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에서 ‘성장과정'이 중요한 이유
우리의 성격과 능력은 선천적인 것이 더 영향을 미칠까, 아니면 후천적인 것이 영향을 미칠까. 이러한 고민은 오랫동안 고민해온 숙제였다.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나름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주변 친구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보고 느낀 바가 있다. 바로 '성장과정'의 중요성이다. 선천적인 재능은 물론 중요하지만 성장하면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다움', 즉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데 성장과정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에 나름 성과를 이뤘던 친구들 중 성장배경이 독특한 친구들이 몇 있는데 그게 어떻게 성공적인 성과를 낼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성장과정이 어떻게 그 사람의 ‘다움’을 만들었는지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나는 디자이너로 평생을 살아왔지만 이 사례들은 비단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어떤 전공이라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내 베스트 프렌드 중 한명인 A군은 어찌보면 나의 롤모델이기도 했다. 어릴때 부터 똑똑해서 무엇이든 잘하는 친구였다. 이 친구의 최대 장점은 '돈이 되는 일을 잘한다' 였다. 수능성적도 상당히 우수했는데 내가 재수를 하던 시절에 만났다. 그러다 재수할 때부터 미대입시를 처음으로 준비했는데 아무래도 예전부터 미술을 준비하던 친구가 아니다 보니 처음에는 무난무난한 그림을 그렸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머리'가 좋다보니 그림을 분석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배우기 시작했고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결국 성공적으로 재수 생활을 마치고 국내 명문대의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미술을 시작한 지 단 1년만에 미대입시의 경쟁률을 뚫은 것이다.
하지만 입학 후 미대 공부에는 별 흥미가 없어보였다. 학점도 그렇게 좋지는 않았고 본인이 좋아하는 공부만 하였다. 그래서 본인이 흥미가 있었던 과목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지만 그렇지 않은 과목에서는 죽을 썼다.
A군은 사실 돈버는 일을 더 좋아했다. 허리가 좋지 않아 방위산업체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디자인 일을 하였다. 이건 매우 부러웠다. 군대 생활을 하면서 디자인 역량을 키울수 있다니! 나는 따로 어도비 프로그램을 공부했었어야 했고, 학창시절에 나는 정말 열심히 하였지만 실무 경험은 3학년이 되어서야 인턴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A군은 이미 군 시절에 실무 디자인을 완벽하게 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다.
이 친구의 성격은 항상 본인이 흥미 있는 일만 하는 것이 특징이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다고 쉽게 질려서 조금만 하다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어느정도 그 분야에서 정점을 찍고 아 재미없다 하면서 다른 일을 하는 것 같다.
3학년이 되더니 이제 디자인이 지겨워졌다고 했다. 그리고 갑자기 개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 몇개월 지나니 x베이 등 매우 큰 기업들의 외주를 받아서 개발 알바를 하고 있다고 했다. 아니 그게 그렇게 쉽게 가능한 일인가? 디자이너에서 개발자로 순식간에 전향한 것도 놀랐지만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나서 어느날 갑자기 나에게 일본을 가게 되었다고 했다. 일본에 개발자로 취업한 것이다. 물론 영어는 어느 정도 하는 친구였는데 이제는 일본어까지 공부하여 일본에서 약 5년 동안 일했다. 그러다 이제 일본에 질려서 한국에 왔는데 또 몇달 놀다가 지금은 국내 굴지 금융권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항상 흥미 있는 일만 하지만 그 분야에서 어느 정도 끝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이 친구의 성장과정은 어땠을까. 부모님께서는 어렸을때부터 용돈을 거의 주지 않았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자립심을 길렀다고 한다. 부유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용돈을 못 줄 정도는 아니었는데, 부모님께서 그렇게 키웠다고 한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어떻게든 혼자 돈을 벌어야겠다라는 마인드로 계속 본인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것으로 보인다.
B양은 내가 알고 있는 친구들 중에 가장 빠르게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성장했던 친구이다. 심지어 회화 계열에서 UX쪽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은데 매우 빠른 시간 내에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단기간에 엄청난 성과를 이뤄냈다. 지금은 누구나 들으면 아는 기업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이 친구의 성향은 일단 지르는것을 좋아한다. 영업 능력이 정말 탁월한데, 본인의 역량보다도 일단 돈을 더 크게 부른다. 그래서 수주를 따내고 그 납품 일자에 맞춰서 본인의 실력을 어떻게든 키워 맞춘다.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원래 계약 시 말했던 실력을 맞추는 방법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깡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많은 친구들이 본인이 경력이 없거나 비전공자거나 하면 움츠려들고 금액을 세게 안 부르는 경향이 있고 이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회화계열 (물론 연관이 아예 없는 과는 아니지만) 출신이었고 UX는 많은 경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던 따로 공부를 하던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리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열정이 뛰어난데 그 기준이 일반 사람들하고는 많이 달랐던 것 같다.
