는 원장과 그녀를 관찰하기 편하게 둘 옆 중간에 앉았다.


우신은 각주쌀을 작은 소주잔으로 덮고는 돌리기 시작했고,

각주쌀은 소주잔안에서 애처롭게 여기저기 튕기며 돌았다.


"오늘은 뭐가 걸려들었을까?"

하며 그녀는 삐딱하게 고개를 들어 원장을 쳐다봤다.


원장은 자기는 아니라는 듯 시선을 피하려 했다.


그녀는 소주잔을 치우고 천천히 각주쌀을 열었다.


'감시 성적표 판옵티콘'


종이에는 세 단어만 쓰여 있었다.


갑자기 그녀는 두 손으로 앞머리를 뒤로 넘기고 원장에게 가까이 가면서,
"봉쥬르, 사 바?"
조용히 상냥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원장은 도망치듯 뒤로 피했다.

옆에 있던 가방도 기절한 듯 넘어져 서류들을 토해냈다.

쏟아진 학생카드의 학생 얼굴들도 놀라 튀어나올 듯했다.

원장의 얼굴은 파르르 떨리며 눈은 도망갈 출구를 찾고 있었다.


"꾸. 꿈에서 들었던 말을....어 어떻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불쌍한 원장에게 또 다른 충격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머리를 흉내 내고 있는 그녀는 원장뒤를 가리키며

"아우 이게 도대체 몇 개야? 니 뒤에 눈이 둘, 네, 여섯, 여덟.... 에구 망측해라"


그녀는 헛기침을 하며 가슴을 쥐어짜는 듯하며,
"콜록콜록. 아우 숨 막혀~ 숨 쉴 틈은 줘야지"


"원장님,

꿈에 나타난 프랑스 아저씨가 말하는데,

학원의 감시와 규율이 시대에 많이 벗어난다고 그러네.

광기가 서려있다 그러는데. 광기"

그녀는 부채질하며 원장을 쳐다봤다.


혼잣말하듯 낮고 작은 목소리로

"광기요?

학생들 불만이 조금 있긴 하지만, 광기라고 하기엔 대부분 규칙도 잘 따르고 성적도 좋아지는데요.

학부모들도 다들 좋아하시고요."


답답하다는 듯 부채는 바쁘게 흔들렸다.

"이렇게 어리석음이 뭔지를 모른다니.... 쯧쯧쯧"


그녀는 혀를 차더니, 원장 뒤 허공을 가리켰다.

"원장님은 애들만 본다고 생각하죠?

저기 줄 서 있는 거 안 보여요?"


그녀 손가락이 허공을 짚을 때마다,

투명한 그림자들이 한 줄로 서는 것 같았다.


앞줄에 팔짱 낀 학부모들,

그 뒤에서 성적표 숫자가 발광하는 카드들,

모서리에 팔짱 낀 경쟁 학원 간판들,

그 뒤로 팔짱 낀 교육청 도장, 건물주 통장.


"그래놓고선, 누가 누구를 감시하는지 모르겠다 하시네."


그녀는 원장 앞에 놓인 것들을 하나씩 짚었다.

울음을 참는 핸드폰 세 대,

쉬지도 않고 떨리는 스마트워치,

서류로 꽉 찬 무거운 가방.


"이게 다 목줄이에요, 원장님. 종은 애들 머리 위에서만 울리는 게 아니고."


그녀는 두 손으로 다시 앞머리를 뒤로 넘겨 누르며

"프랑스 아저씨 밤마다 만나고 싶어요?"


원장은 반사적으로 손과 고개를 저으면서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리석은 대답을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흔들던 부채를 내려놓고 없는 귀밑 머리를 뒤로 넘겼다.

"자 일단 눈맞춤 학원 원장님, 선생님들. 매 1시간마다 5분 동안은 무조건 눈을 감으세요.

무조건 눈감아야 합니다. 따지지 말고."


슬며시 입을 열은 원장은

"그럼 수업 중에는 어떡해...."


그녀는 팥을 한 움큼 쥐고

"어허~ 어디서 세속의 합리, 논리를.. 어허....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그녀는 계속 말을 이어가며 손은 <우신예찬> 책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이 책을 천천히 읽으면서 책 안에 머무르는 시간을 가지세요. 책값은 정성껏 알아서.

한 가지 더.

기도문을 드릴 테니 틈 나는 대로 되뇌어야 합니다. 자 한번 따라 해 보세요"


"보는 자는 갇히고, 감는 자는 빠져나온다."


그녀가 말하고 원장이 따라 했다.

"보는 자는 갇히고, 감는 자는 빠져나온다."


원장은 천천히 읽으면서 약간 갸우뚱했지만 입꼬리는 아주 살짝 올라갔다.


이를 눈치챈 그녀는

"이렇게 한 달해 보세요. 그리고 학생들 표정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한번 살펴보시고요.

그럼 살펴 가시죠."


부채를 접었고,

부채는 책을 기분 좋게 한번 치고는

책위에 놓였다.


원장은 시험을 마친 학생처럼

짐을 하나씩 정리하고 가뿐한 발걸음으로 돌아 내려갔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박주야 원장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프랑스 대머리… 꿈에 안 나옵니다.
근데요.
요즘은 가끔… 수업중에 학부모한테 이런 문자가 와요.
선생님 눈감고 주무세요?'


나는 웃다가, 창문 밖 벽에 붙은 CCTV를 한 번 봤다.
카메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검은 눈을 굴리고 있었다.

'보는 자는 갇히고, 감는 자는 빠져나온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는 연기를 삼키고, 딱 오 분은 아니고 딱 오 초만 눈을 감았다.






각주쌀통에서 굴러 나온 설명들

– 벤담의 ‘판옵티콘’ , 푸코의 ‘판옵티시즘’
영국 사상가 제러미 벤담은 중앙의 탑에서 둘레의 방을 한 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설계를 “판옵티콘”이라 불렀다. 푸코는 이를 칭송하기보다, 항상 보고 있지 않아도 ‘언제든 볼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사람이 스스로 얌전해지는 원리로 확장해 읽었다.
원장 주머니의 핸드폰 세 대와 손목의 진동은, 학원 중앙에 탑이 서는 게 아니라 원장 몸 안에 탑이 분산돼 세워진 꼴이다.


– 푸코의 ‘시험(examination)’
푸코가 말한 ‘시험’은 단순한 테스트가 아니라, 사람을 관찰·비교·기록해 “사례(case)”로 만드는 장치다. 점수는 결과가 아니라 그 사람을 묶는 파일명이 된다.
그래서 성적표·학생카드·상승 화살표는 “교육”의 얼굴로 들어오지만, 실은 아이들을 숫자로 고정시키고 원장까지 그 숫자에 눌러 철창 꿈을 꾸게 만든다.


– 푸코의 ‘기관들의 친척관계’ 병원·학교·감옥이 닮는 이유
푸코가 보여주는 건 병원·학교·감옥이 서로 다른 간판을 달고 있어도, 결국 관찰,기록,분류,정상화 같은 비슷한 기술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 제도의 언어가 다른 제도로 쉽게 이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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