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파트 매매 계약서를 썼다. 기분이 좋지 않다. 생각해보면 1년 반 전 지금 사는 아파트 전세를 계약할 때, 딱 이런 기분이었다. 그냥 다 그만두고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기분.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알 수가 없다. 내 재정상황을 다 꺼내놓고 말할 수는 없으니 다른 누군가에게 말을 할 수도 없다. 그래서 글로 쓴다. 내 기분이 대체 왜 이런지, 스스로를 알고 싶어서.
셰어하우스를 구하러 다니며 찍은 폴라로이드의 메모
스물여섯에 무턱대고 상경해서 셰어하우스에 살기 시작한 게 2018년 4월. 처음으로 부동산을 찾아갔을 때가 그 해 7월 즈음이니,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매매로 오기까지 만으로 3년 정도가 되는 셈이다.(혹시 우연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오해하실까 미리 밝히자면 대부분이 대출이고 어느정도 부모님의 도움이 있었다.)
처음 살았던 셰어하우스는 보증금 82만 원, 1인방을 쓰는 조건으로 월세가 42만 원이었다. 공과금은 별도. 3백만 원을 들고 상경했는데 보증금을 내고 두 달 월세를 내고 나니 남는 돈이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지긋지긋한 임용공부를 할 생각을하니 끔찍해서, 몇 개월만 더 여기서 내 힘으로 버텨보고 싶었다. 돈이 필요하니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 생각했던 것이 덜컥 취직이 되었고, 셰어하우스에서의 큰 다툼을 계기로 원룸으로 이사를 결심했다.
처음 원룸을 구하러 다닐 때에는 입사한 지 3개월 차여서 한 푼이 아쉬운 상태였고, 돈을 벌어봤자 월세를 내고 나면 생활비가 빠듯한 수준이라 최대한 저렴한 집으로 이사를 하고 싶었다. 보증금 3천에 공과금을 모두 포함해 월세가 30만 원 이내인 곳. 가능하면 대중교통비도 아낄 수 있도록 회사까지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로.
한참 발품을 팔면서 별 이상한 집들을 많이도 봤다. 누가 봐도 불법으로 증축한듯한 옥상 위에 따개비처럼 붙은 가건물 집, 모든 창문이 콘크리트 벽으로 막혀있는 집, 샤워시설이라고는 변기 옆 수도꼭지 하나가 다인 집.
다들 어차피 완벽히 마음에 드는 집은 없으니, 이게 최선이라고무조건 이 집을 하라고, 아가씨가 뭘 모른다고 오늘 당장 계약을 하라 을러댔다.
나도 알았다. 서울에서 전기수도가스를 다 포함해 월세 30만원이면 완벽히 내 마음에 드는 집을 찾을 수는 없었다. 다만 나는...내가 정을 붙이고 살 수 있는 집을 찾고 싶었다. 이 집이면 아무리 환경이 나빠도 내가 후회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오는 집.
몇 번의 고배를 마신 끝에 나는 40년 전에 지어진 사무실 건물을 개조한 원룸에 정착했다. 주방과 화장실과 잠자는 공간을 모두 포함해 채 5평이 안 되는 월세 27만 원의 작은 방.
북향이라 빛도 잘 들지 않는 그 원룸을 계약한 이유는 딱 하나, 5층이었던 원룸의 창 너머로 높게 들어선 빌딩 숲과 너른 하늘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냥...아무 이유도 없이, 여기라면 내가 이후에 어떤 문제를 발견하더라도 다 감안하고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분명 이사할 때까지는 참 씩씩하게 잘 해냈는데. 이사한 첫날, 자리에 누우니 잠이 오지 않았다. 이삿짐이라고는 우체국 5호 박스 2개와 여름이불 한 채뿐. 덜컹덜컹 지나가는 지하철 소리와 잊을만하면 존재감을 드러내는 비행기 소리를 들으며 누워있자니 그제야 내가 평생 살던 고향과 인연을 뒤로하고 혼자 살아보기로 했다는 실감이 났다. 그날 밤은 내내 이불을 뒤척이며맞은편 꼬지 집에서 비치는 불빛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나면 이것도 모두 다 추억이 되겠지.
