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여름 Mar 23. 2020

'나쁜' 페미니스트’ - 록산 게이

「록산 게이, 나쁜 페미니스트」



세계적으로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하다. 현재 진행형인 페미니즘 운동의 시류를 타고 한 마디 보태볼 생각은 아니고, 그저 현 상황에 대해 여성으로 살면서 생각하고 느낀 바를 아주 쉽게 잘 소개하고 있는 책 한 권에 대해 감상을 나눠보려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아주 평범하고 보편적인 삶을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서, 나와 같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실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의 페미니즘은 그 뜻을 왜곡하는 프레임들에 의해 어딘가 거부감을 일으키는 단어처럼 여겨졌고 일부에서는 '메갈' 혹은 '남성 혐오' 등의 단어로 곡해하며 성 평등을 이야기하는 원래의 의미 대신 차별과 혐오를 의미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몇 년간 인터넷을 통해 봐 온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를 둘러싼 이상한 갈등 양상을 보며 이것이 왜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관통하는 어느 시점에도 성별에 따른 불평등은 있어왔다. 불평등뿐이랴. 기원을 알고 나면 놀라운 정조대의 역사라거나 남아선호 사상, 그리고 미투 운동으로 인해 확실하게 드러난 성폭력의 역사까지. 여자들은 역사 속에서 언제나 약자였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계급제가 존재해왔던 것들처럼 이는 명백한 사실인데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페미니즘이 지탄을 받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가 봐온 것만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급진적인 양상을 보여온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행동이라 한들 내가 봤을 땐 이전까지 있었던 '여성 혐오'의 미러링에 불과했다. 단적인 예로 '한남' 등의 표현을 남성 혐오라 하며 지탄받긴 했지만 몇 년 전까지 '김치녀'나 '된장녀'라는 표현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서도 심심찮게 소비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단어에 대한 반응이 필요 이상으로 과열된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여성을 향한 말도 안 되는 혐오의 표현과 문장에는 농담이라는 말로 웃어 넘기길 원하던 이들이 한남이라는 단어에는 발끈하는 상황들이 떡하니 보이니 오히려 불쾌감 이전에 당황스러움이 앞섰다.

 


우리한텐 일상적으로 있어왔던 일인데 왜?



그와 동시에 여성의 삶에 불평등과 혐오가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와 마주했을 때 선뜻 나를 페미니스트로 지칭할 수 없었던 것은 여성인 나조차도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얕았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뭔가 페미니즘 이론이나 불평등의 역사에 대해 모두 꿰고 있어야 하고, 페미니스트로써 어떤 행동 양식을 지지하며, 그것을 실천해야 할 것만 같았다. 모든 여성의 대변인이 되어 행동할 수 있을 정도의 이해를 갖추어야만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있었던 거다. 어쩌면 그래서 몇 년간 화두가 되어온 이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할 수 없었고, 이 부분이 나에게는 알 수 없는 찝찝함이 되었다.



머릿속으로는 여성이라면 누구나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이것이 모순으로 느껴졌다. 일상적인 주제로 등장할 만큼 논의가 활발해졌을 때는 이제는 정말 제대로 '알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내 앞에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책이 나타났다.



이 책은 일각에서 페미니즘 입문 서적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책을 몇 장 읽자마자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책 속에는 나와 똑같은 고민을 더 깊고 치열하게 해 온 미국의 한 여성이 있었다.


십 대 후반과 이십 대에서는 페미니즘을 지지하면 매사에 일관적이고 논리 정연한 사람으로만 살아야 할까 봐 거부했던 것도 같다. 왜냐하면 죽었다 깨어나도 내가 그런 사람이 될 리가 없으니까.

- 나쁜 페미니스트 중 -


이 부분을 읽으며 깊게 공감했고, 나뿐 아니라 많은 여성들이 비슷한 이유로 페미니즘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 ‘록산 게이’는 아이티 출신의 미국인으로 흑인이라는 이유와 여자라는 이유로  성별과 인종으로 인한 차별을 몇십 년간 온몸으로 겪어온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더욱 이러한 문제를 깊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 모든 내용이 책 안에 녹아있었다. 책을 읽으며 그동안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해 고민해온 것들이 시원하게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명확한 언어와 문장으로 많은 이들이 느꼈을 찝찝함과 애매함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이 책에 대한 공감과 찬사는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부터 시작됐는데, 특히 첫 페이지의 추천사를 읽으며 무릎을 탁 쳤다.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짐짓 자극적일 수 있는 제목에 대한 명쾌한 해석에 앞으로의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아래의 문장이 바로 내가 보고 감탄했던 추천사의 한 구절이다.



