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인덕원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지하철에서 읽을거리로 얇은 시집 한 권을 가방에 넣었다.
7호선을 타니 빈자리가 보여, 앉았다. 책을 꺼내 무료함을 달랬다. 그게 문제가 되었다. 이수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이수역을 지나 차는 숭실대를 향하고 있었다. '지나가 버렸네.'
숭실대에서 내려 시간을 계산해 보니 늦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시 이수역으로 가는 지하철로 갈아탔다. 두 정거장이란 생각이 머리에 있었는데 잡생각이 들었나 보다.
차 문이 열리는 순간 '신용산'이라는 푯말이 눈에 들어왔다. 깜짝 놀라 후다닥 내렸다. 두 번이나 실수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친구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조금 늦겠다고 말했다.
다시 건너가 갈아타고 인덕원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신경이 곤두 세워졌다.
'별일이네, 연속적으로 두 번이나 실수하다니.'
5-10분쯤 늦겠다 생각하니 한시름 놓였다.
그런데, 이 무슨 일인가! 지하철 밖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내려야 할 역인 '인덕원'이란 글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아까는 뛰어내릴 수 있었는데 지금은 문이 닫혀버렸다.
큰일 났다. 이제는 5분, 10분이 아니다. 갔다 왔다 하면 3-40분 늦을 것이다.
차는 평촌으로 달리고 있었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황을 얘기하자니, 기가 막혔다. 친구는 말이 없었다.
"빨리 와!"
다시 바꿔 타고 도착하니, 기다리고 있던 친구는 말을 하지 않고 딴 곳만 본다.
"미안해, 미안해."
나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날따라 친구는 일찍 나와 족히 한 시간을 기다렸다고 한다.
점심과 커피를 사 주면서 친구를 달래야 했다.
이런 일이 누구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세 번을 연속적으로 한 실수는 스스로에게도 창피했다.
의도하지 않은 실수로 친구를 화나게 했다. 차를 갈아타야 한다는 생각을 못하고 차 타는 시간이 40분 정도면 얇은 시집 정도는 다 읽겠지 하는 단순한 착오로 집중력을 떨어뜨렸다.
자주 깜빡깜빡한다. 리모컨을 쥐고 찾기도 하고, 휴대폰을 냉장고에서 찾아내기도 하고, 등 자잘한 실수를 한다. 특히 요리하다가 불에 올려놓고 태우는 일이 잦아졌다.
'치매가 아냐?' 하고 치매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다행히 치매가 아니라 하니, 주위가 산만해진 탓이다.
'단순하게 살아야지.'라고 생각해도 그게 잘 안된다. 휴대폰만 해도 그렇다. 아날로그 인간으로 살아온
탓에, 그 속에 세상이 다 들어 있다며, 손으로 터치만 하면 알고자 하는 것이 다 들어 있다는 말을 들어도 잘 못하겠고, 뭐 굳이 배워야 할까는 생각을 하기도 하다가, 기본적인 작동을 못해 친구들에게 한 소리를 듣는다.
큰 실수는 아니었지만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주의 깊게 행동해야지 하는 반성을 하면서도 저녁 내내 마음에 남아 속이 시끄러웠다. 어이가 없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