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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준 Sep 17. 2018

혁명은 언제나 변두리에서 시작된다. (1부)

요약:

혁신적 기술을 기반으로 산업이 만들어질 때는, 기존 산업에서 체득했던 성공전략을 버려야 한다. 새로운 게임판에서는 기존의 룰을 얼마나 완벽하게 잘 따르느냐가 아니라, 새로운 룰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본문:


ICO를 평가하는 기준이 개발진의 역량이나 투자금의 모집 규모를 평가하는 데 치중되어 있다. 이는 투자자들이 블록체인 기술이나 서비스 기획의 전략성을 직접 평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발팀의 역량이 출중하니 어떻게든 잘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만으로 투자에 나선다. 기술적 역량을 평가하는 기준도 부실하다. ‘TPS가 얼마나 높은가,’ ‘노드의 개수가 얼마나 많은가,’ ‘거래가 확정되기까지의 기간이 얼마나 짧은가’와 같은 정량적인 평가에만 머물러 있다. 다시 말해, ‘이 프로젝트는 다른 프로젝트와 비교하여 그 스펙이 더 좋은가?’ 라는 단순비교 중심으로 투자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위험한 발상이다. 다음과 같은 일화가 떠오른다.


약 100여 년 전, 유인 동력 비행기를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한창이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두 주자가 있었다. 첫 번째 주자는 피츠버그 대학의 교수이자, 그 저명한 스미스소니언 협회의 의장이었고, 약 1.5km를 비행하는 데 성공한 무인비행기를 만들어낸 경험도 있는 이였다. 미국 국방성을 비롯한 여러 기관 투자자에게서 7만 달러 (노동력 구매력 기준 오늘날 한화로 약 250억)를 비행기 개발비로 지원받았으며, 이런 인맥과 자본력을 바탕으로 각계 전문 엔지니어를 동원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주자는 자전거 수리점을 운영하는 중졸 자영업자이었고, 모든 개발비는 자비로 충당해야 했으며, 시험품도 없었다. 인맥도, 자본력도 변변치 않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개발을 해야만 했다. 이 두 주자의 개발역량의 차이는 극심했다. 이 둘을 서로 ‘경쟁자’라고 비교하는 것조차 민망할 정도였다. 그러나 비행기를 개발해 시험비행에 성공한 이는 피츠버그대 교수였던, 새뮤엘 랭리가 아니라 바로 자전거 중졸 수리점 주인이었던, 오빌 라이트와 윌버 라이트 형제였다.


기존 관념에 대항할 수 있는 용기가 두 주자의 성패를 갈랐다. 새뮤엘 랭리는 기존의 관념에 사로잡혀 정량적인 기술발전에 매진하고 시험비행을 꺼렸으나, 사전 지식이 없어서 고정관념을 갖지 않았던 라이트 형제는 질적인 기술변화를 도입하고, 이를 수많은 시험비행에서 시험하며 개량했다.


새뮤엘 랭리가 디자인 한 비행기(왼쪽)는 정교하고 육중했다. 반면 형제가 디자인한 비행기(오른쪽)는 단순했고, 가벼웠다.


