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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준 Sep 17. 2018

혁명은 언제나 변두리에서 시작된다 (2부)

앞서 1부(https://brunch.co.kr/@thomas00128/2에서, ‘블록체인 기반의 서비스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사업 주체로서의 자신을 버려야 한다’고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블록체인 기반의 서비스를 개시하려는 기업이 사업적 주체로서의 ‘자신’을 버리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장점이 떠오른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는 중앙화된 평가 시스템이 적용되기 어려운 분야 중 하나이다. 과연 상대의 재산과 학력, 키와 몸무게만으로 그가 좋은 배우자가 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까? 


(1) 중앙화된 솔류션으로는 규모의 경제가 성립되지 않은 분야에 진출하여 탈중앙적 규모의 경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규모의 경제가 성립하지 않는 분야에서는 거대기업이 생기기 힘들다. 중앙화된 경쟁 사업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블록체인은 이러한 분야에서 탈중앙화된 거래 플랫폼을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존에 존재하는 신용평가 방식을 생각해보자. 은행이나 대부업체는 중앙화 된 신용평가 방식으로 차용자의 신용을 평가한다. 대출을 희망하는 이가 평소에 카드 대금, 통신 요금, 관리비나 세금 등을 제때 냈는지를 평가하는 식이다. 이러한 신용평가 방식은 부족한 점이 많다. 경제활동을 막 시작한 이들은 신용점수가 낮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발생할 소득에 대해서도 유연하게 신용평가를 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금융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선진국에서도 비-제도권 금융은 사라지지 않는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부모나 친척, 친구 등에게서 돈을 빌리곤 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비-제도적 금융에 스마트 컨트랙트를 이용한 신뢰성을 더 할 수 있다면 이들을 위한 탈중앙적 금융 플랫폼이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블록체인으로 탈중앙적 규모의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곳은 금융업 뿐만이 아니다. 중매, 패션, 엔터테인먼트, Q&A 등 중앙적 일괄 평가의 질이 떨어져 탈중앙적, 국소단위의 집단지성이 더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분야라면 블록체인에 기반한 서비스가 들어설 여지가 있다.               


"Hodl" 이라는 맞춤법 틀린 표현이 말해주듯, '존버'는 중앙화된 자본주의의 위험중립적인 투자관점에서 보면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혁명은 비합리적 주체가 이루어내기 마련이다.

(2) ‘규모의 불-경제’가 작동하는 영역에 발을 들일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기업은 위험 중립적이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이상적인 상황에서, 기업은 가장 많은 수익이 예상되는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이는 아마존의 기업 경영 전략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업은 도박하지 못한다. 여기서 도박이란, 잠재적 수익은 높지만, 위험이 상대적으로 더 높아 기대 순수익이 낮거나 혹은 마이너스인 투자를 말한다. 로또 복권을 사면 이론적으로 1000원의 비용을 들여 수십억의 이익을 얻는 것이 가능하지만, 삼성과 같은 대기업은 로또 복권을 사지 않는다. 복권을 사는 행위는 잠재수익률이 매우 높지만, 수익을 실현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훨씬 낮으므로 그 기대 수익이 마이너스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기업의 보수적인 투자성향은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나타난다. 할리우드의 대형 영화 제작사는 실험적인 시도를 하기보다는 흥행이 어느 정도 검증된 프렌차이즈 영화를 만든다. 이것이 2010년대 헐리우드 영화계에 히어로 물의 속편이 범람하는 까닭이다. 삼성과 같은 초일류 기업이 스마트 폰 기술을 먼저 접했지만, 시장에 터치식 스마트 폰을 애플보다 먼저 출시하지 못한 이유도 기업의 보수적인 투자성향 때문이다. 기업이 성공적일수록, 그 규모가 클수록 투자의 성향은 위험 중립적으로 변하게 된다.     

 

그러나 코닥, 시어즈, 모토롤라, 소니 등의 사례 등이 보여주듯, 세계적인 기업은 모험하지 않기 때문에 큰 손해를 보곤 한다. 혁신과 혁명은 위험을 치열하게 끌어안을 수 있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위험을 받아드릴 수 없다면 진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경제에는 위험 선호 투자자들이 해야 하는 역할이 있다.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의 사업 모델은 위험 선호 투자자들을 경제 주체의 하나로로서 상정할 수 있다. 기대 수익이 마이너스라 중앙화된 기업이 도저히 진입하지 못하는 영역의 투자행위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만약 기존의 중앙화된 사업주체로 이루어진 자본시장의 논리에 따른다면, 비트코인 초기 채굴자와 같은 경제적 주체는 절대로 나타날 수 없다. 비트코인의 초기, 채굴자는 무정부주의적 꿈을 믿는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중앙화된 기업이 비트코인 채굴을 그저 찌질한 (nerdy) 프로그래머들의 소꿉놀이 정도로 치부하고 있을 때, 탈중앙화된 화폐에 대한 믿음을 공유했던 이들은 비트코인을 묵묵히 채굴했다. 이들 채굴자는 궁극적으로 비트코인의 가치가 오를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 당시 채굴행위의 낮은 채산성은 이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도박’에 나선 수많은 채굴자가 있었기에 비트코인은 기존의 기업이 상상치 못했던 화폐로서 거듭날 수 있었다.  

