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객석에 남아
짧게는 몇십 초, 길게는 몇십 분에 이르기까지. 발표 시간은 천차만별이지만, 그 발표를 준비하는 이들의 긴장감은 비슷할 것이다. 본인이 무대체질이 아닌 이상.
나 역시 '숱한 발표를 하고, 또다시 발표를 준비하고'를 반복하며 느낀 것은 발표가 길든 짧든 늘 긴장되며 늘 힘들고 '끝나면 일단 좋다'라는 것이다. 평가 결과와 무관하게. 발표 직후의 그 해방감은 가보지 않은 감옥이지만 그곳에서 출소 혹은 탈옥한 느낌이리라. 발표 준비에서부터 끝까지. 그 지옥 같은 과정에서 탈출한 것은 맞으니까.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아쉽다. '안 된다'라기보다는 아쉽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늘 발표는 약간의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다. 결과의 성패와 무관하게. 발표가 모든 일의 끝은 아니겠지만, 발표 후 하루 정도 쉼을 가진 뒤 스스로 돌아보기는 중요하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발표 감옥에 대비하기 위해서.
예전에 나는 꽤 오랜 기간 동안 발표감옥에 갇히면, 조금이라도 더 완벽한 장표를 만드는 데에 집착했었다. 나의 노력, 나의 논리, 나의 결과물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판단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발표 경험이 쌓이며 매번 공통적으로 느끼게 된 것이 있었다.
'청중들이 생각보다 나의 장표에, 혹은 발표 자체에 집중을 잘 안 한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발표자료를 사용하는 발표 준비를 할 때 '폰트 크기부터 정렬, 도형의 색, 예시 이미지 등등 디자인적 요소에서부터 텍스트의 조사 하나까지' 나름의 장인 정신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 장표를 만들곤 했다. 그런데 막상 나의 발표 때 심사위원들은 본인 앞의 서류(평가표나 기타 자료) 등을 보느라 정신없는 경우도 많았고, 심지어 본인 핸드폰을 보는 경우도 꽤 봤다.
나의 발표가 매력이 없어서... 일까?
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발표 경험이 쌓이고, 여러 성공 경험을 가지게 되면서 낸 결론은, 심사위원들은 원래 그렇다는 것이다. 그들도 발표자와 같이 한정된 시간에 평가를 해야 하고, 주최 측이 어떤 평가 기준을 줬느냐에 따라 마음이 바빠질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는 실제 심사위원들에게 들은 말이기도 하다. (물론 세상 모든 발표의 상황이 동일하지는 않다)
이런 나름의 생각이 정리된 이후부터, 나는 기존의 80% 수준의 시간과 노력만 장표 만들기에 투여한다. 나머지 시간은 그냥 다 연습시간으로 바꿨다. 장표의 토씨 하나에 집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랬더니 발표 자체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다. 나는 늘 발표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습 시간임을 강조한다. 발표 준비 일정을 잡을 때 발표 연습 시간부터 반드시 확보하라고 한다. 그게 가장 효과가 좋았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에게도 의뢰인에게도.
발표와 같이 단기간 폭발적인 집중을 필요로 하는 일은, 끝나는 순간 외면하고 싶다. 지난 과정의 돌아보기 따위는 정말 하기 싫다. 그래도 어느 날 문득 다시 발표의 기회(?)가 본인에게 돌아올 것을 대비해, 발표 후 그 준비 과정에서 무엇이 아쉬웠는지 꼭 돌아보길 바란다. 내가 '충분한 연습시간 확보'라는 엄청난 비밀을 발견했듯, 여러분도 다음번 더 나은 발표를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