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JTBC에서 종영한 '청춘시대'라는 드라마가 있다. 소소하게 입소문을 타는가 싶더니, 꽤 호평을 받으면서 종영했다. 내 주변에서도 초반에는 거의 아는 이가 없는 드라마였는데 어느순간부터 청춘시대를 보는 이들이 주변에 꽤 생겨났다. JTBC가 tvn처럼 드라마로 주목받는 채널이 아니기도 하고 홍보가 많았던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다다라서, 호평이 쏟아지고, 다양한 리뷰와 해석들이 올라왔다. 나 역시 청춘시대를 실시간으로 달리면서 올해 꽤 괜찮은 드라마가 나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꼭 리뷰를 써야겠다 다짐했다. 그게 미루고 미뤄져서 종영한 지금이 되었지만 어찌됐든.
청춘시대가 처음부터 끌리는 드라마는 아니었다. 청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슴이 뛰는 아직 철없는 직장인임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남발되는 '청춘'이라는 단어가 떡하니 타이틀에 들어가 있어서 오히려 제목을 듣고서는 볼까 말까 하고 망설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당시에 보고 있는 드라마가 없어서 볼만한 것을 찾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에 이 드라마를 스킵하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잠깐 고민의 시간을 겪고 청춘시대 1화를 플레이한 나는 드라마가 끝날 때 뒷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무런 기대 없이, 무슨 내용인지는 전혀 파악하지 않고 그저 가벼운 청춘들의 드라마이겠거니, 하고 보았는데, 이 드라마는 그저 그런 가벼운 드라마라고 할 것이 아니었다. 인물들은 어리고 발랄했지만, 각자가 아픔과 사연이 있었고, 그것은 지극히도 현실적이었다. 개개인의 삶은 쉽게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우리의 삶과도 너무나 비슷했다. 1화를 보고서 나는 정말 이 드라마는 통찰력을 가지고, 하나하나의 인물에 많은 것을 담아내려고 하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대략의 스토리를 이야기 해보면, 청춘이라는 말로 수식될 수 있는 5명이 '벨에포크'라는 이름의 셰어하우스에 모여 살게 되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삶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보고 나서 이 드라마는 꼭 챙겨봐야겠다, 라고 생각했던 1화의 내용은 아마 누구나가 겪었을 법한 일을 다루고 있었다.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셰어 하우스에 처음 들어오게 된 은재를 통해, '처음'에 대한 긴장감과 어색함, 고민 등의 감정을 여과없이 나타냈다. 1화의 초반부는 은재의 시점에서 이루어지지만 후반부에서 같은 장면에 대한 다른 인물들의 감정, 상황을 보여주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많은 공감을 했다. 아마 다른 시청자들 역시 1화를 보고 많이들 공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1화에서의 공감은, 2화, 3화로 회차를 거듭해갈수록 '생경함'과 '이해'로 바뀌어간다. 1화는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고 한다면, 다른 회차에서는 벨에포크의 5명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이야기와 다른 환경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상황들이 내가 겪어본 것이 아니라 '생경함'을 느꼈지만 분명 그 모든 내용들은, 신문에서나 뉴스, 인터넷을 통해 우리 주변에 있었을 법한 이들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집안의 사정으로 인해 여러번 휴학을 하며, 28살의 나이로 아르바이트와 학교를 전전하는 윤선배, 그리고 얼핏 보았을때 제일 '여대생'에 가까워 보이지만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많은 상처를 입게 되는 '정예은', 모태솔로에 허언증을 가지고 있는 특이한 패션센스의 '송지원', 그리고 남자들의 돈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지냈던 '강이나'까지.
이들은 어찌보면 그렇게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도 현실을 반영하고 있어, 보는 이들에게 공감을 사고 연민을 산다. 주변에 있을 법한 캐릭터들이 벨에포크에 모여 살면서 자신들의 하우스메이트가 그저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객체'가 아니고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지구나, 하는 끈끈한 우정을 만들어내게 된다. 시청자들 역시 그들의 삶을 브라운관 너머로 세밀하고 면면히 들여다보면서 나와는 다른 이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청춘시대의 성공요인은 아마도 이런 현실성 있는 캐릭터들의 삶을 조명해서 보여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각각의 캐릭터들의 삶이 너무 뚜렷하고 명확해서,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공감할 수 있게 해주고,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똑같지는 않더라도 캐릭터가 가진 다양한 모습들 중 이러한 부분은 나와 비슷하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게끔 하는 드라마였다. 그렇지만 마냥 현실의 씁쓸함만을 보여주지 않고, 서로가 힘이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는 존재들을 만남으로써 현실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해준다.