    

‘존버 (hodl)’는 암호화폐 산업의 초창기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질 한 때의 서글픈 투기현상이 아니다. 위험 선호적 투자는 탈중앙화된 자본시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경제행위이다. 위험 중립적인 경제 주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기존의 중앙화된 자본시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형태의 투자가 탈중앙적 자본시장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다. ‘존버(hodl)’ 투자자는 낮은 평균 기대 수익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고정비용을 지출하며 시스템에 긍정적 외부효과를 발생시킨다.      


비단 투자 행위 뿐이 아니다. 유튜브가 탈중앙화된 컨텐츠 제작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저는 유명 UCC 제작자가 되리라는 꿈을 꾸며 컨텐츠를 만들어낸다. 이들은 대게의 경우 제작비용도 건지지 못한다는 현실도 감내하며 컨텐츠를 만든다. ‘존버’하는 것이다. 이처럼 탈중앙화된 경제 시스템은 위험 추구 투자자를 경제의 당연한 하나의 축으로 상정하고 작동할 수 있다. 블록체인은 이처럼 탈중앙화된 경제 체제의 장점을 중앙화된 서비스 주체보다 더 잘 융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법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한다. '필로폰'이라고 불리우는 메탐페타민은 1960년대만 하더라도 약국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비만 치료제'였다. 

(3) 탈-법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단기적인 전략으로서 아직 규제가 제정되지 않은 영역으로 파고들어 블록체인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블록체인에서는 사업의 주체가 탈중앙화되어 있으므로 정부 당국이 규제를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발자가 탈법적 서비스가 이루어질 것을 참작하고 플랫폼을 디자인하는 것은 꽤 흔한 일이다. 예들 들어 P2P 파일 쉐어링 서비스 중 하나였던 토렌트의 경우, 토렌트의 개발자는 P2P 서비스가 장래에 저작물을 불법으로 공유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개발자는 토렌트 서비스를 널리 퍼트리기 위해 서비스 초창기에 직접 성인물에 대한 시드를 유지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탈법적 서비스 기획이 이루어진 또 다른 예로서 우버를 들 수 있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는 택시 운행을 엄격하게 감독한다. 당국에 택시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으면 영업을 할 수가 없을뿐더러, 택시 운행권이 백만 달러가 넘은 금액에 거래되는 곳도 있었다. 우버는 이런 정부의 규제가 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에 착안해서, 탈중앙적인 개인운송업 플랫폼을 만들었다. 일정 자격요건을 갖춘 이들이라면 누구든지 우버를 통해 승객들을 중개받을 수 있었다. 비트코인 또한 서비스 초창기에 마약, 불법포르노, 해킹으로 얻은 개인정보, 장물 등 불법적인 시장의 송금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서비스의 세력을 급속히 넓혀갔다.      

         

법의 그물이 성글어도 빠뜨리는 법이 없다고는 하나, 그것도 ‘나’라는 사업적 주체가 성립할 때의 이야기이다. 토렌트 기술의 개발자가 저작권 위반으로 처벌받지 않은 이유는 토렌트로 공유되는 불법 저작물에 개발자라는 주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탈법적 남용이 우려되는 기술을 만들어도 그 탈법적 남용이 다수의 타인에 의해 탈중앙적으로 이루어지면 법의 망이 이를 모두 잡아내기 힘들다. 이 때문에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금융 서비스가 현재 각국에 존재하는 외환 관리법의 구속을 받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사법비용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일본에서 1% 대의 금리로 유동성을 확보하여, 러시아에서 10% 대의 대출을 하는 식의 차익거래가 성립할 수 있다. 즉, 블록체인의 탈중앙성과 익명성을 이용하여 개인이 해외로부터 금융상품을 ‘직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탈중앙적 자본주의는 진보가 아닌 혁명이다.  새로운 질서는 새로운 사상을 필요로 한다. 

(4) ‘나’라는 사업적 주체를 포기함으로써, 정치적 합의, 법률적 규제에서 벗어나 다음과 같은 자유로운 사상적 시도를 할 수 있다.   

             

1) 재산권의 새로운 정의     

2) 투표권의 새로운 정의     

3) 외부효과의 보상/처벌 방식의 재정의     

4) 가치 보상 체계의 새로운 원천 발굴 (발권효과) 시도를 할 수 있다.   