원룸에서의 삶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 집이 좋았다기보다는, 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덕분에 신입사원으로서는 드물게 잦은 야근과 술자리를 반복하며 원룸에 잘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는 야근을 장려하지 않았지만, 어차피 나야 회사 바로 앞에 사니까 남들이 집에 가는 동안 나는 일을 좀 더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7시에 퇴근을 찍고 12시, 1시까지 몰래 남아 일을 하곤 했다.
몇 개월 간 그런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아, 내가 내일 다시 눈을 못 뜰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고, 그제야 내가 어쩌면 이 집에 돌아오기 싫어서 무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1년 간 매일 오가던 퇴근길
마침 그때쯤 중소기업 청년전세대출을 알게 되어 1억 초반대로 갈 수 있는 전세를 찾았다. 지역조차 정하지 못해 서울 서쪽 지역을 모두 빙빙 돌았다. 노트에 마트, 영화관, 공원, 지하철역이 모두 있는 동네를 쭉 적어두고그 동네들을 다 가봤다. 나는 뚜벅이었으므로 되도록 편의시설을 걸어서 갈 수 있는 집으로 가고 싶었다.
이사할 지역을 딱 집어두지 않고 여기저기 보러 다니는게 가장 하책임을 알았지만 마땅히 가고싶은 동네가 없었다. 한 여름에 땀을 뻘뻘흘리며 손품발품을 팔았지만 마음에 차는 매물이 단 하나도 없었다. 신축 원룸이면 1억 2천 전세로 갈 수 있는 집이 5평. 대출이자와 관리비를 더하면 지금 집과 다를 게 없는수준이었다.
거의 한 달가량 매일매일 직*, 다*, 네*버부동산에 올라오는 모든 매물을 다 보고, 매물을 올린 부동산에 연락을 넣어보고, 주말마다 부동산에 무턱대고 찾아가서 내가 찾는 조건에 맞는 집이 있느냐 물어보기를 여러 번.
괜찮은 집을 찾기는 요원했고, 그즈음 전세 사기를 당하면 1억을 모두 내가 갚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아 대출받기가 무서워지기도 했고, 전세보증보험을 들기 어려운 집들이 많다는 것까지 알게 되어 슬슬 이사를 포기하고 있었다. 따로 내가 나간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1년이 자동으로 연장될 테니 그냥 연장해서 1년을 더 살까...
그러다 갑자기 아파트를 한 번 보기라도 할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매일매일 올라오는 매물을 보며 회사 근처에 1억 초반대의 14평 아파트 전세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아파트는 옵션도 없고 관리비도 비싸니 내가 갈 수 있는 집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겨왔다. 그런데 또다시 생각해보니 집을 한 번 보는 게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한 번 보기라도 하자는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내가 그 집을 한 번 본다고 누가 욕하는 건 아니잖아.
그 길로 부동산으로 달려가 집을 봤는데 웬 걸. 지금까지 본 집 중에 가장 넓고, 상태나 위치도 좋고, 심지어 세입자분이 원한다면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를 30만 원에 넘기겠다고도 했다. 근데 그렇게 좋은 조건인데도 불구하고 집을 보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불안으로 요동쳤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쁠게 하나도 없었다. 재개발이 확정되어 매매가가 높고 전세가가 낮은 아파트. 아파트라 전세보증보험을 걸기도 쉽고, 혹시 문제가 생기더라도 매매가가 높으니 확정일자만 잘 받아두면 전세금을 돌려받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옵션 문제도 해결되었고, 내가 계약을 하겠다고 말만 하면 되는데.
자꾸만 머릿속에 아파트에 사는 건 내 분수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사는 주제에 아파트를? 쥐꼬리 아니 햄스터 꼬리만한 연봉을 받으면서 대출 1억을 지자고? 입사한 지 겨우 1년이 지났는데. 대출이 쉬운 문제도 아니고. 이젠 쓰는 대로 돈을 내야 하니 관리비도 만만찮을 텐데. 그냥 지금 집에 살면 월세 27만 원에 살 수 있는데. 대출이자에 관리비를 합치면 30만 원이 훌쩍 넘는데. 지금껏 모아둔 돈을 모두 털어 넣고 빈 통장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한 번 아파트로 이사 가면 짐이 늘어서 그다음에 다른 집으로 이사가기도 힘들 텐데... 별별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던 차, 일이 터졌다.
