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생일은 가고

생일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

by 란님

"우리 이제 생일선물 주지 말자"

얼마 전 열린 내 생일 기념 모임에서 내가 한 말이다.


대학동기인 우리들은 생일이면 다 같이 백화점에서 만나 생일자가 원하는 선물을 하나씩 선사하는 기쁨을 누렸다. 그런데 내겐 언제부터인가 그것이 기쁨이 아니라 불편함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축하하는 마음과 기뻐하는 마음만 가득하길 바랐는데, 사줘야 한다는 의무감과 골라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가격대를 고민해야 하는 것도 머리가 아팠고, 다른 기회에 사면 더 혜택이 큰 물건을 바로 사야 하는 것도 아까웠다. 이럴 거면 차라리 현금 줄까생각해 봤지만 좀 아닌 것 같았다(왜 경조사에 현금이 오가는지 이해가 갔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기껏해야 4시간 남짓 만나는 우리의 시간에 선물 쇼핑까지 하면 대화할 시간이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돌고 도는 사이클을 끊는 건 나부터여야 했다. 다른 친구 생일에 갑자기 그만하자고 하는 건 경우에 맞지 않으니까, 내 생일이 오기 기다렸다.






일상 속에서 특별한 날을 꼽으라고 하면 대부분이 생일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어릴 때는 파티까지 열어가며 축하해 줄 것을 강요했는데, 언제부터가 생일을 챙기는 게 민망다(물론 가족들과는 케이크를 먹는다).


생일 축하인사를 듣는 것도 오그라든다. 오늘만 해도 여럿의 생일일 테고, 어제도, 내일과 그다음 날도 누군가(그것도 복수형으로)의 생일일 텐데 특별할 것도 딱히 없지 않나.


변 분들이 따스한 인사를 건주시면 그냥 기뻐하고 넘어가면 되련만, 생각이 디테일하게 많은 나는 그분들이 얼마나 많은 축하를 전하셔야 할지를 걱정고 만다. 괜히 생일 알림을 안 꺼서 짐을 지운 건 아닌가 하는 미안함 느끼고, 나도 그분들 생일에 꼭 인사를 건네는 다짐지 마치면, 따뜻게 데워진 마음과는 달리 머리 지끈거린다.





생일이 더 이상 특별하게 껴지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먼저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던 때와는 달리 관계들을 통해 다른 특별한 날이 많이 생겨났다.


배우자가 생긴 후로 각자의 생일보다 우리의 기념일에 더 큰 의미가 부여되었다. 결혼 햇수가 쌓이는 건, 서로의 삶에 찾아온 고난 꺾이지 않고 곁을 지켜낸 성취의 기록이 기념할 만하다. 하지만 이미 식사, 여행, 쇼핑, 육아 등 거의 모든 생활을 공유하고 사는데, 생일이라고 해서 미역국 외에 뭘 더 할 수 있겠는가.

아이가 생긴 것 가장 큰 영향을 줬다. 아이들 관련 기념일을 챙기는 것은 감동다.

몇 살이 되어 어떤 발달과업을 이루었으며 새로운 경험치를 얼마나 쌓았는지 등, 이미 외적 성장을 마친 부모와는 다르게 '기념비적 이정표'가 계속 나타난다. 나는 마치 게임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듯 이정표를 찾아내고 다음 단계로 이동한다.

이 과정은 단순히 아이가 성장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부모가 양육과정을 잘 이행하며 이어간다는 말이기에 성취감이 크다. 이런 다이내믹한 과정을 겪다 보니 상대적으로 어른 생일의 중요도는 낮게 느껴진다.


한때는 자식들 세상 전부였지만, 이제는 한 개인의 정체성을 되찾신 부모님 생신도 마찬가지다. 장년이 된 자식 따라 노인이 되어 10년 주기의 굵직한 생신을 챙기시게 되다 보니, 다른 해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작아진다. 가족이 모이는 행사도 어버이날과 명절에 더 챙겨야 할 것 같고 말이다.


생에서 가장 바쁘고 책임이 많은 시기를 살아내 있는 형제자매나 친구은, 그저 조금 더 자주 보면서 동시대의 고민을 나누며 응원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각자 사정이 다른데 다 제쳐두고 특정한 날에만 모일 필요는 없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간직하다가 사정이 허락될 때 틈틈이 만나면 되는 것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기들이니 한가해지는 시기가 돌아오면 또 같이 한가리라.





생일이 특별하지 않다 생각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특별한 날(special occasion)에 대한 본질적 거부감'이다.

머릿속에서 항상 "뭣이 중헌디"를 외치 "매일이 특별한 날"이길 원하는 나에게 '특한 날을 위해 평상시엔 특별함을 미루는 삶'은 매력이 없다. '평소엔 보기 힘드니까 생일에라도 만나자'보다는 만들 수 있는 기회마다 자주 소중한 이들과 일상의 소중함을 나누며 살고 싶다. 마치 만남이라는 것 우리에게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세 번째 이유는 물욕이 약해져서이다. 갖고 싶은 것이 많아 생일을 빌미로 주변에 졸라대던 어린 시절과 달리, 나이를 먹으며 생애전환기를 여러 번 지나 보내니 갖고 싶은 것이 적어진다. 필요한 것들과 갖고 싶던 것들을 이미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삶에 필요한 물건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물욕은 결코 온전히 충족될 수 없는 욕구이고, 갖고 싶었던 것(중 가질 수 있는 것)을 손에 넣은 기쁨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나는 이미 안다. 시간이 지나면 구매했던 물건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한 기억이 남아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개인 사정에 기인하는데, 내 생일 앞뒤로 가까운 이들의 생일이나 연말연시 기념일들이 몰려있다는 점이다. 한 달 넘게 축제 분위기를 즐긴다고 하면, 체력도 좋고 의무도 적은 어릴 때야 신이 나지만 이제는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그렇다고 내 생일만 챙기기엔, 불과 며칠 전에 지난 가족, 연인(이젠 남편), 친구의 생일보다 내 생일이 더 중요하다 걸 납득하기 렵다. 생일이 지난 후에 다가올 크리스마스(예수님 생신)와 1월 1일(새로운 해가 태어나는 날)과 비교하면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국 생일은 내가 살아낸 햇수를 카운트하는 날일 뿐, 다지 특별 건 없다는 결론이다. 내년 생일엔 미리 알림을 꺼고 조용히 지나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