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온다 Jan 05. 2024

 노팅엄 포레스트를 아시나요

오래 전 이야기지만, 영국에 살았던 적이 있다. 2009년 한 해 동안 영국, 정확히는 잉글랜드의 노팅엄(Nottingham)이라는 도시의 한 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었다.(아 이러면 대충 나이가 까발려지겠구나.) 런던에서 버스나 기차를 타고 2시간 정도 위로 올라가는 곳에 위치해 있는 곳이다. 이스트미들랜드(East Midland) 지방이다. 대충 내륙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충주 정도의 느낌이랄까.

                                         대충 이 정도의 위치. 구글맵의 도움을 받았다.


그 해 11월 정도에서야 영국에 아이폰3s가 처음 출시되었기에 스마트폰 없이 유학 생활을 했다고 보면 된다. 영국에 있으면서 다른 유럽 나라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그때 구글맵이 아니라 진짜 종이 지도를 들고 다녔다. 호스텔 입구마다 유명 관광지와 시내 주요 명소를 표시한 지도가 비치돼 있던 시절이다. 부모님과의 소통을 노트북으로, 스카이프로 했던 기억이 난다. 국제전화마냥. 강렬한 1년이었으나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모든 게 많이 옅어졌다. 생각나는 건 맛있었던 치킨티카마살라 정도. 


그때는 축구의 종주국이라는 잉글랜드에 살고 있었지만 축구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았다. 박지성이 맨유에서 뛰고 있던 시절이지만 직관을 하러 맨체스터에 가 보자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노팅엄에서 맨체스터가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말이다. 맨유를 포함해 유명한 팀들인 첼시, 아스널, 리버풀 등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선수들은 잘 몰랐다. 그런 수준이었으니 내가 살던 도시인 노팅엄에도 축구 팀이 있다는 사실을 꽤나 나중에야 알았다. 같이 어울리던 한국 사람 중 누군가가 "여기에도 노팅엄 포레스트라고 축구 팀 있어"라고 말을 했던 것 같다.


"응?노팅엄 포레스트?"

"응. 근데 1부 팀은 아니야. 잘 못해."


기억을 요약하면 이 정도의 대화였다. 이름부터 희한했다. 보통 FC를 많이 붙이는데 포레스트요? 아, 노팅엄은 로빈후드의 고장이다. 로빈후드의 주 무대였던 '셔우드 숲'이 노팅엄 중심부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그래서 이름이 '포레스트'란다. 그러면서 '그래도 영국에 있는데 축구 경기 한 번은 보러 가야 하지 않느냐' 등의 얘기가 오가긴 했는데 흐지부지됐었다. 그리고 노팅엄 포레스트라는 이름은 기억에서 잊혔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어쩌다 보니 스포츠, 특히 해외축구를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 같이 살게 되었다. 사귄 이후부터 함께 해외축구 중계를 꽤나 많이 봤고, 특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경기 하이라이트는 거의 다 챙겨봤다. 스포츠를 싫어하지 않았던 터라 자연스럽게 이 취미생활을 같이 하게 됐다. 2022년 여름 22-23 시즌 프리미어리그가 개막했고, 신나서 중계를 챙겨보는데 생소하고도 반가운 팀이 있었다. 2009년 나를 아주 사알짝 스쳐 지나갔던 그 노팅엄 포레스트가 챔피언십리그(잉글랜드의 2부 리그)에서 승격해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 것이다. 반가웠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최애 팀인) 맨체스터시티나 (남편의 최애 팀인) 아스널의 경기만큼 챙겨본 건 아니지만, 노팅엄이 경기를 하면 신기하게도 매우 자연스럽게 노팅엄을 응원하게 됐다. 홈 경기장을 찾은 노팅엄 팬들을 보면서는 '아 가 살던 곳에 지금도 살고 있는 사람들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영국에 있을 때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서 경기를 보러 갈 걸 하는 후회도 들었고.


어쨌든 노팅엄 포레스트는 승격한 22-23 시즌에 잔류에 성공하여 현재 23-24 시즌에도 당당하게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다. 지금은 리그 20개 팀 중 15위에 랭크되어 있다. 아슬아슬하다. 18위부터 20위는 짐을 싸서 프리미어리그를 떠나야 한다. 챔피언십리그로 강등되는 것이다. 하위 팀들은 강등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할 터다. 노팅엄도 얼마 전 성적 부진을 이유로 감독이 교체됐다. 황희찬 선수가 뛰고 있는 울버햄튼 원더러스의 감독을 맡았던 포르투갈인 누누 에스피리투 산투가 노팅엄으로 왔다. 그리고 다행히 그 이후 2023년 연말 성적이 매우 좋다.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3:1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2:1로 이겼다. 둘 다 노팅엄보다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팀들이다. 기세가 좋다.


이제 시즌은 반환점을 돌았다. 전체 38라운드 중 모두 20라운드씩을 소화했다. 한 경기 한 경기 아쉬워하며 볼 예정이다. 그리고 노팅엄을 (티를 많이 내지는 않겠지만) 꾸준히 응원할 생각이다. 무슨 이유에서냐고? 그냥 내가 살았던 곳이니까. 5월말, 리그가 마무리되면 웃으며 잔류할 수 있길 빌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