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을 하며 얻는 큰 즐거움 중 하나가 '깨알 상식'을 얻는 것일 겁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면 더욱 좋죠.
이 책은 그런 재미를 밀도 높게 담았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연구원 출신인 저자가 해외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을 바탕으로 재조사하고 분석한 내용을 종합한 것이기 때문이죠.
이 책은 세계 여러 나라들의 상황을 경제적 시각으로 풀었습니다. 그렇기에 딱 하나의 메시지를 뽑아낼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단 하나 메시지를 꼽는다면 '앞으로 한국은 어디에서 성장동력을 찾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꼽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번 리뷰는 마카오 카지노의 대부, 스탠리 호 얘기로 시작하겠습니다.
마카오에 압도적 카지노 호텔...풍운아 스텐리 호
이 책은 중국을 대체할 차기 '경제 마중물 국가'나 기후위기와 러시아 부동항 이슈 등 세계 정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정보들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분명 상대적으로 재미는 떨어질 수 있죠. 이 책은 정말 재미있는 스토리들이 많은데요. 그래서 말 그대로 영화 같은 마카오 카지노 사업가 스탠리 호 스토리를 첫 소개로 다루려 합니다.
우선 마카오의 역사를 짧막히 다루겠습니다. 최근 200년 마카오의 역사는 옆동네 홍콩에 의해 좌지우지됐습니다. 사실 마카오는 홍콩보다 300년 앞서 1540년대부터 무역 거점도시로 성장합니다. 바로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서인데요. 명나라는 포르투갈인들에게 매년 일정 금액을 받는 조건으로 이 땅에 체류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포르투갈인들이 이 지역 해적을 소탕하는데 일조한 것을 감안한 조치였습니다. 하지만 포르투갈이 이 지역을 직접 통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세기가 되며 상황이 달라집니다. 영국이 1840년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뒤 옆동네 홍콩을 할양받습니다. 이를 본 포르투갈 정부도 가만있지 않습니다. 1887년 청나라로부터 마카오 통치권을 획득합니다.
그런데 영국 주도로 옆동네 홍콩이 아시아 교역 중심지로 성장하면서, 마카오는 국지 무역항으로서의 위상을잃어갑니다.
마카오가 교역도시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자 포르투갈 정부는 마카오가 스스로 먹고살만한 방안을 강구합니다. 당시 포르투갈 본국도 유럽 열강 사이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었기에 이역만리 떨어진 마카오에 큰 재원을 투입할 순 없었지요. 정부 차원에서 큰돈 들이지 않고 만들어 낼 수 있는 산업, 바로 카지노였습니다. 1934년부터 본격적으로 마카오 카지노 산업을 육성합니다.
오늘날의 마카오 카지노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은 전설적인 사업가 스탠리 호(1921~2020년)가 1960년대 카지노 사업권을 따내면서입니다. 그는 유럽식 인기 게임인 룰렛과 블랙잭을 도입하고, 당시 마카오 카지노 산업 규모에 비해 매우 거대한 카지노 호텔 '리스보아 호텔'을 건립합니다.
여기에서 경제학자인 저자의 경제학 설명이 등장합니다.'전략적 공약'이라는 것인데요. 다양한 가능성을 미리 차단해 경쟁사를 압박하고 이를 통해 독점 이윤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소도시에 엄청나게 큰 할인마트가 떡하니 있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그 작은 마을에 큰 마트가 있다 보니 경쟁사는 여기에 진출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반대로 그 마트 규모가 어정쩡하면 경쟁사는 '나도 여기서 장사를 해볼 만하겠군'이라고 여기고 근처에 새 마트를 차리겠죠. 출혈경쟁이 시작되는 것이죠.
스탠리 호는 이 같은 방식으로 40년간 마카오 산업을 독점하다시피 하며 마카오를 세계 최고 카지노 지역으로 발전시켰습니다. 현재도 마카오는 총 세수의 85%를 카지노 산업에서 얻는다고 합니다.
다만 1999년 중국이 마카오를 반환받으면서 상황은 달라집니다. 중국 정부는 마카오 카지노 시장을 개방해 글로벌 카지노 업계가 마카오에서 사업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마카오 카지노 발전사를 읽다 보면 희대의 풍운아 스탠리 호의 인생 스토리에 빠지게 됩니다. 증조부가 네덜란드계 유대인으로 혼혈이었던 그는 굉장한 미남이었고 네 명의 부인과 17명의 자식을 두었습니다. 여성 편력이 많아 자신의 자녀를 낳은 여성만 아내로 인정한 게 이 정도입니다.
