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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구오 Apr 16. 2023

제주일지 II

그들과의 찰나같은 만남이라

       여행의 많은 부분을 함께 한 스텝 친구 H양. 그녀의 소개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을 것 같다. 나보다 한 살 어렸지만 왠지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편했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매니저 N양과의 첫 면담을 마친 후였다. 다른 스텝들은 왜 아무런 리액션을 취하지 않았는지 너무 궁금했기에, H양을 만나게 되어 흥분상태였다. 나중에 듣기로 H양은 내가 미친 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다. 첫 만남에, 그것도 매니저를 앞에 두고 '여기 이상하지 않았냐'고 묻던 내 모습에⋯. 하지만 그것은 당위성의 문제였기에 다시 돌아갔어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아무튼 그녀와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눈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그 날은 나의 첫 근무날이었고, 청소가 끝난 저녁 시간에는 아무 할 일도 없었다. 갓 오픈한 게스트하우스에 게스트가 있을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나는 라운지에 앉아서 컴퓨터를 갖고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었는데 H양이 등장했다. 그 자리에서 서로 말을 놓기로 하고, 동문시장에 갈 건데 같이 가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사실 나는 그때 동문시장이 뭔지 처음 알았다. 그만큼 제주에 대해 무지했다는 반증이랄까. 어쨌든, 우리는 저녁을 먹어야 했기에, 어색함과 친근함 사이의 어색한 감정으로 동문시장에 갔다. 그 곳은 조용하고 어둑한 주변 골목과 다르게 사람으로 가득하고 '핫'한 시장이었다. 쏟아지는 선택지와 인파로 인해 기가 빨려버린 우리 둘은 닭강정과 튀김김밥을 포장해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으며 우리는 새로운 계획을 짰다. 카페에서 동행을 구해 여행을 하는 방법이었다. 게스트하우스 스텝 자리를 구하기 위해 가입해야 했던 네*버 카페가 있었는데, 그 곳에는 여행 동행자를 구하는 카테고리도 있었다. 문득 글을 읽다가 괜찮은 조건의 여행자분이 계셔서 연락을 해보고 싶던 찰나에, H양을 회유하여 여행에 동참시키는 건 어떨까 싶었다. 왜냐면 우리는 뚜벅이 여행자니까⋯ 얻는 게 더 많을 거라 생각했다. H양도 의외로 흔쾌히 동의했고, 그 여행자분도 바로 오케이 하셨다. 우리는 카톡방을 만들어서 모레에 약속을 잡았고, 그렇게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을 앞두게 되었다.


       그 다음날, 나는 홀로 여행에 떠났다. 흐린 날씨에 많은 여행객들, 그렇게 좋은 조건은 아니었지만 내 마음은 가볍고 설렜다. 서우봉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펼쳐지는 하늘과 함덕해수욕장의 경치가 아름다웠다. 그리고 만개한 유채꽃까지. 그 앞에 서서 사진을 찍는 커플들 사이에 껴서 나도 삼각대로 셀프 사진을 남겨보려고 애썼다. 음⋯ 결과물은 썩 그렇게 좋지 못했다. 역시 혼자만의 여행에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는 법이다. 왠지 팍 식어버린 마음으로 서우봉 둘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진지동굴로 가는 표지판을 따라 걷다가 왠지 길을 잃었다. 길치는 아니라 생각하는데, 체면이 있으니 그냥 길이 복잡했던 걸로 하자.


       잘못된 길로 가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막다른 길에 계시던 한 아저씨가 그 사실을 내게 일러주었다. 이 쪽으로 가면 목장만 있다고, 내려가는 길을 뒤로 돌아나가야 된다고 알려주셨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저씨와 함께 길을 걸어 나가게 됐다. 같이 걷는 김에 그 분과 몇마디 이야기를 나눴다. 그 곳에 있던 말 목장에서 일하시고 계신다는 아저씨, 그 분의 표정에서 왠지 모를 안정감이 느껴졌다. 문득 그런 경치를 보며 동물과 교감하며 산다면 그건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니가 뭔데 평가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저씨의 보폭에 맞춰 여유로움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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