학생때 정말 프리랜서 일을 많이했었는데 많이 할 때는 연간 3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다. 본인이 정말 순수하게 즐거워하면서 프리랜서로 이정도 돈을 벌었다면서 자랑하던 모습이 선하다. 내가 아는 한 디자인 프리랜서로 제일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었던 사례같다. 그렇게 몇년이 되지 않아 무시무시하게 성장하였고 지금은 거꾸로 내가 많이 배우고 존경하는 친구이다.
이 친구의 성장배경 또한 부모님의 영향이 있었다. 어릴때부터 독립심을 키울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특히나 대학생 때는 남성들도 버티기 힘든 궂은 알바들을 많이 하면서 강인한 정신력을 키웠다. 이때 키워진 강인한 멘탈은 나중에 어떤 일을 도맡아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본인이 관심이 있던 UX에 대해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더라도 일단 부딪혀 보자는 마인드가 있었던 것 같다.
B양은 처음에 스타트업에서 일했을 당시 이것저것 정말 다양한 디자인 업무를 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레퍼로 보지 않고 어제의 나보다 성장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제의 나보다 한층 성장했는가 그것이 바로 성장의 기준인 것이다. UX는 정답이 없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계속 끊임없이 도전을 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학창시절의 마인드가 계속 이어져와서라고 생각한다. B양은 학창시절때부터 실패해도 그 모든 도전들이 피가되고 살이되는 경험이라고 믿었다.
C군 또한 나의 롤모델이 되었던 엄청난 디자이너다. 한국 사람은 아니고 레바논 디자이너이다. 최근에 큰 폭발로 걱정을 많이 했었지만 무사하다고 연락이 와서 안심했었던, 나의 디자인 삶에 큰 영향을 끼쳤던 친구이다. 이 친구와 함께 일을 하면서 느꼈던 부분이 많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한국 디자이너들에게는 없었던 무언가가 그 친구에게 있었다. 그것도 매우 설득력이 있었고 정말 창의적인 생각으로 문제를 하나 하나 풀어나갔다. 한 사례를 꼭 찝어서 말할 수는 없겠으나 함께 작업을 하면서, 회의를 하면서 놀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진정한 디자인씽커란 이 친구를 두고 말하는 것일 것이다.
물론 레바논 출신이라 사우디어, 영어, 프랑스어에 능통한 장점이 있었지만 웹디자이너로 시작하여 이제는 브랜드 컨설턴시의 대표가 된 C군을 사례로 든 이유는 독특한 성장배경 때문이었다.
레바논은 예전부터 내전이 많은 나라이다. C군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레바논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공항에서부터 군인이 총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아파트벽에는 총탄이 박혀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려가 컷었지만 이 친구는 아주 대수롭지 않게 "걱정할 필요 없어. 군인이 이렇게 지키고 있다는 것은 지금은 매우 안전한 상태라는 것이니까" 라고 이야기했다.
어느날 C군에게 물어보았다. 너네 나라 친구들은 어떻게 그렇게 창의적이야? 그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우리는 항상 어렸을 때부터 생존을 위해서 살아야 했기 때문에 항상 넘치던 문제를 해결하면서 살았다고. 레바논의 많은 건물은 중앙 전력 뿐만 아니라 지하실에 자가 발전을 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 혹시라도 내전이 터지거나 이슈가 있을 때 중앙 전력을 끊고 바로 자가 발전 체제에 돌입한다.
이러한 성장 배경 때문에 문제 정의 및 해결에 능하고 항상 긴장한 상태를 유지한다고 했다. 문제가 터져도 죽을만한 문제가 아니므로 만약 한국 사람이라면 매우 당황하는 상황에서도 언제나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우리를 이끌어 주었다.
이러한 국가의 상태 및 문화가 그 사람의 성장과정에 큰 영향을 끼쳤고, 그러한 성장배경이 디자이너로서 일할 때도 스타일에 반영되었다.
