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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Sep 26. 2021

어느 인생에나 있는 사연

우리는 나란히 걸을 때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 3


내 마음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난 이후, 나는 내 우울이 어디서부터 왔을지 궁금했다. 원래 난 참 쾌활하고 밝은 사람인데. 어쩌다가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웠던 걸까? 내 나름대로의 추측으로 아마 어린 시절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했다.


12살의 겨울. 나는 엄마를 집에 혼자 남겨두고 아빠와 드라이브를 갔다. 우리가 떠나올 때의 분위기로 엄마가 아빠 대신 신용 어쩌고 하는 기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거라는 걸 알았다. 아빠의 사업 실패 때문이었다. 혼자 남은 엄마가 걱정됐지만 차마 걱정하는 티는 낼 수 없었다.


부모님의 알리고 싶지 않은데 차마 알리지 않을 수 없고 숨기고 해결하고 싶은데 도저히 숨길 수 없는 그 마음을 이해했기 때문에, 그저 모른 척 눈 덮인 배내골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포근한 체 소복소복 내리는 저 눈이 실은 얼마나 차가운가를 생각하며.


그 시절 엄마는 다정했지만 혼자서 일도 하고 아이도 키우기엔 너무 지쳐있었고 아빠는 사업이 바빠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두 사람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 대부분은 아빠의 사업 문제 때문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겨우 서른몇 살이었을 두 사람이 삶에 닥친 위기 앞에서 얼마나 절실했을지 이해하지만. 매번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보아야만 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안타깝게도 되도록 빨리 죽고 싶었다.


가끔은 소리를 지르며 싸워대는 두 사람의 사이로 뛰어들어 중재를 하기했다. 그러나 늘 중재의 결말은 좋지 않았다. 두 사람이 내게 동시에 고개를 휙 하고 돌리며 ‘너는 들어가!’라고 소리치던 그 장면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뛰쳐나가기까지의 수많은 고민과 걱정, 불안, 그리고 네 개의 눈이 나를 향해 쏟아내던 따가운 눈총까지. 엄마도 아빠도 내가 차마 기댈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모네에서 크는 동생이 부러웠다. 적어도 그 애가 엄마라고 부르는 고모는 항상 그 애 옆에 있어주니까. 그 애는 친형제로 알고 있는 사촌 언니와 사촌 오빠도 있었다. 내 곁엔 아무도 없는데도.


나는 그 애가 부러웠고 주말마다 엄마의 사랑을 빼앗아 가는 건 미웠다. 나는 그 애가 나를 이불로 덮어놓고 때릴 때보다, 내 장난감을 몽땅 가져가서 하나도 남겨주지 않는 것보다, 엄마가 나는 누나니까 이해하라고 하는 게 더 미웠다. 나한테는 엄마밖에 없는데 그 애는 엄마가 둘이나 있고 형제도 있고 심지어 아들을 가장 귀엽게 여기는 고모부도 있으면서 엄마의 ‘이해’도 그 애의 것이었다.


그 시절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없어 친척 집에 아이를 맡겨놓고 가끔 찾아가 볼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안타까운 마음도, 자기가 엄마로 알고 지냈던 사람이 사실 고모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동생의 마음도 지금은 다 이해하지만.


동생과 엄마의 사랑을 두고 다툴 때는 나 역시 겨우 여서일곱 살이었으므로 어린 내가 이해하고 싶지 않은 수많은 일들로 외롭고 괴로웠다. 어쩌면 이게 내 우울의 씨앗이 되지 않았을까 막연히 생각해본다. 뭐, 아닐 수도 있지만! 




출판 스튜디오 '쓰는 하루'에서 <남김없이 응원해>로 출판했던 글을

브런치에서도 같이 읽고 싶어 업로드합니다:)


책쓰게 9기 출간 도서 <남김없이 응원해>

-출판사 : 키효북스

-저자 : 이상은, 신나윤, ㅅㅅㄱ, 신성희, 황지영, 정진이, 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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