그런 그가 절대 하지 않았던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도박이었다네요. 홍콩영화 '라스트 프러포즈(2009년)'가 스탠리 호의 러브 스토리를 모티프로 했다고 하니 한 번 봐야겠습니다.
IMF 극복 배경엔 중국 시장이 있었다
저자는 한국의 미래 성장전략에 대해서도 비중 있게 다룹니다. 바로 중국을 대체할 기회의 땅이 어디인지에 대해서 말이죠.
한국 대중들이 중국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이 한동안 한국뿐 아니라 세계의 '경제 마중물'이 돼 주었던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한국 경제가 1997년 IMF 사태(외환위기)를 빠르게 회복한 배경에는 급격히 성장하던 중국 시장이 있었습니다. 중국은 당시 거대 소비 시장으로 급격히 부상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기업들에도 수많은 기회를 줬죠.
중국에서 나오는 저가의 제품과 서비스는 2000년 이후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저물가 기조를 이어갈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중국의 값싼 노동자와 인프라를 활용해 제품과 서비스 가격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많았습니다.
중국의 급격한 소비력 증대는 세계 여러 기업들의 먹거리를 제공했습니다. 저자는 "2000년 이후 중국의 부상에 의존해 성장해 왔던 국가들은 이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강조합니다.
미중갈등...베트남, '세계의 공장' 되나
그렇다면 한국이 경제 성장 동력으로서의 '제2의 중국'으로 삼을 곳은 어디일까요? 저자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그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2023년 기준 총인구가 9885만 명으로 내년에는 1억 명을 돌파할 전망입니다. 2019년 기준 25~64세 인구가 55.1%인 젊은 국가입니다. 현재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이 제한되고 있는 가운데 베트남이 그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현재 베트남의 경제 규모는 태국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지만, 베트남 경제성장률은 앞으로 6% 중반대를 꾸준히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도 6억 3000만 명이 살고 있는 아세안의 중심부에 있어 수출 거점으로도 최적지라는 평가입니다.
게다가 한국은 이미 베트남에 가장 많이 투자를 한 국가입니다. 1988년에서 2017년까지 한국은 베트남에 558억 2700만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2위 일본(461억 5100만 달러)을 월등히 앞서는 수치입니다.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은 베트남 전체 GDP의 20%를 차지한다고 하네요.
베트남은 아직은 사회간접자본(SOC)이 열악하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베트남 여행을 다녀오셨다면 도로나 철도 등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익히 아실 겁니다.
호찌민에서 랑선 지역까지 운송비는 250달러로, 호찌민에서 미국 서부 지역까지의 배송비(200달러) 보다 높다고 합니다.
하지만 SOC 투자도 상당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2019년 호찌민에 갔을 때 지하철 공사가 한창 이뤄지고 있었는데 올해 호찌민 지하철 1호선이 개통할 예정이라고 하네요(다만 계속 정식 개통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또 2015년 베트남에서 주택법과 그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베트남 입국 승인을 받은 외국인과 해외 기업이 베트남에서 주택을 구입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국 개인과 기업으로서는 부동산 투자 기회가 있는 것이죠.
이슬람 시장 진출 교두보, 인도네시아
저자는 또 한국 기업들의 '기회의 장'으로서 인도네시아를 주목합니다. 인도네시아는 2억 7753만 명의 인구 대국입니다. 2023년 기준 GDP가 1조 3917억 달러에 달합니다. 아세안 10개국의 GDP를 합한 금액의 40% 수준입니다.
인도네시아의 값싼 노동력도 큰 장점입니다. 노동집약 산업인 섬유 분야는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대표적 업종 중 하나입니다.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점도 성장 동력의 하나입니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지만(87%가량) 따로 국교를 정해 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또 수많은 소수 민족들이 있고 그들과의 융합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여러 종교들을 존중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합니다. 자카르타에서는 이슬람 사원과 가톨릭 성당이 나란히 서 있고 주차장을 공유하기도 한다고 하네요.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국가에 대한 수출 교두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2014년 신(新) 할랄 인증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 할랄 인증을 받으면 훨씬 수월하게 다른 이슬람 국가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기후위기의 역설...온난화에 부동항 얻게 된 러시아
기후위기가 세계 각국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도 흥미롭습니다.
이상기후는 세계적으로 기후난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전 세계 난민은 2022년에 1억 명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전체 난민의 약 60%는 모국에서 다른 지역으로 피신한 국제 실향민인데, 가장 큰 이유는 전쟁도 종교도 아닌 이상기후 현상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그린란드에 있는 빙하가 전부 다 녹아버리면 지구 해수면은 6m 가까이 상승한다네요.