그 원룸은 애초에 내가 이사 올 때부터 화장실 안쪽 손잡이가 완전히 녹슬어서 움직이지 않는 상태였다. 계약 시에 손잡이를 고쳐주기로 하였지만, 내가 이사 오고 나자 집주인은 어차피 혼자 사는 집인데 굳이 손잡이를 고칠 필요가 있냐며 말을 바꾸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세수를 끝내고 화장실을 나가려고 문 손잡이를 잡자, 문이 '달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달칵...?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대체 언제 이 문이 바뀌었지? 언제부터 이 문이 정상적으로 닫히고 열렸더라? 찬찬히 다시 보니 손잡이를 바꾼 게 아니라 화장실 문 자체를 새 문으로 바꾸어 두었다. 언제일지 모를 어떤 날, 내가 출근한 사이에, 집주인 할아버지와 방문을 교체하시는 분이 마스터키로 내 방문을 따고 들어와 화장실 문을 교체하고 갔던 것이다... 나에게는 아무런 연락도 없이...
덕분에 나는 무조건 계약이 끝나는 즉시 이 원룸에서 나가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누군가 마음대로 들락거리는 집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께 전화해 문이 바뀌었다는 이야기 대신 좋은 대출 상품을 알게 되었는데 마침 좋은 매물을 보았기에 이사를 하겠다고 했다. 대출을 한다는 말에 조금 꺼리는 기색이던 엄마는 내가 아파트를 보아두었다고 하니 아파트라면 무조건 찬성이라고 했다.
내가 지금보다 한 달에 나가는 돈이 많고 어쩌고 내 분수에 맞지 않는 것 같고 우는 소리를 하니, 네가 부담스럽다면 어느 정도 돈을 보태주겠다고도 했다. 물론 엄마는 돈에 있어서만큼은 늘 공수표를 날리는 사람이기에 그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번뜩, 그래 돈이 부족해지면 투잡이라도 해서 돈을 더 벌면 되지! 하는 허황된 결심을 하며 계약서를 썼다.
대출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계약서를 쓰고 나서 중기청 대출을 하러 왔다며 은행을 찾았는데, 내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마자 내 목에 걸린 사원증을 본 은행원이 'ㅇㅇㅇ(회사명)은 중기청 대출이 안 되는데요? 모르셨어요?'라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했다.
중기청 대출은 대기업 · 공무원만 빼고는 다 된다고 했었고, 우리 회사는 규모상 중견기업이고, 중기청 홈페이지에서 사명을 넣었을 때 '가능'이라고 떴기 때문에, 그것만 믿고 될 거라 생각했는데. 여기는 상호출자제한집단이라 중소기업 혜택은 받을 수가 없다나 뭐라나.
이게 대체 무슨 말이오, 중기청 양반... 내가 대출을 받을 수가 없다니. 순식간에 혼란에 빠진 나는 중기청이 안되면 제가 받을 수 있는 대출이 또 어떤 게 있냐 물었다. 청년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 내가 세워두었던 지출 계획이 모두 바스러지는 순간이었다. 중기청 대출의 이율은 1.2퍼센트. 버팀목 대출의 이율은 2.7퍼센트. 대출이자를 배보다도 더 많이 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나는 7백만 원의 계약금을 걸고 온 참이었다. 내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개. 2.7퍼센트의 대출을 하거나 계약금을 포기하거나.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2.7퍼센트의 대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원룸에서는 나가겠다고 말을 했고, 이 집보다 더 좋은 집을 찾을 수는 없을 것 같고, 또 앞으로 대출이자를 많이 내더라도 지금껏 열심히 벌어모은 7백만 원을 하루아침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출을 신청하고 돌아 나오며 회사 건물 1층 화장실에 앉아 출근 전 까지 한참을 엉엉울긴 했지만, 어쨌든 그 이후로는 모든 일이 차근차근 진행되어 무사히 이사를 했다.
신기한 것은, 이사를 하고 보니 이 집이 2년 전 내가 셰어하우스에 살 때, 버스를 타고 지나다니며 '아, 이런 동네에 살면 너무너무 좋겠다. 고향 동네 같고 정감 가. 저 아파트는 얼마일까? ㅇ억? 내가 살 수는 없겠네.' 생각하던 그 집이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지나다닌 이후로 재개발이 확정되어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오른.
