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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배제의 설계도: 제도가 놓친 변수

챕터 1. 실험실엔 있으나 사회엔 없는 존재: 대학원생 복지의 사각지대

by 생각하는 실험실

1-2. 배제의 설계도: 제도가 놓친 변수

기타소득이라는 이름의 구조


경계에 선 존재들, 대학원생의 제도적 딜레마


1편에서 제기한 "청년이지만 청년이 아닌 사람들"이라는 질문에 대해, 그 배제가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이유, 즉 '대학원생은 학생인가, 근로자인가'라는 오래된 제도적 구분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왜 이 모순적 구조가 계속 유지되는지 들여다보고자 한다.


아시아 대학원생의 '양면적 삶' 콜라주__한 명의 대학원생이 실험실에서는 과학자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제도, 행정 앞에서는 무력하게 고개를 숙인 모습.jpg

이중 정의의 함정: 법제도가 만든 사각지대


현행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는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고 정의한다. 동시에 「고등교육법」은 대학원생을 '학생'으로 분류하고,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에서는 '참여연구원'으로 규정한다.

문제는 이 세 가지 정의가 서로 충돌하며 한 사람의 존재를 조각조각 나누어버린다는 점이다. 대학원생은 실질적으로 연구라는 노동을 수행하지만, '임금'이 아닌 '연구비' 또는 '장학금'을 받는다는 명목으로 근로자 정의에서 밀려난다. 동시에 연구 성과에 대한 책임은 '참여연구원'으로서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이런 이중 정의는 우연이 아니다. 각 법률이 서로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학원생이라는 존재가 여러 법체계의 경계에서 누락되는 것이다. 고등교육법은 교육 관리를 목적으로, 근로기준법은 노동자 보호를 목적으로, 연구개발 관련 규정은 연구 관리를 목적으로 각각 설계되었다. 하지만 이 세 영역이 겹치는 지점에 있는 대학원생은 어느 법의 온전한 보호도 받지 못하고, 제도가 놓친 변수로 전락해버렸다.


경제적 편의: 비용 절감의 숨겨진 동기


대학과 정부가 대학원생을 '학생'으로 분류하는 더 직접적인 이유는 차가운 경제적 계산이다. 만약 대학원생을 정규 연구원으로 고용한다면, 대학은 4대 보험료, 퇴직적립금, 각종 법정 수당을 부담해야 한다. 현재 박사과정생 한 명당 월 200만원의 연구비를 지급한다면, 정규 고용 시 실제 비용은 월 300만원 이상으로 치솟는다.

한국연구재단의 『2022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조사·분석·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국가 R&D 참여연구원 중 대학원생이 35%를 차지한다. 만약 이들을 모두 정규 연구원으로 고용한다면, 국가 R&D 예산은 수조원 규모로 폭증할 것이다.

'학생'이라는 명칭은 이런 비용 부담을 교묘하게 회피하는 완벽한 방패막이다. 연구 성과는 달콤하게 취하되, 노동자로서의 권리와 보장은 제공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 연구 현장에서 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하는 과학자들은 이 모순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실제로 대학원생 없이는 연구실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들을 단순히 '공부하는 학생'으로만 보는 것은 연구 현실을 완전히 외면하는 일이다.


교육의 가면: 노동을 지우는 이데올로기


더 뿌리 깊은 문제는 '교육'이라는 명분이 노동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교묘한 장치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대학원 과정을 '고등교육'으로 정의하는 순간, 대학원생의 모든 활동은 '배움'이라는 포장지에 싸여버린다. 실질적으로는 연구 업무의 전 과정을 어깨에 지지만, 이 모든 것이 '성장을 위한 소중한 경험'이라는 달콤한 논리로 덮여진다.

이런 논리는 특히 이공계에서 더욱 견고한 성벽을 쌓는다. 실험실 문화에서 대학원생의 장시간 노동은 '진정한 연구자로 거듭나기 위한 통과의례'로 여겨진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총학생회의 2022년 실태조사에서 대학원생의 주당 평균 실험실 체류 시간이 52.7시간으로 나타났지만, 이는 여전히 '교육'이라는 신성한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과학자들은 이런 현실 앞에서 착잡함을 감추지 못한다. 실험실에서 가장 위험한 실험을 떠안고 가장 긴 시간을 버티는 것은 대학원생인데,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는 것이다. 연구 현장에서는 대학원생이 명백히 연구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모든 과학자가 인정하지만, 제도는 여전히 '배우는 학생'이라는 낡은 탈을 벗어던지지 않는다.


