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 지나가는 문장 몇 개를 잡아채려고 휴대폰을 손에 들면 그 순간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무의식의 그림자가 활자들을 훅 하고 빨아들인다. 결국 불 켜진 공간 안에 남는 글은 아무것도 없다. 억지로 생각의 방구석구석을 뒤져보기도 하지만 알알히 빛나던 문장들은 죄다 사라져 버리고, 남아있는 건 당장 버려도 아깝지 않은 퀴퀴한 조합들 뿐이다.
뭐든 어두워야 더 밝게 빛이 나기 때문일까? 의식이 좀 흐릿하고 침침해야만 주옥같은 문장들이 빛을 발한다. 또렷한 정신으로는 아무래도 좋은 글이 나오지가 않는다. 슬프고 우울한 시절에는 가만히 앉아 눈만 감아도 줄줄 흘러내리던 글들이 이젠 도무지 흐를 생각을 않는다. 아무래도 내 글쓰기 주머니는 수용성임에 틀림없다. 아니면 야광이거나.
문제는 여기에 있다. 내 마음이 살찌고, 그 속의 감정들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며 더 이상 좋은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는 것. 이 기름진 손끝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진실된 글감들을 녹여낼 수가 없다. 문학은 결핍에서 나온다는 말이 이토록 절절히 와 닿는 때가 또 있었을까.
삶을 깊게 바라보기엔 나의 생활상이 너무나 단조롭고, 삶을 오래 바라보기엔 나의 시선이 너무 게으르다. 삶에 대한 묘사는 자세하고 사소할수록 마음을 울리는 법이나, 도무지 이런 상황에서는 삶의 모습을 섬세하게 빚어낼 수가 없다.
휴대폰 속에 적어둔 글들은 모두 파편으로 나뉜 문장에 지나지 않는다. 내 생각들은 지나치게 단편적이다. 아니, 단편이라고 부르기에도 머쓱한 일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사라질 소'를 붙여 '소편' 정도가 아닐까.
조각난 생각들, 널브러진 문장들을 이어 맞추는 법을 궁리해보지만 결과는 항상 얼기설기하지도 못한 문장의 조합으로 끝날뿐이다. 문장을 이어내고 글을 써내는 나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라면, 가끔씩 머리를 스치는 이 빛나는 문장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어쩌면 고차원의 세계에 문장들의 도서관이 있어서, 누군가 실수로 책을 떨어트릴 때 거기서 쏟아진 길 잃은 문장들이 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온 것일지도 모른다. 내 것이되 온전히 내 것이지 않은 문장들이 이렇게 계속 쌓여만 간다.
혹시 무언가를 이어내는 다른 작업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하고 바느질 잘하는 법, 퍼즐 잘 맞추는 법 등을 찾아보니 결국 답은 한 가지. 오래, 꾸준히, 많이 연습하는 것뿐인 듯하다. 흐르되 흐르지 않고, 무겁되 무겁지 않은 정갈한 글쓰기에 이르는 길은 너무나도 멀다. 과연 나는 언제쯤에야 가볍게 읽고도 마음에 오래 남는 문장들을 글 속에 폭 안아낼 수 있을까.
이렇게 또 하나의 글쓰기를 마치며, 부디 이 글이 글쓰기를 찾아가는 길에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