어쨌든 나는 최근까지 1년 반이 넘도록 이 동네와 이 집에 매우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다행히 이율도 그 이후로 계속해서 떨어져 2.2퍼센트가 되었다. 우리 집에 놀러와본 고향 친구들은 다 하나같이 이 동네가 내 고향 동네와 굉장히 닮았다고 했고, 나는 이 동네의 분위기가 좋았다. 서울 어디에 이렇게 내 마음을 포근하게 해 줄 동네가 또 있을까. 그러다 문득 곧 내년 여름이면 전세 만기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으로 가꾼 안락한 우리집(전세지만)
처음에는 진짜로 매매를 해야겠다, 무조건 이사를 가야겠다는 마음은 없었고 지금 내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집으로 갈 수 있을까 궁금한 마음이 컸다. 나는 지금 사는 동네가 너무 마음에 들고, 아직 전세 만기까지도 꽤 시간이 남았고, 집주인분들은 전세금 올릴 생각 없이 재건축 전까지 쭉 오래오래 살아달라 했기에 이사가 급하지도 않았다. 그냥 재미로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 했던 것처럼, 이런저런 조건에 맞는 지역에서 내가 대출로 운용할 수 있는 금액으로 살 수 있는 집들을 찾아보았다.
만 30세가 안되니 디딤돌 대출을 받을 수는 없고, 보금자리론 실수요자면 지역불문 LTV 70%까지 대출이 되니까. 30년 납에 체증식 상환을 하면 3억 내외의 오래된 복도식 구축 정도는 매매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그 집에서 30년 살게 아니니까 다시 이사 나갈 때 대출을 갚으면 그만이지 뭐. 그래도 아무데나 고를 수는 없으니 채광이 좋고, 지하철 역이 가깝고, 초등학교와 공원이 근처에 있고, 마트나 번화가가 멀지 않고, 되도록이면 등락폭이 크지 않은 곳으로.안타깝게도 서울은 떠나야겠지만.
꽤 괜찮아 보이는 단지 몇 개를 찍어두고 나니 마음이 흔들렸다. 매매를 할까? 연봉도 낮으면서 대출을 그만큼 내겠다는 건 너무 위험한 생각 아닌가? 하지만 고정금리 대출이면 지금처럼 금리가 낮을 때 대출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지금 집값이 많이 올랐다던데? 나중에 폭락할 수도 있다던데? 하지만 여태껏 등락폭이 작았던 곳이니까 실거주 목적으로 생각하면 괜찮지 않나? 어차피 남의 집에 전세대출 이자 낼 거 내 집을 사놓고 주담대 이자를 내는 게 나을 거 같은데? 너무 자기 합리화인가?
대출 조건, 매물 위치와 호재 등을 꼼꼼히 알아보고 정확히 한 달에 어느 정도를 부담해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문제 될 거리는 없는지 모두 확인한 후 주변 사람들에게 은근슬쩍 말을 꺼냈다.ㅇㅇ이나 ㅇㅇ지역으로 매매로 이사 가려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나는 나 말고 다른 누군가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되도록이면 수도권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의 의견을. 결과는... 내 이야기를 들은 모든 사람이 쌍수를 들고 반대했다. 얘 약간 미쳤나 보다(ㅋㅋ)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앞으로 집값이 떨어질 거다, 매매는 서른 중반 넘어서 해도 늦지 않다, 구축아파트를 살거면 3기 신도시에 오피스텔을 사서 월세를 받아라, 차라리 그 돈으로 청약이나 주식을 해라….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내가 한 번씩은 고려했던 부분이고, 일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계속 매매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단 한 명, 내 이야기를 반대하지 않은 사람은 엄마. 수도권은 전부 집값이 10억씩 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 집도 있냐며 집을 사자고 했다. 대출도 싫어하고, 투자도 싫어하고. 신용카드도 쓰지 않는 엄마가 찬성을 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쁜 일상 속에 집을 사야겠다는 열망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 이번엔 전셋집을 구할 때와 달리 동네를 보러 다니지도 않았다. 물론 찍어둔 몇몇 단지에 알림을 걸어두긴 했지만, 일을 하느라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막연히 해가 바뀌면 부모님과 같이 한 번 가봐야지 묻어두고 지냈다.
그대로 내버려 두었으면 전세를 연장해서 2년을 더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셰어하우스의 다툼과 원룸 문 교체 사건이 나를 다음 집으로 이끌었던 것처럼, 이번엔 엄마가 나를 밀어붙였다. 내가 이사 갈 때쯤으로 미루자, 연장을 해서 살자하며 미적대자 나를 이끌고 부동산으로 갔다.