제도적 관성: 변화를 거부하는 벽


이런 모순적 구조가 끈질기게 버텨내는 또 다른 이유는 제도적 관성이라는 거대한 저항력이다. 기존 시스템의 각 주체들은 현재 구조를 유지할 달콤한 이유를 품고 있다.

대학은 저렴한 연구 인력을 확보할 수 있고, 정부는 R&D 예산 부담을 덜 수 있으며, 지도교수는 연구실 운영비를 아낄 수 있다. 심지어 일부 대학원생들조차 '학생' 신분으로 인한 혜택(등록금 면제, 병역 연기 등)을 포기하기 어려워 망설인다.

하지만 연구 현장의 과학자들은 이 구조의 한계를 점점 더 절실하게 깨닫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2020년 발표한 『젊은 과학기술인 현황 및 지원방안』 보고서는 "대학 연구실에서 실질적인 연구 활동의 70% 이상을 대학원생이 떠안고 있다"고 분석하며, 이들의 지위 개선이 연구 생태계의 미래와 직결된다고 경고한다.

2020년 태영호 국회의원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회기 만료로 좌절된 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대학원생의 지위 개선이 국가 연구경쟁력 강화의 생명선"이라는 간절한 성명을 발표했다. 연구 현장을 가장 생생하게 체감하는 과학자 집단에서 변화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외친 것이다.


연구 현장에서 바라본 차가운 분류


과학자들이 매일 목격하는 현실은 제도적 정의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연구실에서 대학원생들은 연구계획서 작성부터 실험 설계, 데이터 분석, 논문 작성까지 연구의 전 과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간다. 때로는 지도교수보다 해당 분야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기도 한다.

한국연구재단의 통계를 보면, 전체 국가 R&D 참여연구원 중 대학원생 비중(35%)이 박사급 연구원(30%)보다 높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2021년 박사인력 활동조사」에서도 다수의 박사과정생이 "스스로 주도한 연구가 학위논문의 핵심을 이룬다"고 답했다.

그런데도 이들은 여전히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꼬리표에 갇혀 있다. 연구 성과에 대한 무거운 책임은 고스란히 떠안지만, 연구자로서의 당당한 권리는 인정받지 못한다. 고용계약서 대신 '연구참여확인서'를 써야 하고, 4대 보험 가입 대신 '기타소득'이라는 차가운 분류에 머물러야 한다.


사각지대의 설계도


결국 대학원생의 배제는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구조적 산물이다. 서로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제도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사각지대가 생겨나고, 차가운 경제적 계산이 이를 단단히 굳혀놓으며, '교육'이라는 숭고한 이데올로기가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지워버린다. 제도적 관성은 변화의 문을 굳게 잠그고, 각 주체의 이해관계가 현상 유지를 든든히 뒷받침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연구 현장의 과학자들은 가장 예민한 증인이다. 이들은 대학원생이 실제로 어떤 역할을 감당하는지, 연구 생태계에서 얼마나 소중한 자리를 차지하는지 누구보다 생생히 알고 있다. 동시에 현재 제도가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도 매일 피부로 느낀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2021년 박사급 인력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63.2%가 "박사과정 중 연구자로서의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쓸쓸히 답한 것은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조사에서 이공계 학부 졸업생이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는 주된 이유로 '불안정한 지위'(42.1%)를 꼽은 것도 같은 아픔을 담고 있다.

연구 현장의 핵심 인력을 제도적 사각지대에 방치하는 것은 단순한 복지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가 과학기술 시스템의 뿌리를 흔드는 구조적 균열이다. 과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점점 더 절실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다음 이야기를 위한 질문


그렇다면 이런 구조적 배제는 실제로 대학원생들의 삶에 어떤 상처를 남기고 있을까?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서, 사회적 인정의 경계에서, 그리고 경제적 불안정의 늪에서 대학원생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가?

연구실에서의 일상부터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제도적 모순이 개인의 삶 속에 어떻게 깊숙이 스며들고 있는지 들여다보자. 추상적인 제도 논의를 넘어, 실제 대학원생들이 마주하는 현실의 구체적 양상을 통해 이 문제의 진짜 무게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을 만드는 사람이, 동시에 사회 속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과학자가 사회 속에서 수행해야 할 또 다른 실험입니다. -by 생각하는 실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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