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_집밥 먹이기_0
육아휴직을 한지 벌써 두어 달 남짓 지나갔다. 시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빨리 지나간다.
처음 첫 달은 이사와 짐 정리, 그리고 아이 둘과 엄마가 연이어 걸린 지독한 감기(아데노바이러스) 병수발로 보내고, 두 번째 달은 엄마의 복직과 적응, 그리고 아빠의 적응 시간으로 똥 쌀 시간도 없이 지나가고 있다.
사실 원래 집안일의 많은 부분(요리, 청소 등)을 내가 도맡아 해왔었고, 유연근무로 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하며 아이들도 많이 봐왔던 지라, 휴직 후 육아와 살림에 전념하는 것은 크게 힘들일이 없을 줄 알았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몇몇 힘들고 멘탈 털리는 일상의 예를 들어보자면,
오전의 가장 큰 행사는 와이프가 출근하고 난 뒤 두 아이를 씻기고 옷 입혀서 등원시키는 일. 그런데 여기에 항상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기는데,
아이 둘 다 아침을 먹고 나면 항상 큰 일들을 보시는데, 아직 17개월밖에 안 되는 둘째는 아침에 두 번씩도 일을 보신다. 신발 다 신기고 나가려는 찰나 쿰쿰한 냄새가 나서 다시 화장실로 데려가야 하는 건 예사고, 기저귀 밖으로 세어 나오고, 자기 옷에 묻고 내 옷에 묻고 화장실에 묻고 등에 묻고 여기저기 묻고 똥칠갑이다. 어떤 때는 보면 정말 이게 17개월 아이의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양이.....벽에 똥칠한다는 말이 이런 말이구나 싶다. 아이에게서 인생을 배운다.
그리고 오후의 큰 일과는 당연히 아이들의 하원이다.
3-4시쯤 하원을 시켜 엄마가 퇴근하고 오기까지 38개월, 17개월 두 아이를 돌봐야 한다. 당연히 아이만 보는 게 다가 아니다. 육아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밥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울까, 밥은 밥솥이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맨밥에 물만 말아먹을 수 없으니 애들과 함께 먹을 반찬도 해야 하고 국도 하나 끓임 좋다. 뭐 이것도 그냥 그럭저럭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 하나가 더 있다. 육아를 동시에 해야 한다. 이 쥐방울들은 단 5분도 혼자 있지 않고 잠시만 내가 없어졌다 하면 주방에 와서 날 찾는다.
주방에 그냥 와있냐고? 당연히 아니다. 싱크대를 열어 냄비란 냄비는 다 꺼내고 빈 반찬통은 화장실까지 갖다 놓는다. 키친타월은 주방에 카페트처럼 깔려있고, 또 콩콩이는 왜 꼭 그 위에서 자야 하는지. 빨아서 걸어둔 행주는 여기저기서 춤을 추고 있고, 조리대 위에 손이 닿는 모든 물건은 손에 쥐어야 하는데, 손이 안 닿으면 까치발을 들고 난리도 쳐보고 어찌어찌하다가 자기도 꼴에 호모사피엔스라고 이제 의자까지 가져와서 끌어다 내린다.
그래도 나는 이 와중에 나는 밥을 한다. 차라리 포탄 떨어지는 참호 속에서 밥을 하지, 이것이 바로 육아다.
하루의 두어가지 큰 행사만 슬쩍 말한 것인데 아마 엄마들이 보면 '뭐 대수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난 아직 적응기간이라 그런지 육아휴직 후 체중은 최근 10년 중 최저치를 찍고, 일 년에 한 번 걸릴까 말까 하던 감기는 격주로 걸려 콧물을 달고 사는 중이다. 그래, 적응기간이니까, 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지리라 믿고 또 믿는다.
최근 아빠들의 육아휴직 비율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나도 그래도 아빠 휴직이 가능한(눈치 덜 보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직장에 다니는 큰 행운을 얻어 이렇게 휴직을 해서 애들을 보고 있지만, 한 일 년 편하게 쉬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애들을 본다면 천만의 말씀되겠다.
회사에서 부장님 몰래 인터넷 하던 시절이 사실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땐 눈시울이 살짝 적셔진다.
피로가 싹 가셔지고 눈이 맑아지는 경험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직장생활과는 다른 보람이 있다. 애들 등원시키고 깨끗하게 청소한 거실이 반짝반짝 햇볕을 받고 있을 때, 어린이집에 픽업가면 아빠를 부르면서 미친 듯이 질주해 올 때, 내가 해 준 된장찌개를 가족들이 맛있게 먹을 때, 애들이 8시에 눕자마자 잘 때 등등 힘이 나는 순간순간이 있다. 다들 그런 순간들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는 것 아닐까 싶다. 나도 그렇게 키워졌을 테고.
날씨(특히 공기)좋은 날은 밖에서 실컷 뛰어놀게 해 주고, 잘 먹이는 것. 더욱이 두 아이 모두 아토피(지금은 많이 호전되었지만)가 있는 우리 집은 먹는 거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데 피곤하다는 핑계로 외식을 많이 했었더랬다. 산해진미는 못해먹더라도 건강하고 맛있는 집밥을 많이 먹여야겠다는 의무감이 제일 크다.
잘 먹을 때가 제일 예쁘다
잘 먹을 때가 제일 예쁜데 우리 애는 왜 잘 안 먹을까?
어느 유명한 요리 블로그엔가, 책엔가 답이 쓰여 있었다. "맛이 없어서 안 먹는다. 맛있으면 먹는다"
저 말을 보고 살짝 기분이 안 좋기도 하고 회의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세상 모든 부모들이 요리사도 아니고 매번 어떻게 맛있는 걸 해줄까. 어떻게 사 먹는 것처럼 해줄까. 조미료 팍팍 쳐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결국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맛있게 해 주면 먹지 말라고 뜯어말려도 더 달라고 난리다. 어쩌면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대충 먹이면서 잘 안 먹는다고 애만 채근한 게 아닐까 하는 반성이 밀려왔다.
이제 휴직 중이니 그런 핑곗거리마저 사라졌다.
그래서 적어도 하루에 한 끼 정도는 제철 채소로 만든 반찬 한두 가지 또는 따뜻한 국과 함께 집밥을 먹이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집에서 가족들_엄마 아빠도 반주와 함께_이 모두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식사를 하자라는 쉬운 듯 어려운듯한 과제를 실천해보기로 했다.
아직도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하는 두 아이와 우아한(은커녕 제대로 씹어 먹기라도 하면 다행) 저녁식사는 기대하지도 않지만 적어도 대충 먹인다는 죄책감은 들지 말아야지. 그럼 이 휴직에 절반은 성공이라 생각하고.
앞으로 아직도 많이 남은_그렇지만 순삭 되어 버릴 듯한_이 육아휴직 동안 육아와 살림에 대해 아빠는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그 모험담(?)을 조금씩 써나가 보자.
지금까지 두어 달 짧게 경험해 본 결과는,
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