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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Jan 22. 2017

#102. 엉겁결에 만나게 된 거인의 유지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최고 권력자의 언행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요즘. 서점에는 대통령의 말하기,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제목의 책이 나와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글쓰기가 생계인지라 숙제하는 마음으로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부터 손에 잡았습니다.


이 책의 집필 후기를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글쓰기에 관한 책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글쓰기 수준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글쓰기 노하우를 보러 왔다가, 엉겁결에 거인의 유지를 만나게 됩니다. 강원국 전 비서관이 작성한 '대통령 연설문 작성요령'과 '강의 요령'에서 나온 글쓰기 화두 40여 개가 이 책의 골격입니다. 이 책은 표현하는 방식으로써의 글쓰기 방법에 대한 책이 아닙니다. 또, 단순히 글쓰기의 중요성만을 강조한 책 역시 아닙니다.


이 책을 연거푸 읽어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필자가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잠정적인 결론을 짓어 전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쓴이가 치열하게 고민한 이슈의 결과를 보는 이에게 알려주거나 설득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죠. 무엇을 고민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리더는 글을 자기가 써야 한다. 자기의 생각을 써야 한다. 다른 사람이 쓴 연설문을 낭독하고 미사여구를 모아 만든 연설문을 자기 것인 양 역사에 남기는 것은 잘못이다. 부족하더라도 자기가 써야 한다.
- 책 중에서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모두 '무엇을 쓸 것인가'라는데 답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대통령들 모두 연설문을 준비하기 위해 엄청난 인내력을 발휘했다고 느껴집니다. 연설을 하게 될 때까지 거의 무한정 연설문을 고치고 고치고 또 고쳐나갔습니다. 대통령들 모두 연설문을 준비하는데 욕심이 그 인내력을 뒷받침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2007년 신년 연설은 준비 안된 연설이라는 질타를 받았지만, 두 시간이 넘는 분량의 원고를 준비했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무엇을 쓸 것인가'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누구에게 말을 할 것인가에서부터 고민해야 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에서 한 마디는 파급력이 큽니다. 연설문 또는 말을 들을 사람이 많기 때문에 누가 들을 것인지부터 분명히 규명되어야 합니다. 사례로 나오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을 동의하는 국회 연설과 여의도 농민 시위 사망자 발생했을 때 대국민 사과문은 고민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라크 파병 연설의 경우 청자는 미국, 이라크, 파병에 시민단체, 장병, 장병의 부모였습니다. 또, 여의도 농민 시위 사망자 발생에서의 청자는 농민과 유족뿐만 아니라 공권력을 집행하는 경찰과 전경을 자식으로 둔 부모도 있었습니다. 어느 한쪽을 두둔하면 어느 한쪽이 반발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갑자기 어린아이와 사진을 찍을 때 다리를 크게 벌려 키를 맞추던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말했다. '말은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 말하는 사람과 말의 내용, 그리고 말을 하는 대상이다. 말의 목적은 마지막 것과 관련이 있다.'
- 책 중에서


'무엇을 쓸 것인가'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독서, 많은 생각,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죽을힘을 다해 과제에 몰입해야 나오는 것이 창조력이라고 합니다. 두 대통령들은 독서를 통해 지식과 영감과 정서를 얻었답니다. 이들도 전투적 책 읽기를 했습니다. 책 읽기는 저자와의 대화라고 합니다만, 저는 오히려 저자와 대화를 나눌 정도로 준비되려면 책 읽 스스로 생각하면서 일정수준이 되어야 대화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또, 글은 자신이 제기하고자 하는 주제의 근거를 제시하고 그 타당성을 입증해 보이는 싸움이기도 합니다. 좋은 자료를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고, 자료가 충분하면 그 안에 길이 있기 마련입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책부터 사서 공부합니다. 컴퓨터도 컴퓨터를 만지기 전에 책부터 읽었고, 낚시를 배울 때도 책부터 먼저 봤습니다.
- 노무현: 상식 혹은 희망 중에서


많은 생각도 필요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1년 동안 해야 할 주요 연설에 대해 연초부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농부가 1년 농사 계획을 짜듯이 말입니다.  고민할 거리를 머리에 숙성시키면 뭐라도 아이디어가 오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맞는 말인  같습니다.

글에도 숙성이 필요하다. 생각이 안 나면 머디 어디쯤엔가 잠시 내버려둬도 좋다. 컴퓨터를 끄고 산책을 나가는 것도 방법이다. 때로는 며칠씩 묵혀두고 다른 할 일을 할 필요도 있다. 그러다 보면 문득 떠오른다. 언제일지도 모르고, 어느 장소일지도 모른다. 혼자 걷다가, 혹은 누군가와 대화하다가, 또는 화장실에서 떠오를 수도 있다.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붙잡으면 된다.
- 책 본문 중에서



좋은 글이라 하면 자칫 미사여구로 고상하게 표현된 아름다운 문장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름다운 문장만을 생각한다면 문법을 고민하거나 사전을 끼고 살아야죠. 그렇다고 글의 외양에 대한 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글쓴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 연설을 맡길 때 밥상머리에서 2시간 동안 들었던 이야기를 친절히 정리해 두었습니다. 책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글쓰기를 요리하는데 비유하며 알기 쉽게 당부한 일화도 있습니다.



https://acase.co.kr/2013/12/24/writinglecture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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