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거울 속, 나를 어떻게 봐야할까?

유유상종에 대한 단상

by 이수염

유유상종이라는 비슷한 부류들끼리 어울린다는 사자성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우리는 완전히 비슷할 수가 없다.

사후적으로 붙인 해석에 가깝다.

관계는 늘 이론보다 먼저 생긴다.


나는 친한 친구들의 얼굴을 통해 나를 본다.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하나의 자아가 아니라 분절된 주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의 말투, 선택, 침묵 속에서 내가 지나온 모습과 아직 가지 않은 방향이 동시에 떠오른다.

분명 절반은 나와 다른 결, 절반은 나와 비슷한 결처럼 보이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경계는 생각보다

쉽게 무너진다. 실제로 이 집단에서의 각각의 관계는 연속체에 가깝다.

나와 다르다고 생각한 사람에게서 익숙한 내 그림자를 발견하고, 나와 닮았다고 믿은 사람에게서 오히려 내가 되지 않은 나를 본다. 그래서 이 관계들은 흑과 백이 아니다. 겹쳐진 교집합들이다. 하나의 중심이 있고, 각자는 조금씩 어긋나 있으며, 그 어긋남이 다시 누군가와 맞물린다.

우리는 같은 곳에 서 있지만, 같은 방향을 보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함께 순환한다.

서로를 비추며, 서로를 조금씩 바꾸면서.


그래서 내 인간관계는 하나의 고리와 같다. 처음에는 같은 성질의 사람들만 모인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서로를 삼키며 유지되는 순환에 가깝다. 이 관계는 마치 우로보로스와 오행과 비슷하다.

서로를 삼키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의 몸을 유지하기 위한 움직임인 우로보로스.

닮은은 연결이 되고, 다름은 충돌이 되며, 그 충돌은 파괴가 아니라 균형이 되는 오행 관계와 같다.

그러므로 유유상종이란 같아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 자신을 완성해 가는 구조인지도 모른다.

즉, 동질의 모임이 아니라 차이를 견디는 구조일지도 모른다.


나는 친구들을 다 같이 만나거나, 개개인으로 만날 때 내가 보지 못한 거울 속 나의 모습을 보거나, 마치 유체이탈을 하여 스스로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경험을 한다.

이 경험은 성찰의 관점에서 아주 중요한 발판이 된다. 그렇게 친구들의 모습에서 내가 다듬어야 할 모서리들을 발견한다. 나와 닮은 그들의 단점에서만 다듬어야 할 모서리들이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나와 비슷한 장점을 가졌지만, 나보다 장점의 농도가 짙은 친구를 보고 그들을 본받기도 한다.

이러한 점은 선의의 경쟁을 불러일으키므로 성찰과는 또 다른 긍정적 효과가 된다.


니체는 관계는 조화가 아니라 긴장과 힘의 배치라고 생각했다.

나와 닮은 사람은 나를 강화하고, 나와 다른 사람은 나를 시험한다고 했다.

이 말은 관계는 안정이 아니라 의지의 충돌상태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레비나스 적 지점에서 보아도 이러한 주장은 유유상종이라는 말에 대한 나의 주장에 근거가 되어준다.

레비나스 관점에서 보면, 타인은 나를 이해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나를 흔드는 얼굴이라 했다.

나와 다른 결의 친구에게서 내가 설명할 수 없는 나를 마주하는 것이다. 이해되지 않음에도 지속되는 관계가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윤리는 동일화가 아니라 타자의 침입인 것이다.


우리는 친밀감이 부족한 타인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 타인이 나와 다른 결이라면, 우리는 더욱 그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부정할 것이다. 하지만 친구들은 다르다. 나와 꽤나 친밀하고 오랫동안 유대감과 친밀감을 쌓아온 관계라면, 그들의 모습에서 발견하는 나의 무의식적 모습들에 대한 반감이 적다.

무엇보다 그들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보고 반감이 적고, 성찰하게 되는 까닭은 그들이 나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들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찾아내는 순수한 반성이고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떤 거울을 보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친밀감이 낮은 타인은 마치 나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꼴이다. 그렇게 본 나의 모습이 별로일 때, 저게 나라고? 하며 거울이 왜곡이 있나? 거울이 이상하네라며, 거울 탓을 하게 되지만. 집안에서 손거울로 나의 얼굴을 자세히 본다면, 나의 피부트러블을 부정할 수 없다. 그저 피부가 안 좋아졌네 하며, 피부관리를 하게 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내 친구들의 존재가 몹시도 고맙다. 나와 충돌하는 녀석도, 나에게 힘을 실어주는 녀석도.

모두가 나에게 채찍과 당근이 된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로부터 내가 받는 깨달음과 성찰을 돌려주기도 할 것이다. 모두가 맞물리고 충돌하며, 서로에게 채찍과 당근이 되어주는 관계가 친구가 아닐까?

세상의 모든 것이 나에게 스승이고, 나 역시 세상의 누군가에게는 스승이 될 수 있다.

나는 나를 감싸고 있는 주변을 통해 반성하고 더 나아질 수 있고, 나 역시 그들의 브레이크와 윤활유가 동시에 되어주는 것이다.


당신이 어디에 속해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그들에게 나를 비춰보며, 나를 세공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그렇게 내가 보석 속에서 세공된다면, 나는 보석무리에 있는 보석이 될 것이고,

그들을 통해 내가 먼저 보석이 된다면, 그들은 보석을 세공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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