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아침

by 란님


어릴 적 생각이 난다. 나는 하나를 들으면 열 가지 생각이 뻗어 나가는 아이였다(열을 깨우치진 못했다). 그런 내가 그린 크리스마스 아침 모습의 클리셰는 이런 것이었다.


산타의 의상처럼 빨간 쫄쫄이 잠옷을 입은 아이가 깨어나자마자 눈을 부비며 거실에 있는 크리스마스트리 앞으로 뛰듯이 걸어간다. 아빠의 키만큼이나 커다란 트리는 형형색색의 불빛과 오너먼트로 반짝이며, 깔끔하게 정리된 아늑한 거실 한편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트리 아래에는 밤사이 산타 할아버지가 와서 놓고 가신 네모난 선물상자들이 트리의 빛이 바뀔 때마다 그 빛을 함께 반사하며 반짝인다. 어젯밤 잠들기 전 산타할아버지를 위해 놓아둔 크리스마스 카드와 쿠키가 없어진 걸 확인한 후 함박웃음을 지은 아이는, 설레는 눈빛으로 다가가 가장 큰 선물부터 들어 올려 자리를 잡고 앉는다. 안쪽이 은색인 비닐 포장지를 아이가 뜯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의 상상은 끝이 난다.


나는 저런 크리스마스 아침을 가져본 적이 없다. 집안 식구들 대부분이 T였던 우리 집은 트리도 몇 번 만들지 않고 수십 번의 크리스마스를 지나 보냈다. 상상 실망을 반복하면서 '나는 내 상상처럼 살아야지' 생각도 해보았으나, 막상 그런 아침을 만들어줄 수 있는 위치가 되고 나니 다른 고민이 생긴다.






매주 일요일이면 성당에 가서 미사에 참석하고 주일학교를 다니던 나에게 "성탄절"은 무수한 생각 소재를 제공해 주었다. 나는 성서 공부를 하거나 예수님 탄생과 관련된 연극 연습을 하면서, 그리고 산타와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생각의 대부분이 위의 상상처럼 '아이의 바람'과 연결되었고, 대부분이 자라나는 과정 속에 바사삭 깨져버렸지만 말이다.


지금은 성당에 가지 않는다. 스스로가 가톨릭 신자라고 생각은 하지만, 신과 내가 연결되어 있기 위한 필수요건이 종교행사 참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특정 종교의 신만이 "진짜"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많은 이들이 이 부분에서 종교 거부감을 느끼리라).


모순되게 들리겠지만, 신이 하나라는 유일신 신앙은 믿는다. 정의하는 인간의 단어가 다를 뿐, 모든 종교의 신은 결국 다 같은 분 아닐까 하는 루뭉술한 생각을 갖고 있다. 때문에 어떤 종교를 믿는지가 그리 중요한 것 같진 않다. 해당 신앙이 사람의 삶에 어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나는 내 종교가 꽤 마음에 들지만, 아이들은 자기 종교(무교 포함)를 스스로 선택했으면 하기에 종교행사에 정기적으로 참석하지는 않는다. 그건 본인들이 자라며 세상을 접하고 알아가면서 천천히 결정할 주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을 견지하려다 보니 종교적 배경지식 섞지 않고 크리스마스를 설명하는 일이 꽤나 곤혹스럽기도 하다. 성당을 다니며 자연스럽게 접하고 배운 나는 비신자의 시각을 알지 못한다.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 마치 타국에 놀러 가서 처음 알게 된 축제에 대해 말해주듯이 말이다.





크리스마스는 가치관 교육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던진다. 온 세상이 들썩이는 분위기에 같이 휩쓸려가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생각해봐야 한다.


먼저 선물, 크리스마스엔 왜 선물을 줘야 하는가.

풍족하지 않던 예전과 달리 우리는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가 충분히 제공을 해주고 있고 특별한 날로 생일과 어린이날도 있건만, 왜 예수님 생신인 크리스마스에까지 선물을 는 것이 의무처럼 여겨지며 그 공은 산타할아버지가 가로챈단 말인가.


게다가 "울면 안 돼",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안 주신다",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알고 계신다"라니! 요즘 관점으로 보면 그야말로 가스라이팅의 표본이다. 감시하는 른들의 입맛에 맞는 아이가 되어야 선물을 받을 수 있고, 선물을 못 받는 건 나쁜 아이라서 그런 거라니. 가히 폭력적이다.


챗GPT는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는 이유에 대해 여러 이유를 대답해 주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동방박사들이 선물을 준 것에서 비롯된 전통으로, 친절과 감사를 나누고 관대한 포용을 보여주는 행위로서 선물을 준다고 했다. 특히 산타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마법 같은 즐거움과 상상력, 경이감을 주는 존재라고 한다.

그렇다고 하니 유치원에서 선물을 주시는 행사를 열면 감사한 마음으로 협조하고 있지만, 부모가 따로 집에서 선물을 준비하지는 않는다(선물이 당연시되는 문화는 별로다). 개개인이 뭘 받았는지를 자랑하기보단 취지에 맞게, 연말에 서로 나누고 포용하며 공동체의 느낌을 더 살릴 수 있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크리스마스트리는 무해하다.

보기에도 예쁘고 말분위기도 내고 좋지 않나.'

라고만 하기엔 이것도 아쉬운 점은 있다.


푸르른 상록수를 가져다 겨울에도 생명력을 느끼며 축제를 기념하던 전통이 남아있는 건데, 모두 획일화된 플라스틱 트리를 그저 크고 화려하게 장식하여 사진 촬영과 자랑용으로 활용하는 느낌이다(우리 가족도 멋진 트리를 보면 달려가서 찍는다). 의미는 사라지고 돈을 얼마나 들였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느낌이랄까.


아이들에게 상업 마케팅의 압박을 최대한 덜 받게 하고 싶은 부모의 입장에서는 심히 우려되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나 자신이 젊은 시절 트렌드를 쫓는 쇼핑중독이었고 그것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경험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런 영향에 노출되지 않길 바는 마음이다.


결국 트리를 할지 말지, 한다면 어느 정도 선으로 할지 고민하다가 올해만 때울 생각으로 할인하는 제품을 대충 들여왔다. 새로운 오너먼트는 하나도 사지 않았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로 하나씩 모은 연도별 오너먼트만 몇 개 달려있을 뿐이다.

우리 집 트리에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뜻을 표명한 건데, 아이들은 오너먼트가 없어도 괜찮다더니 장난감을 잔뜩 들고 와 트리를 꾸몄다. 몇 분이 채 지나지도 않아 트리가 금방 가득 찼다.


크리스마스는 그냥 즐거운 축제일 중의 하나일 뿐인데, 어려서부터 기독교인으로 키워진 나만 혼자 큰 의미로 받아들이는 건 아닌가 하는 타격감을 받았다.






양의 전통문화인 크리스마스 축제가 우리나라에서도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예전 통금이 있던 시절(토요일까지도 일하던 시절)에 크리스마스에만 통금이 없어 연인들이 그날만 기다렸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때와 비교하면 물질적으로 많이 풍요로워졌지만,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마음만은 그때보다 빈곤해진 건 아닐까. 크리스마스는 선물과 트리가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내가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인 걸까. 아이들에게 이 문화를 어떻게 가르치고 어떤 가치관을 정립해 주는 게 좋을까. 오늘을 기점으로 좀 더 고민해 볼 문제이다.


Merry Christmas!






작가의 이전글또 한 번 생일은 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