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공화정의 전직 공무원' 마키아밸리가 쓴 '군주론'
피렌체공화정서 14년 공직 지낸 마키아밸리
축출된 메디치가 복권 초기엔 '반대활동' 연루
사면 뒤 '전향'...공화정 실권자에 '군주론' 바쳐
15~16세기 이탈리아 등 유럽 파워게임 다뤄
'인간관계론'보다는 '정치 외교론'에 더 가까워
자기계발 목적이면 '리더십 책' 읽는 게 나아
"1498년 피렌체 공화국 제2서기국의 서기로 임명돼 외교·정치 현장 일선을 누비지만 1512년 '공화국의 적' 메디치 가문이 복권되며 해임된다. 1513년 '반(反) 메디치 가문 활동'에 연루돼 투옥되지만 이후 사면된다. 이후 메디치 가문에 '군주란 모름지기 이래야 합니다'라는 책을 바치며 환심을 사려하지만 끝내 공직 복귀에는 실패한다. 1525년 메디치 가문이 다시 몰락하자 공화정에서 또 한 자리 맡아보려다 병에 걸려 1527년 사망한다. 향년 58세"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밸리의 인생을 짧은 부고기사로 정리하면 이 정도가 되겠습니다. 리더의 자질을 다룬, 인간관계론과 처세술의 시초라고도 불리는 고전의 명성에 비해 그 책이 나온 배경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초라합니다. 마키아밸리는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 공화국에서 축출된 뒤 '피에로 소데리니 정권'에서 공직 생활을 했고 이것이 그의 정체성의 토대가 됐음에도, 메디치 가문이 복권되자 끊임없이 이 권력에 구애를 합니다.
메디치 가문이 다시 정권을 잡은 초기인 1513년 마키아밸리는 '반 메디치 가문 활동'에 연루돼 투옥됐고, 메디치 가문에 의해 사면된 뒤 그는 '사상전향'을 한 듯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친지가 북한에 연루된 인물들이 더욱 극단적인 반공활동에 앞장서고, 과거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다 전향한 인물들이 더 극단적인 보수색채를 띱니다. 마키아밸리의 사상전향도 그와 같은 맥락이 아니었을까요?
'소데리니 정권의 사람' '반 메디치 활동 연루자'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기 위해 일부러 더 강하게 메디치 가문에 구애했던 것이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그가 군주론을 메디치 가문에 헌정할 당시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이 실권을 장악하고는 있었지만 정치 형태는 공화정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군주론에서 "지금까지 백성을 통치했거나 통치하고 있는 국가와 권력 체제는 공화국 아니면 군주국"이라고 제시하면서 책을 바치는 대상인 메디치 가문에게 '군주국 군주가 해야 할 행동'에 대해 조언합니다.
그가 군주국 군주에게 한 주요 조언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공화국을 영입했을 때는 공화국 시민들은 이전에 누렸던 자유에 대한 기억을 좀처럼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그들을 파멸시키거나 군주가 그곳에 정주하는 것이 안전하옵니다.
-군주국이 새로운 지역을 병합할 때는 이전 통치자의 일가를 제거하고 새로 병합한 지역의 법규나 세금 제도를 바꾸지 말아야 합니다. 군주가 정복한 지역에 정주하거나 식민지를 건설해야 하옵니다.
-백성을 대할 때 전적으로 호의를 베풀거나 완전히 짓밟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어설프게 밟으면 복수하려 들지만 완전히 짓밟으면 그러지 못하옵니다.
-언어와 풍습이 다른 지역의 영토를 정복한 군주는 주변 약소국들을 보호함과 동시에 그들 중 가장 강한 자를 약화해야 하옵니다.
-전쟁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를 피하는 것은 결국 적에게 유리한 상황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옵니다.
-군주는 자신의 군사력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용병제나 외국 지원군을 쓰는 것은 몰락을 자초하는 것이옵다.
'군주론'을 바친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요? 메디치 가문은 그에게 공직을 주지는 않았지만 '피렌체사(史)'를 집필하는 업무를 맡깁니다. 그러나 공직이 아닌 역사서 집필을 맡긴 것은 '요주의 지식인 관리용'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읽은 버전인 출판사 '올리버'는 서문에서 이렇게 해석합니다.
"일선에서 물러난 유능한 정치인에게 빈 깡통이라도 주어서 소일거리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거대한 고래처럼 배를 뒤집으려 들지도 모른다"라는 통찰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겠느냐고요.
저는 이 책이 리더십이나 인간관계론의 원전이라는 측면에서, 그 고전을 직접 접해보자는 취지에서 이 책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제시하는 '군주의 행동 강령'은 은유적 의미에서 군주가 아니라, 정말 일정 영역의 영토에서 백성을 통치하는 군주를 위한 것이라 이를 그대로 21세기에서 활용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그가 제시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은 기억해 둘 만 하지만, 현대에 맞는 인간관계론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굳이 인간관계론 그 자체를 배우기 위해 이 책을 읽을 필요는 크지 않아 보입니다.
차라리 15~16세기 당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주요 유럽국가와 교황청 간의 역사를 접한다는 차원에서 읽어볼 만한 고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로마 시대 외에는 주로 15~16세기 당대의 외교, 정치 현상을 다루며 메디치 가문에 군주의 행동 강령을 설명합니다.
현대의 우리나라에서 '군주론'이 나온다면 그것은 리더십 책이 아니라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에게 정치학자가 써서 제출하는 '2027년 대선 필승전략' '미국과 중국 간 패권전쟁에서의 대한민국의 생존전략' 보고서에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공화정'의 수혜를 입은 공무원이 '군주국'을 꿈꾸며 패권자에게 바친 책,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