또한, 청춘시대는 온전히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간의 미디어를 통해 노출된 '여자들의 이야기'는 남자든, 권력이든, 무언가를 놓고 불꽃 튀는 신경전을 펼치는 류의 이야기가 많았다. 그렇지만, 청춘시대는 삶을 살아가는 동지인 다섯 여자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었다. 이 부분이 기존의 '신경전'이 난무했던 여타 드라마들과는 달라 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스토리와 캐릭터의 조화가 청춘시대의 인기 몰이에 한 몫했지만, 드라마의 퀄리티를 더욱 높여준 것은 연출, 배우들, 그리고 가슴에 와닿는 대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먼저 연출 쪽에서 내가 감탄했던 것은, 12편의 각기 다른 오프닝이었다. 각 회차마다 다른 '부제목'이 들어가고, 그에 맞춰서 오프닝이 들어가는데, 이 오프닝들이 감각적이어서, 더 트렌디한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또한 각각의 회차에 메인이 되는 이들의 뼈가 있는 듯한 나레이션과 제대로 들어맞는 배경음악까지. 이러한 것들이 청춘시대를 더욱 돋보이게 해준 것 같다. 가끔 하나의 씬에서도 연출이 돋보이는 경우가 있었는데, 예를 들면 13회에서 은재가 자신의 과거이야기를 지원에게 하려고 할 때가 있다. 그 때 햇빛이 은재 얼굴을 비추는데, 얼굴의 반은 밝은 햇빛이 비추고, 나머지 반은 햇빛이 비추지 않는다. 이게 의도한 바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나는 이 연출이 딱 '은재'라는 캐릭터를 설명해주는 것처럼 보여서, 의도된 연출이라고 느꼈고, 그래서 신선한 연출이라고 생각했다.
연출에 이어, 배우들 역시 청춘시대를 더 '청춘'처럼 보여주는 것에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은재 역을 한 박혜수 배우는 알고보니 케이팝스타 시즌4에 나왔던 출연자라고. 아무튼 20살의 풋풋한 여대생, 약간의 우울함을 감추고 있는 여대생의 역할을 너무 잘 소화해 줘서 놀라웠다. 또한 강이나 역을 맡은 류화영의 재발견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까칠하지만 언니다운 면모가 있는 캐릭터(이후 가장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는 캐릭터)를 잘 소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8살의 악착같이 삶을 살아내는 윤선배 역할의 한예리 역시, 너무 연기를 잘해서 늘 드라마를 보는 내내 '윤선배 좀 행복하게 해주세요.'를 외치게 했고. 여담이지만, 한예리 배우는 목소리가 정말 좋아서, 대사를 칠 때나 나레이션을 할때 사람의 마응메 확 와닿게 하는 게 있었다. 목소리가 정말 좋구나, 하고 느낀 적이 꽤 있었다. 박은빈은 내가 기존에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독특한 4차원 캐릭터 '송지원'을 이번에 너무 잘 소화해서,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 전까지만 해도 조금 평범한 이미지와 캐릭터였는데, 청춘시대에서 똘끼 가득한 캐릭터를 제대로 묘사했던거 같다. 더불어 독특한 페션도 찰떡같이 소화! 정예은 역의 한승연은 약간 아쉬운 연기를 보여주긴 했으나, 정예은이라는 철없는 여대생 캐릭터가 의외로 잘 맞아떨어져서 보는데 그다지 불편함은 없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청춘시대에서 좋았던 건 '대사'들이다. 짧게 짧게 스쳐지나가는 대사들이 참 좋았다. 나레이션으로 나왔던 좋은 대사들과, 그리고 캐릭터들이 그냥 뱉어낸 작은 대사인데도 마음을 울렸던 것들.
화장은 점점 진해지고 거짓말은 점점 늘어간다. 언제부터 맨 얼굴이 부끄러워진걸까. 진심이 창피해진 걸까.
나만 참는 줄 알았다. 나만 불편한 줄 알았다. 나만 눈치보는 줄 알았다. 말해도 소용없을 거라는 생각. 말하면 미움받을 거라는 두려움. 비웃을 거라는 지레짐작. 나는 오만했다.
어딘가를 가려고 하니까 길을 잃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목표같은 걸 세우니까 힘든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오래 같은 자리에 있어도 길을 잃나보다.
소통하지 않으면 공감은 일어나지 않는다. 공감이 없다면 치유도 없다. 치유되지 않는 상처는 곪아갈 뿐이다.
소리내어 울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군가 내 목소리를 들어줬으면 싶을 때가 있다. 듣고서 '괜찮다'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토닥여줬으면 좋겠다. 응석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 사람이든 운명에게든
특별한 것을 동경하던 때가 있었다. 나는 특별한 운명을 타고 났다고, 남다른 삶을 살거라 믿었다. 죽어도 평범해지진 않을거라 다짐했었다. 평범하다는 것은 흔한 것. 평범하다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 것. 평범하다는 것은 지루하다는 의미였다. 그떄의 나에게 평범하다는 것은 모욕이었다.회사원이 될거야. 죽을만큼 노력해서 평범해질거야. 나는 지금 평범 이하다.
느닷없는 고백은 폭력이다.
몇개만 적어봐도 이렇게나 많다. 정말 하나하나가 너무나 와닿아서, 하나만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대사들. 이러한 것들이 청춘시대를 더욱 빛나게 해준 것들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소재와 기획의도, 그리고 연기와 대사, 연출 무엇하나 흠 잡을 것이 없었다. 내 마음 속에선 이미 올해의 '명드라마'로 자리 잡은 청춘시대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로하는 드라마'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