D군도 독특한 케이스이다. 호주에서 음악 공부를 했던 친구인데, 한국에서 개발자로 키워준다는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한 케이스이다. 지금은 개발자로 정규직으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인데, 신입때 항상 1등을 하였다. 본인은 손사래를 치지만 아무렇지 않게 성과를 이뤄내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했다.
조금 MSG를 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이 친구가 어떻게 음대 출신인데 개발을 그렇게 잘할 수 있을까 물어본 적이 있다. 옆에서 보면 퇴근도 항상 빠르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그친구 왈. ‘그냥 노랫소리라고 생각하고 코드를 봐요'. 충격이었다. 정말 영화같은 이야기이다. 음악이나 코드 모두 일정한 규칙이 있다. 그 규칙을 잘 껴맞추어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이 음악, 그리고 error가 나지 않게 하는 것이 바로 개발 코드이다. 이러한 두 속성을 아주 절묘하게 연결시켜 평소에 출근할때나 퇴근할때나 주말이나 쉬는날이나 상관없이 노래소리를 듣고 작곡을 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음대출신 개발자의 힘이다.
이 친구는 국내파는 아니라서 우리와는 성장배경이 좀 다르기는 하지만 이 친구를 보면서 악동뮤지션이 생각이 났다. 호주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음악을 배우고 즐겼던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음악을 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취미로, 즐기면서 항상 머리속에서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공부했다.
하지만 해외파라고 꼭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고 평소에 음악과 다른 분야를 연결하여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작곡을 할 때도 음악 기계의 매커니즘을 고려하여 음악을 디자인했다고. 평소에 그런 마인드로 성장해 왔던 것이 지금의 그를 만든 것 같다. 지금은 훌륭한 개발자로 성장하여 본인 자리에서 맡은 바 최선을 다하고 있다.
E군의 경우 스펙이 그렇게 좋지도 않고 머리가 뛰어나거나 주변의 도움이 손길이 많았거나 집안이 좋은 편도 아니었다. 그러나 취뽀에 성공했는데 그 비결에는 성장과정이 있었다. 특히나 요즘 트렌드인 ‘스펙좋은 인재'가 아닌 ‘최적화된 인재'에 걸맞는 사례였다.
이 친구의 부모님은 공장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신 분들이었고 어릴때부터 여러 기계의 부속품들을 집에서 많이 접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그런 기기들을 만지작만지작 거리게 되었고 아버님께서는 집의 물건들이 고장나면 금새 고쳐주셨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따라서 기계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고쳐보기도 하였다. 그는 결국 진로를 엔지니어로 선택하게 된다.
대학생 시절에도 아버지를 닮았는지 학교나 자취방에 무언가 고장나면 자주 고쳐주곤 했던 공대 오빠였다. 그렇게 조립하고 만들고 하는 것을 잘한다고 소문이 났고 그런 경험들이 공모전 수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영어성적이 좋지도 않았고 학교도 명문대는 아니었지만 이 공모전 수상의 배경이 예전 성장과정과 연결되면서 면접에서 해박한 지식을 어필했고 결국 취업에 성공하게 되었다.
E군의 행보는 분명 아버지를 선천적으로 닮아서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릴때부터의 환경이 전공 선택에도 분명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다음 사례는 교수님이다. 내 지도 교수님이시기도 한 그녀는 정말 순수하게 한국에서 공부했던 엘리트이다.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공부해서는 창의적이지 못해" 이런 자조섞인 불만들을 많이 이야기해준다. 하지만 실제로 요즘에는 순수 국내파가 해외에서 엄청난 성과를 이뤄가는 경우도 많다. 예전에는 한국의 주입식 교육을 정말 싫어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그 교육방식도 장점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인간적인 교육이 아닌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능력 향상에 있어서, 효율성 측면에서, 주입식 교육은 정말로 효과적이다. 그리고 요즘 한국의 교육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개선되었다고 알고 있다.
