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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May 04. 2021

열정 총량의 법칙

열심히 살지 않았던 사람의 변명

 가끔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열정 가득한 삶을 살지 않아도, 목표가 있는 삶을 살지 않아도 괜찮을 걸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원래부터 나는 열심히 사는 사람은 아니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중간은 가니까 딱 그 정도만 하면 만족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었다. 긍정적인 인간이라는 타이틀 아래에 모든 게 다 괜찮았다. 그렇게 열심히 살지 않아도 나는 행복했다. 어릴 적부터 나는 큰 욕심도 없고, 누굴 이기고자 하는 경쟁심도 없고, 목표를 잡아 두고 성취하는 성취감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가 부리는 욕심이라고 하면 운동 안 하고 살 빠졌으면, 공부 안 하고 수능 잘 쳤으면, 로또를 매주 사지도 않으면서 로또 당첨됐으면 하는 류의 욕심이다. 그러다 보니 뭔가를 열정적으로 해 본 일이 없다. 코피를 흘릴 만큼 공부를 한다거나, 죽기 살기로 운동을 해서 다이어트를 한다던가, 어떠한 목표를 정하고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해본 노력을 나는 해 본 적이 없다. 그냥 열심히 하지 않아도 중간은 갔다. 나는 그걸로 만족했다. 괜찮았다.


 

 나의 사춘기는 아주 늦게 왔다. (물론 옆에서 지켜본 가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잘난 줄 알고 살았다. 잘하는 건 없지만 못 하는 것도 없었다.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았다. 어딜 가든 눈에 띄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젊음이 무기가 되는 나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해야 할 무렵이 되었을 때 모두가 가지고 있는 토익 점수 하나 없고, 운전 면허증 하나 없는 내가 남아 있었다. 아주 건방진 아이였다. "토익 점수 따위에 내 영어 능력을 어떻게 평가해? 난 문법은 모르지만 듣기는 자신 있어! 어느 정도 커뮤니케이션이 된다고! 토익 안 봐!", "차도 없는데 면허를 왜 따~ 차가 있어야 면허를 따지. 차를 사면 면허를 딸 거야. 지금 안 해!"

 전공을 살리기는커녕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직장에 들어갈 리가 만무했다. 그래도 대학 시절에 나를 예쁘게 봐준 언니 덕분에 외국계 기업에 쉽게 취업할 수 있었다. 언니가 팀장으로 팀원을 뽑아 가는 거라 가능한 일이었다. 또 다른 언니는 내게 대학원을 권했다. 가끔 그때 대학원을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아이라 대학원은 생각지도 않았다. 이렇게 주변에 나를 챙겨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다. 그 당시엔 역시 나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나름 전공을 살린 부서라 동기들 몇이 신나게 일했다. 일이 너무 쉽고 재미있었다. 그러나 회사는 1년 만에 부산지사를 없앴고, 자연스럽게 나도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쉽게 들어 간 회사라 나오기도 쉬웠다. 간절함이 없었다. 나에게 다른 파트로 갈 수 있는 선택지를 주었음에도 나는 거절했다. 그때도 나는 내가 잘난 줄로만 알고 살았다. 생각해보면 정말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빈 깡통이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열심히 놀았다. 그 이후에도 내가 가고 싶었던 곳에 면접을 봐서 (쉽게) 합격했고, 다니다 그만두고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다. 역시 간절함이 없었기에 나는 또 쉽게 그만 둘 수가 있었다. 오히려 목숨 바쳐 열심히 일하는 동료가 이상해 보였다. 호주에서도 페이가 괜찮은 공장에 친구 덕분에 쉽게 취업하고, 재밌게 일하고, 놀고 그렇게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한국에 와서 또 열심히 놀다가 그만두었던 곳에 다시 재취업을 하고, 그냥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였다. 계획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그냥 이 나이쯤 됐으니 일은 해야 되잖아? 하는 마음으로 재취업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고 주변의 것들이 하나둘씩 객관적이게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객관적인 눈으로 보는 내가 있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이루어낸 것이 없는, 아무것도 제대로 된 것을 가지지 못한 못난 사람이었다. 집에 엄청나게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젊은것도 아니고, 직장이 탄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력이 쌓인 것도 아닌 20대 후반의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렇게 내게 사춘기가 왔다.

 객관적인 눈으로 나를 보기 시작한 건 결혼할 ‘시기’였기 때문이다. 30살 이전에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결혼을 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결혼을 하려고 보니 나는 참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도 예뻤고, 내 일이 있었고, 젊었는데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한 생각들은 과거의 나를 자책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때 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로 괴로웠다. 하지만 나는 원래가 단순하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금방 괜찮아졌다. 괴로워하는 건 잠시뿐 그 상황을 바꾸기 위해 무언가를 시작하지는 않았다. 무언가를 변화시키지도 않았다. 나는 또 계속해서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나 아직 젊잖아, 그럼 됐지 뭐 하면서 훌훌 털어버렸다. 사춘기는 지나간다고 하지 않던가 나의 사춘기 역시 그렇게 지나갔다. 괴롭다고 한들 사람의 천성이 어디 가랴 나는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착한 남편을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열심히 살지 않은 사람에게 주는 선물 치고는 아주 과한 선물을 받은 셈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젊음을 젊음으로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돈을 모아 여행을 떠나고, 취업 준비나 직장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도 없었고, 열심히 놀았더니 더 이상 놀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물론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를 나오고, 멋진 전문직 여성이 된 사람들과 비교를 한다면 누군가의 시선에는 나의 삶은 성공하지 못한 삶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비교하지 않는다. 나의 행복, 나의 기준, 나의 기쁨이 최우선이 되는 사람이라 지금 내 삶에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기에 과거의 내가 후회가 되지 않았다.   


 요즘 책들은 말한다. 열심히 살지 말라고, 최선을 다하지 말라고. 글쎄, 사람은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는 총량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젊을 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 그래야 하고, 젊어서 그렇게 했던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 그런 총량 말이다. 인생을 살며 무조건 이 양만큼은 채워야 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이든, 아니면 조금 미뤄두든 그것은 본인의 몫이지만 그 할당량을 채워야 하니 매일 최선을 다하고 살거나 아니면 어떠한 프로젝트나 목표를 두고 몇 년치의 열정을 쏟아붓던가 그건 본인이 결정하면 된다. 나는 조금씩 미루어 두던 것들을 채워나가야 할 일만 남았다. 그때 하지 못했던  열심히, 열정적으로 내 모든 것을 걸고 열심히 하고 싶은 일이 생겼으면 한다. 후에 “와 나 그때 진짜 열심히 살았잖아.”하고 말할 수 있을만한 그런 나의 일. 그것이 글이 쓰는 일이 되든 새로운 직업을 가지는 일이 되든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만약 내가 20대 시절에 치열하게 살았더라면 이런 생각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내 몫의 열정을 쏟아부을 무언가가 생기게 된다면 더 훗날의 나는 예전처럼 긍정이 최고의 무기인 그런 삶을 살 날도 오게 되겠지.

 

p.s 글을 적다 보니 나는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 나를 도와주었던 부모님, 친구, 언니들, 선배가 없었다면 어떤 삶이었을까. 그들이 없다면 긍정적인 나라는 사람이 유지될 수 있었을까? 그들 없이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나의 사춘기를 함께 겪어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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