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여행 4박 5일
일상의 단조로움에 익숙해지고, 지루함이 무감각해질 때즈음 상하이에 다녀왔다.
오랜만의 여행에서는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가 있는데 사실 그 새로움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저 숨겨져 있거나 깊숙한 곳에 감추어 뒀을 뿐이지 그것은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끊임없이 걸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웬만한 음식은 거부감 없이 잘 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여행에서 보는 모든 것들에 감탄을 멈추지 않을 수 있는 에너제틱한 사람이라는 것 등등. 평상시에는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여행지에 가면 튀어나온다.
상하이 여행에서 내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그건 나에 대해서가 아니라 정안에 대해서이다. 여행을 가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몰랐을 수도 있다. 새로운 환경에 놓였을 때만 알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평상시의 정안은 익숙한 음식을 좋아한다. 똑같은 고깃집에 일주일에 두 번, 세 번을 가고 싶어 하는 아이인데, 생각보다 여행지에서 새로운 먹거리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여행을 가기 전 가장 걱정은 항상 먹을 것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아이는 생각보다 현지에 잘 적응했다. 쯔란이 발린 양꼬치를 와구 먹는 모습이나 처음 보는 모양의 만두를 먹을 때 걱정보다는 설렘이 더 큰 표정이었다. 잠이 부족해서 졸리는 오후 시간이 되면 늘 짜증이 먼저 올라오는 아이인데 여행 중에서는 평상시보다 잠을 자는 시간이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짜증을 낸 적이 없었다. 애고 어른이고 여행지에서는 피곤함을 잠시 넣어둘 수 있는 능력이 있나 보다. 여행이 주는 마법 같은 시간들이었다.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더 중요할 때도 있다. 제아무리 지상 최고의 낙원이라 할지언정 나와 여행스타일이 정 반대인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이 즐거울까? 그곳에 또 가고 싶을 만큼 기억에 남게 될까?
정안과 나, 그리고 나의 남편 지수는 꽤 잘 맞는 여행 메이트이다. 이것 또한 몇 번의 여행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정안은 자기의 의견을 낼 수 있는 위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잘 따라와 주는 멤버이다. 현재 자신의 상태를 표현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남편과 나는 큰 틀만 있으면 그 안에서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부류이다. 가고 싶은 식당의 주소를 적어 놓기보다는 걷다가 마음에 드는 식당이 있으면 들어가는 것을 선호한다. 한 식당에서 배 터지게 먹는 것이 아니고 A식당에서 먹고, 또 B식당에 가서 또 먹고, 길거리에서 한 번 더 먹는 것을 좋아한다. 길에서 먹는 것도, 길을 걸으면 무언가를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디디택시를 타고 편하게 움직일 수 있지만 웬만하면 걸어 다니면서 곳곳을 보고 싶어 한다. 지하철을 타고 에스컬레이터를 기다리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에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에 화를 내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사람은 없다. 가끔 내가 짜증을 낼 때도 있지만 그것이 길어지지 않게 나를 웃게 만들어 주는 것 또한 남편이다. 이것도 합이 잘 맞으니 가능한 일이 아닐까.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문제는 알리페이였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결제가 막혔다. 우리가 예상하는 바로는 두 사람의 핸드폰에 똑같은 카드 번호를 입력해서 사용한 게 화근이 아닐까 싶지만 그건 우리의 추측일 뿐 진짜 이유는 모른다. 결제가 막혔을 때 나는 오빠가 왜 여행 직전까지 해외 사용한 신용카드를 확인하지 않아서 내 카드 번호를 입력해서 이러한 일이 생기게 만들었냐고 짜증을 냈지만 오빠는 한 번의 짜증도 없이 해결방법을 찾아서 필요한 일을 처리했다. 결국 내가 애플페이를 생각해 내서 결제 또한 잘 마무리되었다. 쓰다 보니 남편이 정말 나의 좋은 여행메이트이지 내가 남편의 좋은 여행 메이트는 아닌 것 같다.
4박 5일의 일정이었지만 상하이에 밤늦게 도착하는 비행기, 제주로 새벽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라 실질적인 여행 시간은 3일이었다. 짧은 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싶었다. 짧은 여행은 언제나 아쉽다. 시간적인 제한이 있으니 할 수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저 우리는 걷고 또 걸었고, 보고 또 보았다. 아이를 위한 장소와 어른을 위한 장소가 달랐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과 어른이 좋아하는 것이 달랐다. 그래도 우리는 3일 꽉 채워 행복했다. 제주 섬에서 큰 대륙의 도시 상하이로 간 여행은 매 순간 행복으로 가득 찼다. 집에서는 자야 할 시간에 호텔 자판기에서 사 먹는 컵라면, 편의점에서 심사숙고해서 골라온 과자까지도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에 행복을 느끼는 것. 그것이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가 아닐까.
그리고 내 아이가 이 세상은 얼마나 넓은지, 이 지구에 얼마나 다양한 언어가 있는지, 내가 먹어 보지 못한 새로운 음식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가 가보지 못한 곳은 어떨지 궁금해하고, 궁금증에 대한 답을 스스로 알아가기를 바라며 나는 또 다음 여행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