F교수님은 비주얼 디자인 전공은 아니다. 정말 디자인을 '이론적'으로 ‘공부’해서 유일한 한국인 디자인 교수가 되신 분인데 정말 그 공부량이 어마어마했다. 한국 사람들의 장점이라면 ‘엄청나게 성실한' 부분을 예외로 할 수가 없다. 그냥 어렸을 때부터 공부공부. 공부를 안하면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공부 강박증에 걸린 우리지만 이 강박증은 정말 해외에서 막강한 위력을 자랑한다. 교수님은 완전 비전공자였지만 석박사 시절 거의 살인적인 스케쥴로 디자인을 공부하였고 인정받는 디자인 리서처로서 유일한 한국인으로서 쟁쟁한 외국인 교수 지망생들을 제치고 영국의 교수님이 되었다. 어렸을 때 외국에서 살았던 것도 아니고 성인이 되어서부터 영국에서 공부하였다. 주입식 교육으로 학창시절 영어공부를 하셨던 분인데, 워낙 문법적으로 완벽한 분이시라 회화 영어만 공부하면 되었다고 한다.
A군의 사례와도 비슷한 부분인데 디자이너도 꽤 높은 경지까지 ‘공부'로 커버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특히나 요즘에는 비주얼 그래픽 디자인 역량 뿐만 아니라 리서치 등 다양한 역량이 요구되는 만큼 ‘성실한 공부'로 많은 부분을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각적인 부분도 비핸스나 핀터레스트 등을 보면서 꾸준하게 모작을 하는 사람이면 재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언젠가는 충분히 주변에서 인정받는 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요즘 훌륭한 디자이너들을 보면 그저 꾸준하게 작업하는 것을 생활화한 소위 ‘엉덩이가 무거운' 분들이 많다.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으신 분들 중 국내파이신 분들도 많고 그분들의 이력을 보면 한국에서도 잘하셨던 분들이 많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글렀어 해외로 가야겠어 이렇게 생각하는 것보다 한국에서 할만큼 했어 해외로 더 뻗어나가야겠어 이런 마인드로 해외에 대한 꿈을 키워나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성장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자기소개에서도 항상 성장과정을 물어보는데 그만큼 성장과정이 그사람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크나큰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그 ‘직무'를 선택하는 데 성장과정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를 인사담당자는 본다. 또 같은 직무에 지원한 지원자라도 성장과정을 어떻게 경험했느냐에 따라 일하는 방식이 다를 것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에 성장과정을 매우 중시 여기는 것이다. 같은 UX디자이너라도 한국에서 열심히 공부한 디자이너와 레바논의 내전을 겪으면서 성장한 C군과는 디자인 업무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느 것이 더 낫다 못하다를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스타일이 다를 뿐이다.
여러 외국 디자이너들하고 일을 해보면서, 한국 디자이너들이 정말 일을 잘한다는 것을 느꼈다. 열정 하나만큼은 전세계 어느 디자이너 못지 않다. 우리는 인고의 시간을 거쳐서 수많은 경쟁을 통해서 디자인 감각을 훈련해왔다. 물론 단기간에 주입식 교육으로 훈련된 부분도 없잖아 있지만 그렇게 수많은 경쟁을 겪고 성장해온 배경은 충분히 세계에서도 경쟁력이 있다고 느꼈다.
아직도 외국 디자이너 앞에 서면 아무래도 위축감을 느낀다. 평생동안 영어를 공부했지만 네이티브가 아니다보니 아직도 영어를 하는 데 부담을 느낀다. 그러나 막상 일을 해보면 그들도 사람이라 생각이 들어 예전보다는 조금이나마 두려움이 사라진 것 같다. 작업할 때마다 항상 자신에 대한 부족함을 느끼지만 서로 작업물을 공유하고 스터디를 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나 요즘은 한국 디자인 커뮤니티들이 활성화되어 정보 교류에도 이점이 많다. 서로서로 배우고 공부하는 자세는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의 가장 큰 힘인 것 같다.
지금 우리가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분명 미래의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언젠가는 미래의 우리가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좋은 성장과정이었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바로 우리만의 ‘다움'을 만드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성장과정에는 항상 좋은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 것이 좋다. 사례로 든 지인들은 내가 성장하는 데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우리는 인생을 혼자 살아가지 못한다. 특히나 어른이 되었다고 다 성장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체적으로는 성장했을 수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아직 멀었다. 인간은 인생에서 실패와 과오를 반복한다. 그러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 죽을때까지 공부해야하는 숙명의 우리들은 그런 면에서 계속 성장할 수 있다. 나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던 지인들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사례 중 개인적인 부분은 인터뷰를 통해 검토하였습니다.
THIS.는 Do Something Meaningful이라는 슬로건으로 의미있는 디자인 활동을 하는 디자인 커뮤니티입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비핸스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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