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언어
싱가포르 공항에 내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스타벅스다.
언제부터인가 해외에서 생소한 공간이 주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면 스타벅스나 맥도널드 간판을 찾아다닌다.
익숙한 나무 테이블과 손글씨 메뉴판에 안도감을 느끼고 주문 카운터에 줄을 섰다.
내 앞에는 중국 계통으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과한 손동작과 함께 중국어로 한창 대화 중이었고, 그 앞에는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무슬림 계통의 히잡을 두른 아주머니가 주문을 하고 있었다.
살짝 엿듣고 싶었지만 내 귀는 진공 상태처럼 웅웅거렸고, 저기 멀리서 조물주가 내려다보는 듯 우주의 티끌처럼 느껴졌다.
"오더 플리즈?!"
초록색 앞치마를 두른, 까무잡잡한 피부에 옆머리를 바싹 자른 이십 대 중반의 남성이 카운터 너머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오더?"
"Iced americano, tall size please.”
나는 평소 주문하던 메뉴를 기계적으로 내뱉었다.
“캔 캐앤~”
점원이 주문을 처리하며 전라도 사투리 마냥 구수한 억양으로 답했다. 알듯 모를듯한 단어의 등장에 나는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Pardon please?”
점원은 거스름 돈을 세다 멈추고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캔야~”
“Oh... okay.”
더 이상 묻는 게 실례가 될 듯 한 묵직한 미소에 짓눌려 나는 황급히 계산을 하고 뒷사람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Can’이 ‘Yes’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는 건 몇몇 가게에서 멋쩍은 미소를 몇 번 더 지은 후 깨닫게 되었다. 더불어 'Cannot'은 'No'를 뜻하고, 'Yesterday can, today cannot'은 '예전에는 가능했으나 더 이상 불가능하다'의 상용구임을 깨달았을 때는 Singlish라는 언어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Singlish는 중국어 어순에 영어와 말레이 (Malay), 호키엔 (Hokkien) 등의 단어 조합으로 이루어진 언어다. 정부에서는 저급한 표현 방식이라며 장려하지 않지만, 이미 지역 문화의 한 부분으로 깊숙이 자리 잡아 Singlish를 빼고 싱가포르를 논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Cannot) 보인다.
재미있는 건 싱가포르 사람들에게 Singlish를 하나의 언어로 인정하는지 물어보면 사람마다 답변이 다르고 시선이 다르다는 점이다. 누구는 손사래를 치며 당연히 언어가 아니라 하고, 누구는 자랑스럽게 'Can~'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반응도 참 싱가포르스럽다.
적어도 아이폰은 Singlish를 하나의 언어로 인지하고 있다. 언어 설정에 ‘English (Singapore)’가 따로 있는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