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1. 청년이지만 청년이 아닌 사람들

챕터 1. 실험실엔 있으나 사회엔 없는 존재: 대학원생 복지의 사각지대

by 생각하는 실험실

1-1. 청년이지만 청년이 아닌 사람들

우리는 왜 빠졌을까?


청년 정책에서 배제된 대학원생, 그리고 과학자의 질문


청년도약계좌 신청서 앞에서

"청년도약계좌 가입 마감 임박!"

최근 뉴스 기사를 보며 은행 앱에 들어갔다가, 신청 대상이 아니라는 알림을 마주했다. 그 이유는 소득 구분에서 배제된다는 이유였다. 근로소득? 사업소득? 나는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청년이지만 청년이 아닌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심장부, 그 중심에는 대학원생들이 있다. 밤낮 없이 실험실에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하지만 이들의 노동은 제도 속 어디에도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다.

'기타소득자'

대학원생이 받는 인건비에 붙는 이름이다. 강연료, 원고료, 일회성 용역비와 같은 범주. 매일 반복되는 구조화된 연구노동이, 비정기적 활동과 동일하게 분류되는 현실이다.


대학원생 해당 없음 (1).png

제도의 문 앞에 선 대학원생


이 분류가 만드는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청년도약계좌? "근로소득이 없어서 가입 불가" 내일저축계좌? "소득 요건 미충족"
청년수당? "대상자 아님" 육아수당? "직장인이 아니어서 제외"

돌봄휴가? "고용관계 없음으로 해당 없음"


매월 정기적으로 연구비를 받고 있지만, 제도의 눈에는 '소득이 없는 사람'이다. 학위를 마치고 사회로 나설 때쯤 이미 30대 문턱에 서 있지만, 자산 형성의 기회는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

더 심각한 건 출산과 육아를 병행하는 대학원생들이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의 2023년 연구에 따르면, 대학원생은 일-육아 병행 지원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제도의 언어로 존재하지 않기에, 그들의 필요도 인정받지 못한다.


편의적 분류가 만든 구조적 배제


이 배제는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다. 대학원생이라는 집단은 오랫동안 제도 설계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고, 그 결과 '기타'라는 이름 아래 편의적으로 수렴되어 왔다.


고용계약이 없다는 이유로 노동자가 아니며, 학생임에도 사회적 복지 대상에서는 제외된다.


대학원생의 인건비가 '기타 소득'으로 분류된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이 정식 고용계약 없이 연구를 수행한다는 제도적 특성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학이나 연구기관은 이들을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4대 보험이나 퇴직금 등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행정적으로는 일시적 연구활동의 대가로 '용역비'를 지급하는 방식이 선택되어 왔다.


이는 회계상 관리가 용이하고 법적 책임이 적은 방식이지만, 실질적인 연구노동을 반복 수행하는 대학원생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구조다.


이처럼 법적·행정적 경계에서 정체성이 불분명하게 정의된 존재들은, 제도 밖에 머무는 것이 일상이 된다. 이 누락은 개인이 선택한 경로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특정한 구조를 전제로 정책을 설계해 왔다는 점에서 구조적 맥락을 드러낸다.


과학자의 눈으로 본 '측정되지 않는 변수'


과학에서 데이터를 해석 할 때, '측정되지 않는 변수'는 통제 대상이 되지 않는다.


존재하지만 모델링 되지 않은 요소는 해석에서 배제되고, 데이터로 수렴되지 않는 사실은 이론의 경계 밖으로 밀려난다. 결국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시된 것'으로 간주된다. 이는 단지 분석의 편의를 위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그 결과는 종종 의도치 않은 왜곡으로 이어진다. 변수로 상정되지 않은 존재는, 시스템 안에서 고려되지 않으며, 그로 인해 결과의 불확실성과 왜곡은 커진다.


지금 대학원생의 위치가 정확히 그렇다.


존재는 확실하지만 구조 속에서 정의되지 않고, 책임은 부여되지만 권리는 보장되지 않는다. 마치 실험설계에서 중요한 교란변수가 배제된 채 모델이 완성된 것처럼, 대학원생의 삶과 노동은 정책설계와 통계체계에서 구조화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제도는 인건비 지급 구조만 '기타'로 분류해 회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정작 그 '기타' 안에 존재하는 사람의 시간, 노동, 생애는 들여다보지 않는다.

과학자는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을 발견했을 때, 새로운 변수의 도입을 통해 모델을 정교화한다. 지금 이 문제 역시 그러하다. 대학원생이라는 존재는 정책의 오류항(error term)이 아니라, 처음부터 변수로 포함되었어야 할 독립적 존재다. 이들이 제도 안에서 구조화되지 않은 채 방치된다면, 과학기술이라는 국가적 프로젝트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정확하지 않은 모델 위에 지어진 분석은 오래가지 못하며, 삶을 고려하지 않은 시스템은 곧 인간을 소외시킨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구조화하기 위해


과학은 질문에서 시작하고, 관찰을 통해 구조를 세운다. 그렇다면 이 구조에서 반복적으로 배제되는 존재들—그 이름조차 '기타'로 불리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질문하고 구조화해야 할까?

한 편의 논문이 완성되기까지 수개월, 때로는 수년의 실험이 필요하다. R&D 성과의 출발점은, 논문 한 편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름 없이 기여한 수많은 대학원생들의 실험 기록이다.


그런데 정작 제도는, 그들의 노고를 '기타 소득자'로 분류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용어의 문제가 아니다. '기타'라는 단어는 제도 안에 들어오지 못한 이들에게 붙는 이름이며, 그들은 이름 없이 예산의 가장자리에서 성과만을 남긴다. 국가가 자랑하는 논문 수, 특허 수, SCI 지수는 이 '기타 소득자'들이 일군 성과들이다.

그러나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 기준 속에서 대학원생은 매번 제도 밖으로 밀려나고, 매번 존재를 다시 증명해야 한다.

"당신은 청년이 맞느냐"라고.

과학자의 질문


과학은 구조를 읽고, 패턴을 해석하고, 변수의 의미를 묻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사회라는 시스템에서 이 반복되는 배제를 하나의 현상으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왜 우리는 항상 빠지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행정의 구멍을 메우자는 요구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이게 하고, 데이터 밖의 삶을 말할 수 있게 하자는 과학자의 제안이다. 실험으로 쌓은 시간은 분명 세상을 향한 실마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실험을 가능하게 한 이들의 삶은 언제나 마지막 페이지 밖에 머물러 있었다.


이는 단순한 행정의 실수가 아니다.


과학기술 인력에 대한 국가적 인식과 제도의 구조적 빈틈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우리는 청년이지만, 제도는 우리를 상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매번 존재를 입증해야 하는 청년으로 남는다. 문제는 개인의 소외가 아니라 구조의 침묵에서 비롯된다.


다음 이야기를 위한 질문


그렇다면 이 배제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다음 글에서는 이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추적해보려 한다. 특히 '대학원생은 학생인가, 근로자인가'라는 오래된 분류의 경계가 어떻게 오늘날의 제도적 공백을 만들어냈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과학자가 사회를 분석한다는 것.


삶의 겹을 데이터처럼 읽고, 모순의 구조를 해석해보려는 시도다.지금 우리가 놓인 자리는 단지 행정의 사각지대가 아니다. 분류의 관성 속에서 반복된 누락의 지점이다. 그 신청서 앞에서 멈춘 순간이, 사실은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지식을 만드는 사람이, 동시에 사회 속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과학자가 사회 속에서 수행해야 할 또 다른 실험입니다. -by 생각하는 실험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