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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Jan 26. 2023

아무런 조건 없이 부탁을 들어줬더니 생긴 일 -2


 그런 일이 있은 후 3주쯤 지났을까, 전화벨이 울렸다. A였다. 사과하려고 전화했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역시 나는 너무 마음이 약하다. 사과를 기대하며 전화를 받았더니 대뜸 한다는 말이


 “심심하나?”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람. 왜냐고 묻는 나의 말에 계속 심심하냐고만 묻는다. 왜 너는 억울하지도 않냐고, 이렇게 차분한 걸 보니 역시 너는 좀 이상한 애라고, 자기가 나에 대해 여기저기 들은 바에 의해서도 나는 이상한 애라고 한다. '아 그렇구나.'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녀는 10년 전 나의 옛날 남자친구의 지인의 여자친구였다. 만날 때마다 항상 내게 친절한 사람이었다. 나에게는 늘 그 남자와 헤어지라고, 그 남자의 단점을 열거하던 사람이었다. 그것 또한 나를 아껴서 해주는 말이라 생각했기에 나에게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우리가 교집합으로 아는 사람은 다 예전 남자 친구의 지인들 뿐이고, 나는 헤어진 이후에는 그들과 (이 언니 빼고) 연락도 하지 않고, 모르는 사람처럼 살고 있는데 내 이야기를 들었다고? 글쎄...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그냥 욕도 아닌 쌍욕을 듣는(아니, 본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것이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그녀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저 사람은 참 어리석고, 자신을 사로잡은 망상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 정신이 아프다는 말 이외에는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러면서 너의 네이버 아이디와 별명을 당장 캡처해서 보내라는 말에 또 바보같이 보내 준 나다. 남편의 아이디도 내놓으란다. 그래? 내어주지 뭐. 당신이 좋아하는 증거 잔뜩 모아서 하고 싶은 걸 실컷 펼쳐보라는 의미도 있었고, 내 개인정보를 어디 팔지는 않겠지 하는 안일함도 있었다. 나는 아무 거리낄 것이 없기에 아이디나 별명을 주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대신 나는 내가 아닐 시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여기저기 들쑤셔 대며 내가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거짓과 소문을 퍼뜨렸을 것을 생각하니 또다시 억울함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나도 그는 절대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망상 속에는 여전히 내가 악플러이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고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라이브를 했구나 싶었다. 그리고 또 악플러는 나타났겠지. 그도 당연할 것이 내가 아니니까 그 악플러는 계속 나타날 수밖에 없다. 정안이 편도염에 걸려 고열이 계속되어 어린이집도 못 가고 집에만 있는터라 시간도 날짜 개념도 없을 무렵이었다.

 참 불쌍한 사람. 그러니 살이 안 찌지.


 그러고 나서 또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다. 연기도 잘한다는 둥, 시골에 처박혀 살라는 둥, 네가 감히 나 같은 사람이랑 같은 급인 줄 아냐는 둥..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진 않지만 그런 식의 프로필로 바뀌어 있었다.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나는 빚이긴 하지만 부산에서 가장 비싼 주거용 레지던스에 비싼 외제차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아닌데 말이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가게를 큰 기업으로 키운 그 경영능력을 대단하다고만 생각했지 한 번도 그 집이, 그 차가 부러웠던 적은 없는데. 우리는 알고 보면 참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없었던 것 같다. 이제는 그녀가 남긴 욕설과 비난이 가득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서 봤던 그 욕설을 따라 해 유행어처럼 쓰기도 할 만큼 조금씩 상처가 아물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문득문득 떠오른다. 대체 왜 내가 그녀의 악플러가 된 것일까? 여전히 궁금하다. 대체 내가 어디 가서 분탕질을 한 건지, 내가 왜 자신을 가스라이팅해서 내 말대로 움직이게 하려는 소시오패스인지 (쓰면서 약간의 웃음이 나온다.) 궁금하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도와달라는 사람을 도와줬을 뿐인데. 악플러가 나타나면 이렇게 받아치라는 리스트를 받아서 그 말을 그대로 했던 사람은 나인데. 오히려 내가 그녀가 시키는 걸 모두 해 주는 사람에 속하는데 말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본인이 나를 가스라팅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다.


 가끔 상상해 본다. 길거리에서 그녀를 마주치는 장면을.

 내가 가서 인사를 해야 할까? 아니면 그 자리를 피해야 할까?

 아마 인사를 하면 '역시 너는 도라이'라고 할 것이고, 그 자리를 피하면 '역시 너는 악플러'가 될 것이다. (앞서 나 이전에 악플러로 주목했던 전 직원이 자리를 피했을 때, 잘못한 게 있으니 도망간다고 내게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아직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역시나 이 글을 마지막 역시 물음표이다. 도대체 왜 나는 그녀의 망상 속에서 악플러가 되었을까? 유행어의 가사처럼 정답을 알려달라고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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