이렇게 기후위기는 전 세계적으로 생존을 위협하지만, 일부 국가에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러시아가 대표적입니다. 러시아가 역사적으로 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 부동항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는 것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당장 2022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부동항을 획득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크림반도에 있는 세바스토폴 항구는 지중해로 나갈 수 있는 부동항인데, 1954년까지 러시아 영토였다고 합니다.
1703년 표트르 대제가 건설한 상트페테르부르크도 완전한 부동항은 아니라고 합니다. 게다가 상트페테르부르크 항구에서 출발해 대양(북해)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현재의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 폴란드, 덴마크, 네덜란드 등의 좁은 앞바다(해협)를 지나야 합니다. 1860년 청나라로부터 얻은 블라디보스토크 역시 외해의 결빙 현상으로 완전한 부동항은 아니라고 합니다.
현재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부동항은 '칼리닌그라드'입니다.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 본토와 떨어져 있습니다. 지금의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사이에 있는 땅으로 발트해와 접해 있습니다.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 패하면서 소련에 편입됐는데, 1990년 소련은 당시 독일의 통일을 허용 또는 인정해 주는 대가로 독일 정부로부터 이 땅이 소련 영토임을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러시아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에 제대로 된 프로축구단도 없는 이곳에 월드컵 경기장을 지어 이곳이 러시아 영토라는 점을 재확인시켰다네요.
그런데 최근 지금 온난화로 북극해가 녹아 항구가 개방되고 있습니다. 러시아로서는 그동안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부동항을 여러 개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게다가 미국이나 영국 등 열강의 간섭을 받지 않는 국제 해운 항로도 확보할 수 있게 될 전망입니다.
가장 큰 유럽 국가는 덴마크...케인스의 부케는?
이 책에는 '알쓸신잡'과 같은 세계 각국의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이를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보다는 책을 통해 직접 읽으시길 추천합니다. 여기서는 맛보기로 짧게 보여만 드리겠습니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전후해 많은 홍콩 영화인들과 스턴트맨들이 미국으로 떠났다. 성룡의 스턴트 팀인 성가반과 홍금보의 스턴트팀인 홍가반. 이들은 매트릭스, 와호장룡 등 다수의 할리우드 영화에 참여하며 스턴트 노하우를 할리우드에 전수한다.
-현재 유럽 국가 중 영토가 가장 넓은 나라는 덴마크다. 2억1700만 헥타르 규모의 그린란드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덴마크 본토 면적은 429만2000 헥타르. 그린란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출입국 검문검색 절차가 없어서, 비행기에서 내리면 그만이다.
-영국은 2차 세계대전 직후 피폐해진 국민의 삶에 위안을 주기 위해 음악예술진흥위원회를 설립했다. 초대 회장은 '케인스주의'의 창시자 영국 존 메이너트 케인스였다. 그는 국가가 문화예술인들의 작품 활동에 적극 개입해서는 안 된다며 '팔 길이 원칙'을 주장했다.
-러시아에서 맥주는 술이 아니었다. 2011년 이전까지 알코올 농도가 10% 미만이면 음료수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연간 15.7 리터의 술을 마신다(세계 평균은 6.2리터)
-농업강국 네덜란드. 농산물을 직접 재배해서 수출하기보다는 해외 국가로부터 농산물을 수입해서 이를 분류, 가공해 필요한 국가에 다시 수출한다. 가공하지 않은 카카오를 총 11억kg을 수입해 25%가량은 제3국에 되팔고, 나머지는 파우더와 버터 등으로 가공해 다시 해외에 수출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스위스를 침공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당시 독일이 스위스프랑으로 석유를 수입했기 때문이다. 당시 중동 국가들은 전쟁 결과에 따라 화폐 가치가 떨어질지 모르는 독일, 미국, 파운드로 결제하기를 원치 않았다. 독일로서는 스위스프랑 가치를 하락시키지 않아야 했다
-이슬람금융 시스템은 이자를 받지 않는다. 율법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가령 부동산 대출의 경우 이슬람 은행은 고객 대신 주택을 구입하고, 고객은 주택에서 거주하는 대가로 해당 은행에 이자 대신 임대료를 지불한다. 대출 기간 만료 시 고객과 은행은 계약 내용에 따라 은행으로부터 해당 주택을 구입해 자신의 소유로 이전한다.
-외무고시 출신 중에서도 최고의 인재를 파견하는 4대 국가 중 하나가 사우디아라비아다. 에너지 수급 문제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의 패권국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저유가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란이 석유가 풍부하고 또 석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경제학자의 시각으로 세계 각국의 역사화 현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 듯한 재미를 느끼면서 동시에 그 지역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꼭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지금까지 '세계지도를 펼치면 돈의 흐름이 보인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