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다정함은 언제부터 이렇게 중요한 말이 되었을까.
나는 이 질문에서 이 책을 시작하고 싶었다.
우리는 요즘 유난히 다정을 말한다.
다정한 사람, 다정한 태도, 다정한 말투, 다정한 사회.
어디를 둘러보아도 다정은 미덕처럼 진열되어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다정이 많아졌다는 말과 함께
상처도 많아졌다는 말이 동시에 들린다.
모두가 공감을 말하는데
왜 우리는 더 고립되어 있는가.
모두가 이해를 말하는데
왜 갈등은 더 길어지는가.
이 모순이 나를 붙잡았다.
나는 다정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다정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소중해서,
너무 쉽게 쓰이는 것이 두려워졌다.
다정은 본래 따뜻한 것이었다.
누군가의 어깨를 덮어주는 온기,
타인의 고통을 자기 일처럼 느끼는 감각,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는 태도.
그러나 다정이 반복되고 소비되면서
그것은 점점 표면이 되었다.
태도가 내용보다 앞서고,
말투가 구조를 덮고,
공감이 질문을 잠재웠다.
나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다정함에도 역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정을 시대와 분리해서 생각해왔다.
마치 그것이 영원히 동일한 본질인 것처럼.
그러나 역사를 보면,
다정은 늘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전쟁의 시대에는
다정이 약함으로 오해되었다.
살아남는 것이 먼저였고,
버티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 시대에 필요한 다정은
말이 아니라 생존의 분배였다.
빵을 나누는 손,
총을 대신 들어주는 어깨,
침묵 속에서 함께 견디는 존재.
그것이 그 시대의 다정이었다.
시간이 흘러 안정의 시대가 오면
사람들은 비로소 감정을 말하기 시작한다.
이해와 공감이 중요해지고,
상처를 드러내는 용기가 칭찬받는다.
그때 다정은
관계의 기술이 된다.
언어가 되고,
표현이 되고,
제스처가 된다.
문제는 그 이후다.
다정이 너무 당연해지면
그것은 방향을 잃는다.
누구를 향하는지,
무엇을 바꾸려 하는지 묻지 않게 된다.
다정은 그저 “좋은 것”이 된다.
좋은 말, 좋은 분위기, 좋은 사람.
그러나 나는 묻고 싶었다.
좋은 것이라 불리는 다정은
정말로 좋은가.
혹시 누군가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길들여진 것은 아닌가.
나는 세상을 자연처럼 본다.
햇님과 바람의 이야기처럼.
바람은 외투를 벗기려 힘을 쓴다.
강하게 몰아붙인다.
그러나 나그네는 더 움켜쥔다.
햇님은 따뜻하게 비춘다.
나그네는 스스로 벗는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다정의 승리로 기억한다.
그러나 나는 덧붙이고 싶다.
그날의 기온은 어땠는가.
그 나그네의 사정은 무엇이었는가.
다정은 항상 옳은가,
아니면 특정한 온도에서만 유효한가.
이 질문이 이 책의 시작이다.
이 책은 다정을 찬양하지도,
다정을 공격하지도 않는다.
그저 다정을 역사 속에 놓아본다.
차가운 시대에 태어난 다정,
따뜻한 시대에 소비된 다정,
그리고 다시 구조를 묻기 시작하는 다정.
나는 믿는다.
다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다정의 얼굴은 바뀐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정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정을 읽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다정은
어떤 온도 속에 있는가.
이 질문을 함께 붙잡고
이 역사를 걸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