새뮤엘 랭리는 공기 역학과 유체 역학이 유사하다는 것에 착안하여 비행기를 선박의 연장으로 보았다. 배가 거친 파도를 가로지르며 유영하듯, 비행기도 불규칙한 공기의 흐름을 가로지르며 비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행기도 선박처럼 자체적으로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믿었다. 선박이 파도를 이기기 위해서 선체의 크기를 키우고, 강한 엔진을 갖추며, 유선형의 디자인을 취하듯, 비행기도 그리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디자인 철학으로 비행기를 개발하려 했기에 그가 만든 비행기는 크고, 자체안정성을 중시했으며, 육중한 엔진을 달고 있었다. 랭리가 생각하기에 비행기의 성능은 비행기가 하늘에 떠오르기 전, 이미 기체의 안정성, 동력, 무게 등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막대한 자원을 들여 더 나은 성능의 비행기 시제품을 제작하는데 몰두했다. 그는 굳이 비행시험을 많이 하지 않았다. 비행시험으로 귀중한 비행기 시제품이 망가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중퇴했던 라이트 형제는 유체역학이나 공기역학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이들이 알고 있는 것은 자전거를 개량하며 체득한 균형 잡는 요령뿐이었다. 두 개의 바퀴로만 달리는 자전거는 자체안정성을 갖지 못한다. 자전거가 넘어지려 할 때마다 일일이 사람이 핸들을 돌려서 중심을 맞추어 주어야 한다.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도 응당 그러하리라고 생각했다. 형제는 비행기도 자전거처럼 디자인했다. 유체역학적으로 중심을 잡기 쉬운 두꺼운 V-형 날개 대신 조작이 쉽고 날렵한 얇고 긴 날개를 택했다. 공기의 흐름을 이겨낼 필요가 없었음으로 엔진도 출력이 약하지만 가벼운 것을 직접 만들었다. 유체역학이나 공기역학, 기계설계학에 대해 무지했던 형제는 종이 위의 스펙을 끌어올리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고, 성능을 발전시킬 역량도 부족했다. 이들은 대신 사람이 직접 조종하며 기체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믿음하에 끊임없이 직접 시험비행을 해가며 비행기의 디자인을 개량했다. 형제가 만든 비행기는 단순했고, 자체 엔진의 출력은 약했으며, 사람의 도움 없이는 기체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도 없었지만, 디자인 하나하나에 경험에서 체득한 혁신이 담겨있었다.


결국, 기계의 힘으로 바람의 흐름을 이기려고 했던 새뮤엘 랭리의 비행기는 추락했고 사람의 조작으로 바람의 흐름을 탈 수 있었던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는 1분 넘게 비행했다. 역사서에는 형제의 이름이 남았다.

비행에 실패한 새뮤엘 랭리(왼쪽)와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오른쪽)

새뮤엘 랭리가 실패했고 라이트 형제가 성공했던 원인은 새뮤엘 랭리가 무능했기 때문도, 라이트 형제가 천재였기 때문도 아니다. 그 시절, 어떤 기준을 놓고 봐도 새뮤엘 랭리는 프로였고, 라이트 형제는 아마추어에 불과했다. 새뮤엘 랭리가 실패한 원인은 ‘비행’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문제의 해답을 ‘공기역학적 최적화’라는 기존 학문의 틀 안에서만 찾으려 했고, 이렇게 완성된 틀 안에서 이루어 낸 ‘정량적 진보’(더 강한 동력, 더 나은 안정성 등)에 안주하여 임상적 시험을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라이트 형제가 성공한 원인은 문제의 해답을 이미 완성된 학문의 틀 밖에서 찾았으며, ‘질적인 기술혁신’ (안정성 확보는 기계가 아닌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디자인 철학)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디자인을 끊임없이 시험하며 개량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라이트 형제는 새뮤엘 랭리가 철칙으로 여기던 ‘자체 안정성’을 버렸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기술 혁명은 이렇듯 변두리에서 일어난다.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되고 다져진 산업이나 지식체계에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산업이나 지식체계를 일으키며 나타난다. 그 예는 비행기 개발의 초창기 역사를 제외하고도 무수히 많다. 구글이 검색 서비스를 시작하던 무렵, 야후를 위시한 경쟁업체들은 이미 검색엔진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 무렵 야후를 비롯한 검색엔진은 사전학 (lexicography)와 철학적 존재분류학(Ontology)에 근거한 알고리즘을 쓰고 있었다. 웹사이트의 의미와 제목을 인덱싱하고 이를 고도로 정교하게 분류함으로써 검색 서비스의 품질을 올리고자 한 것이다. 과거, 수백 년 동안 체계화된 패러다임(사전학적, 존재분류학적 알고리즘)를 그대로 답습해 검색 알고리즘을 만들었기에 야후는 자사의 검색 알고리즘을 쉽게 바꾸지 못했다.


