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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May 28. 2021

나는 딸이 필요 없다

 나는 아들 하나를 낳아 키우고 있다.

 아들이 하나라고 하면 주변 어른들(가끔은 전혀 모르는 어른들)은 딸이 하나 있어야 한다고, 엄마에게는 딸이 필요하다고 말하곤 한다.

 우선 우리 부부의 자녀 계획은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이다. 그래도 가끔 둘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들이 둘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정안이의 동생이 여자아이 일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다. 같이 운동도 하고, 싸움도 하고, 이것 저것을 쉐어하며 사는 그런 형제였으면 했다. 동생이 맞고 오면 가서 동생 친구들을 때려주는 그런 형이 정안이었으면 했다.

 나는 언니가 한 명 있다. 친구처럼 지내면서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는 아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는 입장이 되다 보니 언니에게 꽤 많은 의지를 한다. 언니가 했던 일들을 그대로는 아니지만 비슷한 순서로 밟고 있으니 인생 선배가 하나 있는 셈이다. 그렇다 보니 형제가 있다면 동성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안이에게도 동생이 있다면 그건 남동생이었으면 했다. 어차피 정안이에게 동생은 없을 거라 중요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우리 둘이 친구처럼 지내며 안될까?

 

  엄마에겐 딸이 필요한 걸까?

  역시도 엄마인데  딸이 필요하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를  수가 없다. 딸은 엄마와 세상을 연결시켜 주는 좋은 매개체이다. 딸은 아들보다 엄마를 챙기고, 엄마의 마음을 이해한다. 엄마와 평생 친구로 지낼  있다고 생각한다.

 딸이 있는 엄마들에게는 집에는 아들이 있어야 해,라고 말을  사람들은 아마 애인 같은 아들을 원할 것이다. 키가 크고, 돈을  버는  아들과 가끔 팔짱을 끼고 데이트를 하는 아들. 집에는 남자가 있어야   있는 일이 있는데 아들이 뚝딱뚝딱해  것이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사실 아들이고 딸이 고는 전혀 중요하지가 않다. 자식은 자식이고 부모는 부모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자식과 부모가 어떻게 친구가   있으며 자식에게 어떻게 부모의 짐을 짊어지게   있겠는가. 친구 ‘같은’ 부모는 될 수 있겠지만 친구는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쌍방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부모님에게 받은 사랑을  자식에게 주는  그것이 대물림될 뿐이다. 정안이 역시 성인이 되면 자신의 삶을 살게  것이다. 우리는 사랑을 주고, 아들이 세상의 벽에 부딪힐  삶의 지혜와 기댈 언덕을 만들어 주면 되는 것이다.  자식이 나를 찾고, 내게 조언을 구할  기꺼이 시간을 내고 함께 있어   있는 것이다. 정안이가  애인처럼 다정하게 굴어주기를 생각을   적도 없거니와 바라지 않을 것이다. 정안이는 자신의 상대를 찾아 다정하게, 자기의 자식에게 사랑을 주면 된다.

 나와  남편은 정안이가 성인이 되면 우리 둘만의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나이가 들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의 우리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가장 친한 친구로, 사랑하는 애인으로 서로의 옆을 지켜  것이다. 내게 있어 가장 친한 친구는  남편이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남편이다. 우리 둘의 사이가 지금처럼 계속해서  좋다면 나에게는 친구 같은 딸은 필요가 없다. 애인 같은 아들도 필요 없고. 그러니 더 이상 딸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차라리 혼자는 심심하니 하나 더 낳으라는 말이 낫다.

 훗날 딸이 없어서 후회하게 될까? 그 이야기는 15년 후쯤 되면 알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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