실제로 본 단지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네도 좀 휑한 것 같고, 외벽 색도 마음에 안 들고, 뷰도 영 아닌 것 같고. 딱 한 집을 봤는데 집 상태가 나쁘지는 않지만 썩 좋지도 않았다. 그러나 어째 엄마의 마음에는 쏙 들었던지 무조건 이 집을 하라고 밀어붙였고, 결국 겨우 그 한 집을 보고서 가계약금을 넣었다.
이번에도 역시 따져보자면 객관적으로 크게 나쁠 것은 없다. 25년이 넘은 복도식 아파트이지만 22평이라 혼자 살기에 충분히 넉넉하고, 층수도 적당하고, 1000세대 이상에, 걸어서 5분거리인 지하철역에서 회사까지 갈아타지 않고 한 번에 갈 수 있고, 초등학교를 끼고 있고, 호수공원과 마트가 멀지 않고, 소소한 개발호재도 있는. 내가 판단하기로는 충분히 저평가된 단지.(수도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처음 매매계약을 해본 내 판단이 얼마나 믿음직하겠냐만은.)
나쁠 것 없다 생각하면서도 내가 계약을 선뜻 결정하지 못했던 것은 왜일까. 여러 집들을 보지 않아서? 내가 원룸으로 이사 갔을 때의 그 '느낌'이 없어서? 기껏 정착을 했는데 또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 가는 것이 마땅치 않아서? 내 마음인데 내가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다니 참 환장할 노릇이다.
가계약금도 계약금이니 무를 수도 없고 해서 자연스레 계약서를 쓰고, 남은 계약금을 이체했다. 이제 남은 일은 전셋집을 내어놓고, 대출 신청을 하고, 인테리어 업체와 이삿짐업체를 알아보고, 잔금을 치고, 이사를 하는 것.
셰어하우스에서부터 매매까지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나 생각해보았지만, 별다른 사건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나 혼자 부동산을 들락거리며 두 번의 임대차 계약을 해본 것, 아파트 전세를 구하며 대출을 실행해본 것, 내 또래의 세입자가 아파트를 매수해 이사하는 것을 보았던 것, 나 또한 다음번에는 꼭 방이 하나 더 있는 아파트를 사서 나가겠다 생각했던 것, 회사가 재택근무를 주로 하는 체제로 바뀌게 된 것. 아마 이 모든 사건들이 내 안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였던 탓이 아닐까.
어쩌면 스물네 살, 금수저 친구가 부모님이 군부대 이전 호재가 있는 저렴한 물건을 찍어줘서 갭투자로 아파트를 매수했다는 것을 비밀이라고 넌지시 알려주었을 때가 시작일수도 있다. 당시 임용시험 3년 차 백수였기에 호재를 들어도 갭이고 나발이고 할 수 없었던 나는, 이십 대 중반의 집주인이 내놓은 매물에 이십 대 초반의 세입자가 대출 없이 현금으로 1억을 들고 와서 부동산 사장님이 신기해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씁쓸함을 삼켰다. 그때부터 나도 막연히 이십 대가 끝나기 전에는 집을 사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었다. 이십 대의 끝에 이 일이 실제로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몰랐지만.
만약 내가 상경하지 않고 고향에 계속 같이 살았더라면, 상경 후 돈이 부족해지지 않았다면, 안될 것을 알고서도 여기저기 자소서를 넣어보지 않았더라면, 지금 회사에 합격하지 않았으면, 셰어하우스에서 다툼이 있지 않았다면, 원룸 집주인이 내 방에 마음대로 들어오는 것을 몰랐다면, 마침 중기청 대출을 알게 되지 않았다면, 오늘 계약서를 쓸 일은 없었을 테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제의 우연과 우연이 겹쳐 오늘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신비로운가.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다 반대했던 이유로 언젠가 내가 집을 매매한 것을 후회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나 역시 폭락론자이기에 마음이 편하지 않지만.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이미 시작해버린 일을. 그때가 오면 그때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손해를 보고 집을 다시 팔던지 소위 말하는 존버를 하던지.
힘내라 미래의 나.
이게 잘하는 짓인지 현재의 나는 모르겠다만, 일은 이미 저질렀으니 다음 일은 네게 맡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