            

위에 나열한 새로운 사상적 시도를 다시 하나하나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재산권의 새로운 정의:               


기존 경제학적 관념에서 재산권은 ‘재화에 대한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소유권’으로서 정의된다. 그러나 에릭 포스너가 저서 급진적 시장(Radical Market)에서 지적했듯이, 재산권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정의할 경우 시장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부동산에 대한 기존의 재산권을 인정할 경우, 토지는 그 토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 분배되지 않을 여지가 있다. 알박기 때문이다. 기업이 공장을 짓거나, 대대적인 부동산 개발을 하려고 해도 그 토지를 점유하는 이들 중 단 한 명이라도 토지를 넘기지 않으면 이러한 사업을 시작조차 할 수 없다. 크립토 이코노미에서 가상자산(코인과 토큰)은 상대적으로 기존의 재산권 정의에서 자유로우므로 재산권을 다르게 정의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예를 들어 블록체인으로 도메인에 대한 일시적 사용권을 상시 경매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것을 상정할 수 있다. 이러면 도메인 네임은 그 도메인에 대해 가장 지급의향이 높은 사람에게 분배되며, 사회적 효용은 증가한다. 비록 비슷한 시도(네임코인)는 실패로 돌아갔으나, 이는 사용자 UX를 고려하지 않은 서비스 기획에 의한 실패이지, 경제적 모델 자체에 결함이 있어서는 아니다.               


2) 투표권의 새로운 정의:        

       

블록체인의 거버넌스(의사결정/정치 구조)는 1인 1표제라는 현대 민주주의의 대전제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 이 때문에 블록체인의 거버넌스는 1인 1표제 때문에 일어나는 여러 부작용을 해소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에릭포스너가 주창한 것처럼 개인이 일정한 숫자의 투표권을 받고,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의제를 골라 일정한 규칙(제곱근 투표방식)에 따라 이 투표권을 자유롭게 몰아 쓸 수 있다면 사회적 효용이 최대화되도록 사회적 의사결정을 유도할 수 있다. 이처럼 더 효율적인 거버넌스를 갖춤으로써 블록체인 기반의 경제 공동체는 법적으로 그 거버넌스가 명시된 주식회사보다 더 큰 경쟁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오스(EOS)가 기존의 대리민주주의 원칙을 그대로 답습하여 거버넌스 구조를 설계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지 모른다.               


3) 외부효과의 보상/처벌 방식의 재정의        

       

기존의 시장 자본주의에서는 가치생산과 보상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거래가 성립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긍정적 외부효과를 갖는 많은 거래가 충분히 일어나지 못하고, 부정적 외부효과가 나타나는 거래는 너무 많이 일어나는 부작용이 나타나게 되었다. 현대 자유민주주의 체계에서는 이를 국가라는 중앙적 집단이 일괄적으로 규제와 조세, 공기업 운영, 국가기관 운용 등으로 일부 해결하고 있으나, 이 역시 부정부패나 임의적 행정집행, 비효율적 의사결정과 같은 많은 부작용을 보인다. 기술의 발전으로 이러한 비효율을 시장메커니즘을 도입하여 해결할 여지가 생기고는 있으나, 이런 새로운 체제의 도입에는 많은 정치적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이 이런 문제는 잘 해결되지 않고 있다. 블록체인기반 크립토 경제에서는 이러한 외부효과의 내재화를 시장메커니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블록체인 개발자가 자의적으로 룰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시장 친화적 해결책을 도입하기 위해서 의회의 동의를 받을 필요도, 정치적 캠페인을 벌일 필요도, 사용자를 일일이 설득할 필요도 없다. 개발자가 만든 규칙이 궁극적으로 건강한 크립토이코노미를 만들면 자연스럽게 사용자가 늘 것이고, 개발자가 만들어낸 규칙에 결함이 있다면 크립토이코노미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사용자는 늘지 않을 것이다. 이더리움 가스비 책정 메커니즘에 VCG 옥션이나 kth price 옥션 같은 새로운 시도를 할 여지가 있다는 지적등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4) 가치 보상 체계의 새로운 원천 발굴 (발권효과)         

      

블록체인은 기본적으로 발권력을 가진다. 이러한 발권력을 바탕으로 블록체인은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발생시키는 시장 참여자에게 보상을 내려줄 원천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러한 보상은 블록체인 내의 고정비용을 지출하여 플랫폼 사용자들에게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주는 이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비트코인의 경우, 채굴노드는 블록생성에 참여함으로써 시스템에 두 가지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발생시킨다. 1) 블록 생성자가 추가됨으로써 블록체인 전체의 안정성과 신뢰성이 높아진다. 2) 거래 장부를 기록함으로써 블록체인이 작동될 수 있게 된다. 이런 효과는 시스템 전체에 미치는 긍정적 외부효과로서, 채굴자에 대한 거래 당사자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 메커니즘을 직접적으로 적용하여 채굴자에게 보상을 주기 어렵다. 비트코인 블록체인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블록 생성시 마다 채굴 노드에게 비트코인을 발행해 주는 프로토콜을 만들었다.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비트코인 소유자 모두에게 간접적으로 세금을 거두어 채굴노드에게 보상하는 것이다. 이처럼 블록체인은 발행을 통한 간접 조세가 가능하므로 시장메커니즘에 의지하지 않는 새로운 보상체계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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