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구절이 있다. 떠날 사람은 아무리 붙잡아도 떠나게 되어있고 옆에 있을 사람은 결국 내 곁에 있어 준다는 말. 어릴 때는 말의 뜻을 알지 못해서 마음에 와닿지 않았지만 살면서 이 구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오곤 했다.
나는 한번 연을 맺은 사람들과는 오랫동안 잘 지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친구로 잘 지내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자연스레 멀어지기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학교에서 만나 인생을 함께 할 것 같던 친구들도 졸업하고 나면 각자의 생활에 쫓겨 서로를 잊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환경을 극복하며 간간이 연락을 이어오던 몇몇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취업하거나, 결혼을 하게 되면 안부를 묻거나 만나는 횟수가 현저히 줄게 된다. 주변에 10년 혹은 20년 동안 친구 관계를 유지해온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을 넘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같이 연락을 하지 않았겠지만, 그 시절을 공유하고 함께 보냈다는 사실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언니는 제일 친한 사람이 누구야?
모임에서 한 지인이 내게 질문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나는 마땅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진짜 친했던 친구가 있었던가?’ 몇 명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친했다고 아니 친하다고 서슴없이 말할만한 상대는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문득 한 친구가 떠올랐다.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함께 했던 친구.
나에게도 오랜 시절을 함께한 20년 지기 친구가 있었다. 중학교 때 처음 만난 친구였다. 처음에는 성향이 달라서 자주 싸웠다. 하지만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니면서 더욱 친해지게 되었다. 서로 집 방향이 달라도 우리는 당연한 듯이 하교를 함께 했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공통점을 가진 우리는 하교 후 떡볶이 집을 찾아 어슬렁거렸다. 함께 떡볶이를 먹는 게 일종의 루틴이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좋아했는지 학교 근처 분식집은 물론이고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먼 거리도 떡볶이를 먹기 위해 나섰다. 심지어 심하게 다툰 날도 떡볶이만큼은 함께 먹었다.
나는 뭐든지 친구와 함께했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연결된 기분이었다. 시간은 우리를 늘 함께하게 만들어주었다. 친구가 문자 메시지로 “응”이라고 보내면 나는 보지 않아도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있었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 세월이 눈처럼 쌓이면 신뢰도 단단해진다고 믿었다. 감정의 소용돌이였던 학창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면서 가족보다도 더 끈끈해졌다. 친구와는 대학이 달라지고 결혼을 한다고 해서 헤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사회에 나와 취업을 준비하고 몇 번의 사랑과 이별을 겪으면서 우리는 더욱 깊은 관계를 이어갔다. 내가 힘들 때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너였고, 그건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소소한 연락부터 깊은 고민까지 나누지 못할 이야기가 없었다. 하루의 시작을 그리고 끝을 함께 했다. 이번에는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다던 친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결심했다. 친구의 연애를 지켜봤던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바쁘게 결혼 준비를 하던 친구는 어느 날, 나에게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여자는 결혼을 하면 친구들이 바뀌는 거 같아. 아무래도 환경이 달라지니깐 같이 할 얘기가 없어진다고 하더라고” 처음에는 그 말을 듣고 이해하지 못했지만 금세 그 뜻을 알게 되었다. 친구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행진을 하던 모습이 마지막으로 내가 본 장면이었으니까 말이다.
친구에게 평소와 다름없이 연락했지만 내가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들은 ‘1’ 없어지지 않은 채로 쌓여만 갔다. 처음에는 바빠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지. 평소에도 핸드폰을 잘 보지 않던 너였으니까 신혼 생활을 즐기느라고 그럴 거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친구가 결혼 전에 스치듯 한 말이 진심인지도 모른 체. 원래 감정적인 편이라 잠수를 잘 타던 친구이기에 시간이 흐르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나타날 거라고 믿었다.
사랑하는 사이에서만 이별의 아픔이 있는 게 아니었다. 친한 친구 사이에도 실연과 같은 아픔이 존재했다. 그것은 마치 전부를 나누었다고 믿은 존재가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기분, 다시는 볼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 상태, 누군가 친한 친구가 누구냐 물어보면 대답할 수 없는 당황스러움, 그를 생각하면 다시는 미소 지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자연스레 보내던 메시지는 다른 이를 향해야만 했고, 어릴 때 함께 먹었던 분식집도 이제는 갈 수가 없었다. 사진첩을 구경하다가 함께 찍은 사진이 발견하면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져왔다.
네가 날 모르고 내가 널 모르겠니
내가 널 모르고 네가 날 모르겠니
우리가 만들던 꿈의 탑을 세우다가 말았어
누구의 잘못인진 물어보지 말아 줘
어차피 모래성이잖아
-사공, 모래성-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었다. 볼륨이 크지 않았는데도 가사 내용이 귓가에 맴돌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서로의 인연이 여기까지였을 뿐이다. 이제는 더 이상 연락을 할 수도 답장이 오지도 않겠지만 대답이 없는 것도 너의 대답이라 여기기로 했다. 그러나 그리움이라는 녀석은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와서 널 생각하게 만든다. 어쩔 수 없겠지. 함께 쌓아 올린 모래성은 파도가 휩쓸고 지나갔고, 난 그 자리에 남아 같이 놀던 너를 기다려보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너는 너의 시간으로 가버렸고 나 혼자 이 자리에 남아서 그리운 마음을 삼키고 있다.
가끔은 길을 걸어가다가 친구와 닮은 사람을 보면 멈칫하는 순간들이 있다. 혹시나 너일까 하는 기대 같은 미련이다. 사라진 인연에 미련은 없지만, 함께 했던 추억은 여전하다. 지인을 통해서 들은 소식으로는 친구는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딩크족으로 살겠다던 친구였는데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이대로 영원히 친구를 보지 못한다 해도 설령 다시 만날 수 있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기억은 흐려졌다고 해도 그때의 나를 기억하는 너, 널 기억하는 나는 여전히 거기 있을 것이다. 어느 곳에 있든 내 친구였던 너. 잘 지내기를 아쉬운 안부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