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가 바뀌면 보이는 것도 달라진다

by 천시로

오랜 지인이 스타트업으로 떠났을 때, 나는 솔직히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10년 넘게 대기업에서 쌓은 내공이 있었으니까.

1년 후, 그는 다시 대기업으로 돌아왔다.

"시스템이 없더라고. 뭘 해야 할지 아무도 안 알려줘."

처음엔 환경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는 비즈니스가 바뀌었다는 걸 몰랐던 게 아니었다. 다만, 너무 오래 한 자리에 있었던 탓에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최적화된 사람인지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걸 몰랐다. 틀려서가 아니었다. 지구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직도 그렇다. 비즈니스가 어느 사이클에 있는지는, 그 안에 깊이 박혀 있을수록 늦게 보인다.


비즈니스에는 사이클이 있다.

성장기는 스타트업이 전형적인 모습이다. 어제 없던 팀이 오늘 생기고, 지난달 세운 계획이 이번 달엔 이미 낡은 것이 된다. 시스템보다 판단이 앞서고, 원칙보다 속도가 우선이다. 누군가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길이 없는 곳에서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답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빛나는 시기다.

성숙기는 대기업이 익숙한 풍경이다. 성장의 속도는 느려지고, 효율이 화두가 된다. 수십 년간 쌓인 원칙이 있고, 검증된 기준이 있다. 그 시스템 안에서 정밀하게 움직이는 것이 곧 성과다. 빠른 실험보다 정확한 판단이, 즉흥적인 결정보다 치밀한 계획이 요구되는 시기다.


사이클이 바뀌면 지도가 바뀐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지도 대신 나침반만 들여다본다. 이 사이클은 조용히 바뀐다. 지도가 바뀌었다고 누군가 공지해주지 않는다. 스스로 읽어야 한다.


HR이든, 마케팅이든, 개발이든 직무는 관계없다.

마케터를 예로 들어보자. 성장기엔 시장을 뚫는 공격적인 실험이 역할이다. 검증되지 않은 채널에 베팅하고, 빠르게 결과를 보고, 다시 방향을 튼다.

그런데 성숙기엔 다르다. 브랜드를 지키며 효율을 높이는 정교함이 요구된다. 같은 마케터지만, 요구되는 감각이 완전히 달라진다.

어떤 직무든 마찬가지다.

비즈니스 사이클 변화에 따라 역할의 무게중심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내 지인은 결국 돌아온 자리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제대로 봤다고 했다.

"나는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을 잘 운영하는 사람이었지, 시스템을 처음부터 만드는 사람이 아니었어."

지인뿐만이 아니다. 한 걸음 물러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속한 기업의 비즈니스는 어떤 비즈니스 사이클 위에 서 있는가. 그리고 지금의 자리가, 당신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너무 오래, 너무 가까이 있었던 건 아닌가.


가끔은 한 걸음 물러서서 봐야 한다.

지도가 바뀌었는데, 나침반만 들여다보고 있었던 건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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