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를 가르쳐야 하나요?
가르친다는 건, 감정까지 감당하는 일이다
어제 오후, 예전에 함께 일했던 강사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저번에 언급한 연락 두절된 면접 특강에 참여했던 학생들의 후속 반응을 묻는 연락이었다. 전 회사는 그만뒀지만, 프리랜서로 가끔 출강하기도 한다. 운영·행정까지 전담했던 곳이라 소속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관계는 남아 있다.
제일 막내였던 나는 투정 섞인 말투로, “3명 모두 연락이 없더라”라고 전했다. 면접이 끝난 직후, 복기 요청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말을 전하는 걸 내가 미안한 감정으로 말하게 되다니...
특강 시간 내내 "이후에 여러분의 경험은 다음 해 수강생에게 큰 도움이 된다"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말 그대로 전부 '읽씹'이었다. 그땐 분명 공감하는 태도로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줬음에도 말이다.
그 강사의 답장에서도 황당하다는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복기해 달라는 게 상대방을 위한 예의 아닐까... 그런데 이런 것도 우리가 다 알려줘야 하는 부분일까?”
그 말에 괜히 울컥했다. 면접 복기나 피드백은 단순히 강사의 평가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다음 사람을 위한 배려, 그리고 사회적인 태도와 기록의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는 ‘이것도 가르쳐야 하나?’란 생각을 하고 있다.
말하는 법, 쓰는 법, 대답하는 법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나누는 법, 예의를 갖추는 법, 피드백을 하는 태도까지 챙겨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어쩌다 취업 컨설팅 강사가 되었다. 비전공자였던 내가 누군가가 발견해 준 작은 장점을 강점으로 만들어 강사라는 직업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
강사라는 이름은 무언가를 전달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태도를 함께 보는 사람이다.
학생들의 이런 무반응은 단순히 섭섭함 이상의 감정으로 나를 건드렸다.
‘내가 너무 오지랖이었나?’ 하는 생각과 ‘이건 기본적인 예의 아닌가?’ 하는 마음이 교차했다. 물론 예의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이 감정은 무의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날 꾼 꿈속에서 나는 동생에게 계속 무언가를 알려주고 있었다.
“이건 이렇게 해봐”, “저건 저렇게 해봐.”
마치 현실의 내가 반복하고 있는 행동처럼 말이다.
그 꿈이 유독 선명하게 남았던 이유는 그 장면이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나친 책임감, 끝없이 조언하려는 습관, 타인의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성향.
그게 무의식 깊숙이까지 자리 잡고 있었다.
‘말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이젠 과거로 두게 만들었다. 이제는 ‘사람을 잘 대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게 눈으로도 보인다. 브랜딩 마케팅 전략이 사람들의 새로운 길로 인도하는 것처럼.
면접도 마찬가지다. 면접관은 기술만 보지 않는다. (그럴 거라고 생각해 본다...)
그 사람이 가진 태도, 상대에 대한 존중, 예의, 말 너머의 자세를 함께 볼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가르친다.
누군가는 그걸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누군가는 끝까지 외면하더라도.
가르친다는 건, 결국 상대의 감정까지 감당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오늘도 내가 전하는 말 한 줄이 누군가의 무의식 어딘가에 오래 남기를 바란다.
말은 흩어지지만, 태도는 남으니까. 그게 인성이고, 예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