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로 인간이 되고, 용서로 인간을 넘어서다

기억, 책임, 그리고 인간이 서로를 놓아주는 방식

by 이수염

사람들은 종종 용서를 하나의 미덕으로 이야기한다. 용서하는 사람이 더 큰 사람이라거나, 용서해야 마음이 편해진다거나 하는 말들 속에서 용서는 마치 도덕적으로 올바른 선택처럼 제시된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용서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 “이제 그만 용서해”라고 말하는 것은 때로는 또 다른 폭력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용서는 무엇인가. 용서는 정말로 잊는 것인가. 아니면 상처를 덮어두는 일인가. 혹은 단순히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예의 같은 것일까.


용서를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가 용서를 어떻게 오해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용서를 어떤 사건을 없던 일로 만드는 행위처럼 생각한다. 상처를 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관계를 이어가는 것. 그러나 실제의 용서는 그런 종류의 망각이 아니다.


사람은 중요한 일을 쉽게 잊지 않는다. 특히 자신에게 부조리한 일이 일어났다고 느낄 때 그 기억은 더 오래 남는다. 억울함이라는 감정은 인간의 기억 속에서 오래 지속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를 단순한 망각으로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용서를 거의 불가능한 행위로 만들어버린다.


용서는 사건을 지우는 것이 아니다. 또한 사건의 의미를 완전히 바꾸는 것도 아니다. 이미 일어난 일은 그대로 남는다. 상처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용서는 그 사건을 둘러싼 감정의 구조를 다시 정리하는 행위에 가깝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은 단순한 사실로 끝나지 않는다. 그 사건은 두 사람의 감정 속에서 계속 움직인다. 한 사람에게는 죄책감으로 남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분노나 억울함으로 남는다. 그리고 이 감정들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제대로 정리되지 않으면 관계의 내부에서 계속 축적된다.


이 지점에서 용서는 하나의 역할을 한다. 용서는 상처를 준 사람에게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고,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는 분노와 억울함을 내려놓을 수 있는 출구를 제공한다.


다시 말해 용서는 두 사람의 감정이 서로 묶여 있는 상태를 풀어주는 행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용서가 책임을 없애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용서를 책임의 소멸과 같은 것으로 착각한다. 누군가를 용서하면 그 사람이 저지른 행동의 대가까지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용서는 책임과 별개의 문제다. 어떤 사람은 용서를 받았지만 여전히 자신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처벌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즉 용서는 정의를 부정하는 행위가 아니라, 정의 위에 관용을 더하는 행위에 가깝다. 잘못은 여전히 잘못으로 남아 있고, 책임 역시 그대로 존재한다. 다만 그 사건이 더 이상 서로의 감정을 붙잡고 있지 않도록 하는 선택이 용서다.


이 때문에 때로는 처벌 없는 용서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판단이 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분노와 비난보다 조용한 용서가 더 무거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용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이 사건을 붙잡고 살지 않겠다. 그리고 더 이상 너에게 기대하지도 않겠다.


그러한 용서는 관계를 회복시키는 용서라기보다는 관계를 정리하는 용서에 가깝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용서와 관계의 회복은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은 용서를 관계의 회복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한다. 누군가를 용서했다면 다시 예전처럼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이 둘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용서는 감정의 문제이고, 관계는 선택의 문제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지만 그 사람과 다시 가까워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어떤 관계에서는 아직 완전히 용서하지 못했지만 관계를 유지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관계는 단순히 감정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시간, 기억, 경험, 그리고 서로에 대한 기대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래서 어떤 사건 이후에 관계가 유지되더라도 그 관계의 본질이 이전과 같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어떤 사람은 여전히 같은 사람으로 남아 있지만, 그 관계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 친구였던 사람이 단순한 지인이 될 수도 있고, 가까웠던 사람이 더 이상 신뢰의 대상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


용서는 이러한 변화를 허용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용서는 관계를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관계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렇게 용서를 어려워하는 것일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이 정의감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잘못이 일어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누군가가 나에게 부당한 일을 저질렀다면 그 사람이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는 것은 부당하게 느껴진다.


이 감정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사회가 유지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정의감이 때로는 우리의 삶을 과거에 묶어두기도 한다는 점이다.


분노와 억울함은 이상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감정을 통해 상대를 붙잡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감정이 우리 자신을 붙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건을 계속 떠올리고, 그 사건이 왜 부당했는지 반복해서 생각하고, 상대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끝없이 분석하는 동안 우리는 그 사건과 계속 연결되어 있게 된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용서는 과거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이루어진다. 용서는 그 사건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건이 더 이상 현재의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선택이다.


물론 모든 사건이 쉽게 용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처는 너무 깊어서 쉽게 내려놓을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사건은 개인의 감정을 넘어 사회적인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이런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모든 것이 용서될 수 있는가.


어떤 사건은 잊혀져서는 안 되는 사건일 수도 있다. 어떤 부조리는 기억되어야 하고, 어떤 폭력은 반복되지 않기 위해 역사 속에 남아야 한다. 이런 사건 앞에서 용서는 단순한 개인의 감정 정리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는 의무가 아니다. 누구에게도 반드시 용서해야 할 책임은 없다. 어떤 상처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어떤 상처는 평생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용서하지 않는 상태 역시 하나의 선택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이 우리를 더 자유롭게 만드는지, 아니면 여전히 과거에 묶어두는지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용서는 타인을 위해 이루어지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용서를 통해 가장 먼저 변화하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분노와 억울함이 조금씩 풀리고, 사건이 더 이상 나의 현재를 지배하지 않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사건으로부터 조금 멀어질 수 있다.


그래서 용서는 자존심을 포기하는 행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긴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자존심을 회복하는 행위에 가깝다. 용서는 상대에게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 지배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이 서로를 용서하는 이유는 완벽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실수한다. 때로는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 못한 채 타인을 아프게 하기도 한다. 완전히 상처 없는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상처 이후의 태도가 중요해진다. 사과는 자신의 행동을 인정하는 행위이고, 용서는 그 사건을 붙잡고 있지 않겠다고 말하는 행위다.


이 두 가지가 만나는 순간 관계는 단순히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른 형태로 다시 시작된다. 그 관계는 이제 완벽함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불완전함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어지기로 선택한 관계가 된다.


그래서 용서는 단순한 도덕적 미덕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서로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방식이다.


그리고 그 방식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아주 중요한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이 사건을 계속 붙잡고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에서 나의 시간을 다시 앞으로 흐르게 할 것인가.


용서는 아마도 그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일 것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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