이 책의 제목 ‘나쁜 페미니스트(Bad Feminist)’의 ‘bad’는 나쁘지 않다. 여기서 ‘나쁜’은 도덕적 의미가 아니라 ‘부족한’, ‘못 미치는’, ‘완벽하게 훌륭하지는 못한’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다시 말해 “나는 부족한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자신을 상대화하는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나쁜 페미니스트>는 가부장제 사회가 강요하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대한 저항이자, ‘우리’가 서로에게 요구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고, 동시에 규범화된 페미니즘은 불편하지만 자기만의 신념은 숨기지 않겠다는 ‘나의 페미니즘(My Feminism)’이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저자 추천사



저자 역시 페미니즘을 받아들이기까지 여러 과정이 있었다. 첫 시작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녀 역시 비슷한 이유로 페미니스트를 거부했지만 결국 본질을 찾아냈다. 그녀가 찾아낸 본질은 책에서 여러 예시들과 문장으로 우리에게 왔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페미니스트로 살아감에 있어 이 문장들만 마음에 새긴다면 정말로 아주 쉽게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책 한 권이 제 인생을 바꿨어요”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이 나에게 성 평등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한 견고한 발판이 되어줄 것임은 자신한다.


누군가 나처럼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가 궁금하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아래의 문장들이 마음을 울린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책 속 문장들



페미니즘에 대해 배우면 배울수록 ‘소문자의 페미니즘 feminism’과 대문자로 시작하는 ‘페미니즘 Feminism’ 혹은 ‘페미니스트 Feminist’ 혹은 단 하나의 진짜 페미니즘이 모든 여성 인류를 지배한다는 ‘근본주의 페미니즘’의 개념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페미니즘이 어떤 대단한 사상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의 성 평등임을 안 순간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는 건 놀라울 정도로 쉬워졌다.

페미니즘은 우리 사이 교집합을 찾기 위해, 우리가 누구이고 어떻게 이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하는지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편이다.


마치 우리에게는 한 번에 한 번의 비극만 소화하고 한 번만 애도할 능력밖에 없다는 듯이, 어떤 비극에 반응하고 결정하기 전에 그 비극의 깊이와 정도를 재야 한다는 듯이, 마치 동정과 연민은 아껴서 사용해야 하는 한정된 자원이라는 듯이 말이다. 이 두 가지 비극을 차트에 올려놓고 직선으로 연결시킬 수는 없다. 이 비극들을 깔끔하게 이해할 수 없다.
런던에 사는 소녀 – 여자의 죽음이건 77명의 노르웨이 남성, 여성, 청소년들의 죽음이건 죽음은 모두 죽음이고 비극이다.

-261p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특권 감시단이 되어서 모든 토론을 주도하려고 하고 상대가 스스로 특권을 인정하건 말건 자기가 나서서 남들의 특권을 재확인시켜 주려 난리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특권의 망령이 활개치고 있다. 누군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면 기다렸다는 듯이 온갖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달려들어 당신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기 때문에, 가진 것이 많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다고 몰아붙인다. 특권들이 어떤 방식으로 발현되는지 알지 못하고 그 사람에게 어떤 조건이 부족한지 모르면서 한 사람의 경험을 왜 그렇게 매도하는 것일까? 만약 우리가 오로지 내가 경험한 것이나 나의 다른 점만 써야 하고 혹은 특권이 아예 없는 사람만 글을 쓰거나 말해야 한다면 이 세상은 침묵의 섬이 되어 버릴 것이다.

- 285p



다른 점을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다른 점을 제대로 쓰는 것은 매우 매우 어렵다. 문화적인 편견을 이기고, 스테레오 타입을 피하고, 역사를 수정하거나 축소하는 걸 피하고 타인의 다른 점을 깎아내리거나 사소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라는 이야기다. 작가들은 항상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제대로 쓰지? 그리고 인종 문제에 다가갈 때, 나와 다른 문화적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상상해야 할 때는 더욱 철저히 냉정하게 여러 차례 질문해 봐야 한다. 다른 것을 쓰려면 더 섬세한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어떻게 그 균형 감각을 찾을 수 있을지 잘은 모른다.

- 303p
  



매거진의 이전글 ‘마케터의 생활력' 취향을 가꾸면 힘이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