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함께 브리즈번에 왔다.

by 은성킴

브리즈번에 도착해서 모든 짐을 다 찾고 정신을 차리니 오전 8시가 안된 시간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갈 곳은 없고, 숙소 체크인까지는 3시간 정도 남았다. 무작정 구글맵을 켜고 숙소가 있는 곳까지 공항철도를 타고 갔다.

지나간 일을 글로 풀어놓으니 아무것도 아닌 쉬운 일 같아 보이지만 이동하는 그 길은 짧지만 길었다. 휴대용 유모차에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자꾸만 안겨 있으려는 정안이를 안고, 가방을 메고, 트렁크를 끌고 유모차를 밀고 걸었다. ktx 타고 지나가다 봐도 우리는 여행객의 모습이었다. 여행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지쳤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보다는 한숨이 먼저 나왔다.

공항철도에서 내려 숙소 방향으로 걷다가 눈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서 플랫와이트를 주문했다. 호주에 왔다는 기분을 만끽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카페인의 힘으로 다시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어찌 직원들이 다 한국인이네? 아마 한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카페처럼 보였다. 전 세계 어디서도 한국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끌리는 걸까.


정안이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여기서 시간을 때우고, 에너지를 충전하고 싶었지만 쫓기듯 후루룩 커피를 마시고 거리를 걸었다. 카페인 탓일까 방금 전까지 나를 괴롭히던 피곤함은 사라지고 온갖 짐을 이고 지고 걸어도 행복했다. 정안이는 지금 우리가 호주에 있다는 것을 알까? 당연히 모르겠지만 알 것이라는 마음으로 뭐든지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아기와 함께라 행복한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여행 중간중간에 ‘아기 없이 둘이었다면’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둘이었다면 여기 앉아서 이따 뭐할지 계획 짜면서 느긋하게 커피 한 잔 하고 브런치까지 먹을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셋이 와서 너무 좋다고 했다. 우리 집 악역은 언제나 내 담당이다. 엄마도 아기랑 같이 하는 여행은 처음이라 그렇다고 생각해줘. 아기를 데리고 하는 여행에도 적응이 필요하다.



이유식, 물, 티슈가 널부러져 있는 걸 보니 정안이를 달래려고 애썼나보다. 그럼에도 울고 있는 정안.




호주는 덥다는 일차원적인 생각을 가지고 짐을 쌌는데 브리즈번은 멜버른과 비슷했다. 하루에도 4계절 날씨를 다 느낄 수 있고, 흐린 날이 많은 그런 도시였다. 정안이는 비행기에서 입었던 내복 차림 그대로 여행을 했다. 옷을 갈아입히고 사진을 예쁘게 찍어주고 할 수가 없었다.

여행 후 가장 후회되는 것은 언제나 ‘사진 좀 많이 찍을걸.’이다. 눈으로 담아야 진짜 여행이지 하면서 돌아다니다 결국 집으로 돌아오면 남는 건 사진이다. 아기가 있으니 사진을 찍는 건 더더욱 힘들어졌다. 손에 핸드폰을 들고 있으면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길 때 바로 반응하기가 어려워 핸드폰을 손에 잘 들고 있기가 꺼려졌다. 이때의 정안이 사진이 많이 없는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든다.



흐린 날을 뒤로하고 지나가다 야외 테이블이 있는 곳에서 또 쉬기도 하며 천천히 사우스뱅크에 갔다. 아까 들린 카페 직원들에게 근처 가볼만한 곳을 물어봤더니 알려준 곳이다.

어딜 가든 초록 초록한 풍경들이 나를 신나게 만들었다. 여름의 색이다.

추운 날씨가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무작정 걸었다. 우리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목적지 없이 무작정 끌리는 방향으로 가는 것도 좋고, 목적지가 있어 지도를 보고 걸어가며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것은 우리가 어느 동네에 가도 하는 일이다. 이 곳 브리즈번에서도 우리는 참 많이 걸었다. 숙소가 내 집인 마냥 근처에 뭐가 있는지, 스타벅스는 걸어서 얼마나 걸리는지 그런 것들을 찾아보는 것이 우리의 여행에 있어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




아무런 의미 없는 사진들을 보고 있자면 내가 여행을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스쳐 지나가 버리고 말 것들을 찍어 둔다. 별 것 아닌 것들,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것들에 어떠한 의미를 두고 바라보면 일상에서 행복한 일들을 조금 더 많아진다. 물론 한국에서 지나가다 보는 것들과 다른 이국적인 모습에 끌려 의미를 두는 것이기는 하지만 여행을 끝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그곳에서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런 것들을 보면 볼수록 정안이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정안이가 이런 것들을 보고 신기해하고, 궁금해하고, 흥미를 가진다면 좋을 것 같다는 욕심이 들었다.



흐린 브리즈번은 쨍한 여름의 색감이 아닌 조금 차분한 색깔로 기억된다. 맑은 날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이런 날씨는 조금 쳐지기 마련이지만 여기가 브리즈번이라는 생각에 설레기 시작했다. 정안이때문에 힘들었다가도 금방 또 다시 기분이 풀리기도 했다.

숙소 체크인을 하자마자 짐을 풀기도 전에 셋 다 기절해버렸다. 그 큰 짐을 이고 지고 걸어 다녔으니 피곤할 만도 하지.

숙소는 마음에 들었다. 바닥 생활이 익숙한 터라 물티슈로 바닥을 닦고 또 닦았다. 정안이가 마음껏 기어 다닐 수 있게.

아기가 없었더라면 아무것도 불편할 것 없는 완벽한 숙소였지만 아기가 지내기엔 높은 침대, 뾰족한 커피 테이블, 아기가 앉을 수 없는 바(bar) 형태의 식탁, 조금은 지저분한 카펫 등 아기에게 위험한 것들이 보였다. 바닥에서 자기엔 뭔가 청결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침대에 셋이 끼어서 꼭 붙어 잤다. 순둥이 시절 정안이는 호주에서 여행하는 기간 동안 오후 8:30분쯤 자서 7:00에 일어나는 바른생활 아기였다. 여행에서 아기가 패턴에 맞게 지내는 것은 행운이고 축복이다.

또 분유를 먹는 시기라 이유식 데울 곳이 없어도 분유를 먹이면 되니 크게 불편할 것이 없었다. 걷지도 못하니 이 또한 다행이었다. 아기를 데리고 여행하기에는 이 시기가 가장 좋았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혼자 잘 걷고, 어른들이 먹는 밥을 함께 먹을 수 있는 25개월 이후도 괜찮겠다.

호주의 첫날은 이상하리만큼 잘 지나갔다. 비행의 피로함과 새로운 곳에 왔다는 김장감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조용했다.

정안이가 일어나면 일정이 시작되고, 잠이 들면 하루가 끝난다. 어딜 가야 할지 정하지 않고 그날그날 날씨에 따라 정안이의 컨디션에 따라가는 장소가 정해진다. 팬시한 식당보다는 아기의자가 있는 백화점 푸드코트가 더 편하고, 정안이가 낮잠 자는 동안 먹을 수 있는 포장음식이 더 맛있는 여행. 둘이 아닌 셋이라서 볼 수 있는 색다른 관점이 생기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는 여행. 아기와 함께하는 이 여행이 나를 얼마나 더 성장시킬 수 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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