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 ⑨
요즘 제주에서 핫한 곳을 하나 꼽으라면 카페 ‘공백’이다.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의 형이 운영한다고 알려져 오픈 전부터 BTS 카페로 소문이 자자했고 문 연 지 한 달여 만에 국내외 여행객들의 필수 코스가 됐다. 구좌읍 동복리에 있는데, 제주도 지도를 접었다 펴면 데칼코마니처럼 맞은편엔 GD 카페로 유명한 ‘몽상 드 애월’ 이 있어(지금은 사업권을 넘긴 걸로 안다) ‘서쪽에 GD가 있다면 동쪽엔 방탄이 있다’는 우스갯말도 나온다.
뿐인가. 포털 검색창에 '제주 카페 여행'을 입력하면 '인생샷 건지는 카페', '전망이 끝내주는 카페',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이색 카페' 등이 주르륵 나열된다. 몇몇을 클릭해 휙- 훑어보니 중복되는 곳도 별로 없다. 어쩜 하나 같이 그렇게 감성 충만하고 아이디어 기발한지! 실제로 한 블로거는 카페에서 시작해 카페로 끝나는 제주 여행을 했는데, 아쉬움이 남아 '한 번 더'를 기획 중이었다. 실상 카페 투어가 새삼스럽지 않은 시대다.
바야흐로 카페가 관광지인 시대인 것이다. 카페 투어라는 말이 공공연히 쓰이고 관련 책도 쏟아진다. 여행이 새로운 경험을 찾아 나서는 일이라면 지역의 특색 있는 커피와 디저트를 맛보거나 공간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향유하는 시간은 분명 여행의 일부나 전부가 되기에 충분하다. ‘저희는 음료를 팔지 않습니다. 가치를 팝니다’는 스타벅스의 철학은 한국 상륙 당시엔 센세이셔널했지만 지금은 그런 가게를 만나는 일이 어렵지 않다.
가령 마구간이나 귤 창고, 고구마 전분 공장을 개조해 카페로 꾸민 곳들. 얼마 전엔 전신이 은행이었다는 서귀포시 대정읍의 한 카페를 다녀왔는데 단지 인테리어만이 아니라 제주에서 나는 신선한 재료로 만든 창의적인 메뉴들 하며 통장 모양을 본뜬 소식지까지 가게의 정체성을 섬세하게 담고 있어 몹시 인상적이었다. 테이블과 의자를 밀어두고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는 카페가 있는가 하면 홀이 그대로 갤러리가 되어 전시회를 선보이는 카페도 있다.
우리는 거기에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게 아니다. 커피는 카페를 즐기는 일부일 뿐, 주인장의 취향을 엿보고 공간감을 느끼며 기분 좋은 에너지를 받으러 간다. 가끔은 고민 중이던 어떤 문제에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을 자극하는 총체적인 즐거움을 더욱이 단돈 몇천 원에 실컷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의 사이사이 악보의 쉼표처럼 때론 음표처럼 카페를 끼워놓곤 한다.
최근 소설가 김영하가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실패한 여행은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 여행’이라 했다. 그 얘기를 듣다가 한 달 살이, 일 년 살이 같은 체류 관광을 선호하는 트렌드와 상관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이 더 나은 삶을 위한 거라면 오래 기억되어 내게 영향을 주어야 하니까. 그러려면 몸에 기록되는 것만큼 강력한 게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카페 역시 스쳐 지나는 장소가 아니라 머무르는 동안 시공간을 감각세포에 저장할 수 있는 장소라는 점에 또 한 번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집에 없다면 카페에 있을 거라고, 만일 카페에 없다면 카페에 가는 길일 거라고 말했던 소설가 발자크는 카페 ‘르 프로코프(Le Procope)’를 출근하다시피 했고, 천재 화가 피카소와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는 카페 ‘레 두 마고(Les Deux Magots)’의 단골이었다. 그 옛날 카페가 ‘예술인’들이 모여 책 읽고 음악회나 미술전시회를 여는 곳이었다면 지금은 ‘예술적으로 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예술적으로 살고 싶어서 사람들은 여행을 하고 카페에 간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커피숍이라고 씁쓸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 마음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온고지신으로 공간을 빚어내고 자기다움을 새겨 넣어 카페를 여는 새로운 시도들이 일단은 반갑다. 좋은 건 나누자고, 소식을 실어 나르는 SNS 유저들의 다정한 오지랖도. 이런 분주함이 나는 참 사랑스럽다.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는 동명의 제목으로 제주도의회에 연재 중인 칼럼을 묶은 매거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