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몇겹의 알을 깨고 나왔나

경험과 성찰을 통해 걔속 다시 태어나기

by 이수염

어떤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나아지려 한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생각을 만나고, 이전의 자신을 의심하며 조금씩 변화한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어느 순간에서 멈춘다. 지금의 삶이 크게 불만스럽지 않다면 굳이 더 나아가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두 사람 사이의 차이는 능력의 차이일까, 성격의 차이일까, 아니면 단순히 환경의 차이일까.


같은 환경에서 살아가면서도 서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 차이를 단순히 환경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어떤 사람은 같은 자리에서 세계를 넓혀가고, 어떤 사람은 넓은 세계 속에서도 여전히 좁은 세계 안에 머무른다. 이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종종 경험이나 지식, 혹은 노력 같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어쩌면 인간은 하나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보이지 않는 알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하나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 세계는 가족과 사회, 문화와 언어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그 세계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그 세계의 기준을 통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한다. 그러나 그 세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알과도 같다. 그 안에서 우리는 살아가지만, 동시에 그 안에 갇혀 있기도 하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알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 세상의 전부라고 느끼기 쉽다. 물속에서 태어난 물고기가 물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 역시 자신이 속한 세계를 하나의 환경으로 받아들일 뿐 그것이 하나의 틀이라는 사실을 쉽게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순간이 찾아오면 그 세계에 작은 균열이 생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낯선 문화를 경험하거나, 혹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우리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그때 처음으로 우리는 자신이 어떤 알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경험이다. 경험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며 사건을 겪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의 경계를 흔드는 사건이다.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 혹은 자신이 당연하다고 믿었던 가치가 무너지는 순간들은 우리의 세계에 균열을 만든다. 그 균열을 통해 우리는 처음으로 알껍질 너머의 세계를 희미하게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경험만으로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아무 변화 없이 돌아오고, 어떤 사람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한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경험의 양이 아니라 성찰이다. 경험이 세계에 균열을 만든다면, 성찰은 그 균열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게 만든다.


어떤 사람은 경험을 단순한 사건으로 흘려보낸다. 여행을 다녀와도 그저 좋은 기억 하나를 더한 것에 불과하고, 실패를 겪어도 그저 운이 나빴던 일로 남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같은 경험을 통해 질문을 만든다. 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왜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까, 내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은 정말 당연한 것일까. 이런 질문들은 경험을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하나의 깨달음의 가능성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말하던 “견문이 넓다”라는 표현은 단순히 많은 것을 본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견문은 많이 본 것과 깊이 생각한 것이 함께 있을 때 생긴다. 많은 경험이 있어도 성찰이 없다면 세계는 넓어지지 않는다. 반대로 깊이 생각하더라도 경험이 부족하다면 사고는 쉽게 닫힌 세계 안에 머무른다. 견문이 넓다는 것은 결국 경험을 통해 세계를 넓히고, 성찰을 통해 그 세계를 깊게 바라볼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렇게 경험과 성찰이 함께 쌓일 때 우리는 어느 순간 자신이 하나의 알을 깨고 나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전에는 당연하게 보이던 것들이 낯설게 보이고, 이전에는 이해할 수 없던 생각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마치 새로운 세계에 처음 발을 디딘 것처럼 우리의 시야는 넓어지고, 우리의 질문은 달라진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인간은 단 하나의 알만을 깨고 나오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알을 깨고 나오면 우리는 마치 모든 것을 이해한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세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전의 세계가 하나의 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우리는 그 바깥에도 또 다른 알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다. 그들은 자신이 이미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아직 보지 못한 세계가 더 많을 것이라고 느낀다. 그들에게 세계는 하나의 완성된 구조가 아니라 여러 겹의 투명한 알껍질로 이루어진 공간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알껍질이 희미하게 보일 때마다 그들은 다시 질문을 시작한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어느 순간에서 멈춘다. 하나의 알을 깨고 나온 뒤 그곳을 새로운 세계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끊임없이 세계를 넓혀가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나아가는 사람들과 멈추는 사람들 사이에는 하나의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 차이는 자신이 아직도 어떤 알 속에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를 확신으로 채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세계가 충분히 넓다고 믿고, 더 이상의 질문은 필요 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언제나 작은 의심을 남겨 둔다. 내가 보고 있는 세계가 전부일까, 내가 믿고 있는 생각이 정말 마지막일까 하는 의심 말이다.


이 의심은 불안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그 의심 덕분에 우리는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고, 아직 깨지지 않은 알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알을 향해 조용히 손을 뻗게 된다.


어쩌면 인간의 성장은 단순히 더 많은 것을 아는 과정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알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조금씩 깨닫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하나의 세계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몇 번의 세계를 통과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어떤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알을 발견하며 계속해서 태어난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단 한 번의 탄생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의 탄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하나의 세계에서 태어나지만, 경험을 통해 그 세계의 경계를 발견하고, 성찰을 통해 그 세계를 넘어선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는 이전의 자신과 조금 다른 사람이 된다.


결국 인간의 삶이란 어쩌면 이런 과정일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던 알을 발견하고, 그 알에 작은 균열을 만들고, 마침내 그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우리가 깨고 나온 세계 바깥에도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어느 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알은 정말 우리가 마지막으로 도달한 세계일까, 아니면 아직 깨지지 않은 또 하나의 세계일까.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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