이에 반해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은 매우 단순했다. 이용자가 어떤 웹사이트에서 어떤 웹사이트로 옮겨가는지(PageRank)를 정량화해 이로 검색어와 검색결과 사이의 의미 관련성을 대신 했다. 또한, 야후가 도서관의 사서가 장서를 관리하는 방식의 알고리즘으로 검색엔진을 디자인했다면, 구글은 기존 지식체계를 무시하고 단순히 검색어의 조합(Ngram)만을 사용해 이를 검색의 기초로 삼았다. 기계적 패턴과 검색어의 조합에 기반을 둬서 검색 알고리즘을 디자인했기에 구글은 알고리즘을 손쉽게 시험하고, 개량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야후는 역사의 뒤안길로 점점 사라지고, 구글은 오늘날에 이르러 검색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구글은 ‘인지 편의성(human-friendliness)을 버렸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블록체인 기술로 인한 산업혁명도 마찬가지다.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비즈니스 논리와 사상의 관성을 버리고 새로운 눈으로 서비스를 기획해야 한다. ’기존의 가치를 얼마나 향상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버릴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7 TPS를 15 TPS로 높인다고 해서, 이를 또 수백 TPS로 높인다고 해서 블록체인 비즈니스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경쟁자보다 더 빠르게, 더 낮은 비용으로, 더 높은 질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성공한다는 공식은 중앙화된 서비스로 비즈니스를 운영한 이들의 성공전략에 불과하다. 성능(스펙)은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지언정,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다. 새뮤엘 랭리의 비행기는 라이트 형제가 만든 비행기보다 강한 엔진을 가지고 있었고, 더 정교했으며, 더 안정적인 디자인을 취하고 있었다. 야후의 검색 알고리즘은 구글의 것보다 더 정교했고, 체계적이었으며, 더 함축적인 의미의 검색결과를 선별하여 구성되어 있었다.


정량적 진보가 아닌, 질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 자체의 안정성을 포기하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을 바탕으로 비행기를 설계했고, 구글은 ‘인지친화적인(human-friendly) 검색 알고리즘 원칙을 포기하는’ 과감한 원칙에 기반을 둬 자사의 검색엔진을 디자인했다. 블록체인 기반 비즈니스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관념을 과감하게 포기할 필요가 있다.


버릴 수 있기에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라이트 형제는 ‘기체의 안정성’을 버림으로써 ‘기체의 경량화와 유연성’을 얻었다. 구글은 ‘검색엔진 알고리즘의 인지친화성(human-friendliness)’를 버림으로서 ‘연산성능(throughput)과 유연성’을 얻었다. 비단 앞서 소개한 사례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거의 모든 기술 혁명은 기존의 가치를 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세계 1차 대전에서 유럽 각국은 평지에서의 대열을 갖춘 명예로운 전투라는 구시대의 낭만적 가치를 버리고 참호전을 택함으로서 인명의 손실을 줄였다. 얼마전 배달의 민족은 알고리즘 문제해결 방법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사람이 직접 배달 요청을 중개하게 함으로써 사업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얻었고, 네이버와 같은 대형 경쟁자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배달 앱 시장의 1위를 차지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 물리학의 정합성을 벗어나서 사유할 수 있었던 용기가 있었기에 상대성 이론을 완성할 수 있었으며, 아마존은 ‘물리적 지점망을 보유하는 데서 오는 시장력(Market Power)’이라는 가치를 과감히 포기함으로써 오늘날 전세계의 유통시장을 잠식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블록체인 비즈니스를 개척하려는 이는 무엇을 버려야 할까? 


‘자신을 버려야 한다.’ 사업적 주체가 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블록체인의 시대정신이 여기 있다. 블록체인은 플랫폼 사업이 아니다. 온라인 사업하듯 돗자리를 깔고 사용료를 받을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분산화된 서비스는 중앙화된 서비스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을 온체인에서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블록체인 기반의 서비스를 개시하려는 기업이 사업적 주체로서의 ‘자신’을 버리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를 2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2부: https://brunch.co.kr/@thomas001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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