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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 Aug 10. 2022

은색의 그녀, 2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고서 그녀와 나는 큰 길가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체격이 있어 보이는 남자가 길 건너편에서 손을 흔들었다. 통통한 몸매임에도 얄상한 얼굴에 오버핏 셔츠의 그는 그녀와 자주 만나던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이내 길을 건너 10여분 정도를 걸었다.

 “괜찮아,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나가도 돼.”

 한 발치 떨어져서 따라가던 내가 신경 쓰였는지 그녀는 내 옆으로 와서 자신이 일본에 있을 당시에 읽었던 책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거기서 일 할 때에는 번역본 말고 원서로 봤지.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작가들, 요시모토 바나나랑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무슨 책이든 처음에 쓰인 언어로 보는 게 가장 좋다고 하니까 말이야.”

 글을 쓰겠다고 결심하진 않았으나 독서모임을 자주 다니던 나는 그런 주제에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모퉁이를 몇 번 돌고 길을 한 번 더 건널 때까지 그녀는 일본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작가들만의 느낌 있잖아. 특유의 메마른 듯하면서도 부드럽게 흘러가고 슬픈지 외로운 건지 모르겠지만 울리는 것들. 난 그런 느낌이 좋아서 계속 찾아 읽게 되더라. 맞아, 에쿠니 가오리도 유명해! 언제 사인회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엔 별로 관심이 없었지. 어… 그 책은 읽어보지 않았는데 어때? 다음에 읽어볼까?”

 나는 얼마 전에 읽었던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책을 이야기했다. 지금은 내용도 떠오르지 않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은사자, 그러니까 알비노에 걸린 사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던 것이다. 희소하다 못해 배척당하고 쓸쓸하게 죽어간다는 이야기라 설명했던가? 전설도 아니고 동화도 아닌 이야기로 기억하고 그렇게 설명을 했다. 그럼에도 책에 대해서 이야기할 거라 상상하지도 못했던 탓에 나는 술이 깨도록 조잘조잘 말을 했다.


 조만간 우리는 모퉁이에 있는 핸드폰 대리점의 옆 작은 입구로 내려갔다. 빛이 새어 나오지 않는 검은 문을 열고 들어가며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어두운 것인지 붉은 것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새빨간 조명과 작은 장식들이 놓인 복도에 들어서면서 그녀는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들뜬 것이라 보였지만 사실 나란히 걷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좁은 곳이라 그랬을 것이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는 노랫소리와 고함소리가 쏟아져 나왔고 휘청거리며 오가는 사람들을 피해 우리는 미로 같은 복도를 걸었다. 나는 그녀를 따라 걸을 때마다 취기가 다시금 올라와 어지러움을 느꼈다.

 가로등 아래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나아 보이던 그 남자는 우리를 중간의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미로처럼 복잡한 복도에 비해서 그 방은 비교적 편안했다. 나는 U자로 된 소파 끄트머리에 조용히 앉았다. 메마른 스펀지 같은 촉감의 소파와 아무것도 없는 검은색 테이블에 주백색의 비교적 평범한 조명, 노래방 기계와 재떨이 사이에서 그녀도 약간은 긴장한 모습이었다. U자의 가장 안쪽에 앉아서 괜찮을 거라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 남자가 메뉴판을 들고 들어왔다.

 이미 마시고 와서 이거 정도면 되겠는데, 현금으로 하면 할인해드려요, 이것도 서비스로 해주면 오케이.

 평소에 상상하지도 못하던 가격을 손쉽게 주문한 그녀는 게이바에서 본 것보다 훨씬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곧이어 술과 과자와 간단한 안주가 놓이고 처음 보는 남자 다섯 명이 쪼르르 들어왔다. 그녀를 보고 일렬로 선 사람들과 굉장히 고심하는 그녀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서점에서 책을 고르듯, 술에 맞는 안주를 고르듯, 저녁거리 반찬을 고르듯, 오늘 먹을 고기를 고르듯. 그녀가 없다고 말하자 통통한 그 남자는 다섯 명과 쪼르르 나갔다.

 “저는 안 할래요. 아니, 못하겠어요.”

 그녀는 그럴 수 있다며 웃었다. 처음이면 당연히 그런다고, 그리고 익숙해지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다. 당시의 나는 흔치 않은 경험 정도로 생각할 뿐이라 그 말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거에 익숙해지면 안 돼.”


 조금 있으니 또 다른 네 명이 들어와서 일렬로 섰다. 그녀는 맨 마지막에 들어온 사람을 골랐다. 검은 셔츠에 회색 슬랙스, 나보다 조금 큰 키, 마른 몸매에 날카로운 눈매, 힘을 준 듯 안 준 듯 다듬은 짧은 머리. 그녀는 나에 대한 말도 대신해주었다.

 “그럼 제가 대신 앉아도 되겠죠?”

 우리를 이곳으로 안내해준 남자가 물었고 그녀는 괜찮다고 말했다. 술이 나오고 그녀와 그 남자들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보니 그들은 진한 화장으로 떡칠을 해놓았고, 짙은 향수 냄새가 담배냄새와 술냄새에 섞여서 뿜어져 나왔다. 금방 취해서는 아무 말이나 하는 그녀를 옆에 두고 두 남자는 무슨 말에도 웃어 보였다. 자신이 무슨 수술을 했다는 말이나 다른 남자들이 어떻다는 말, 나와 어떻게 만났으며 왜 같이 왔다는 말까지 그녀는 모든 것을 거리낌 없이 쏟아냈다. 그 모습에 신물이 나버려서 나는 떫떠름한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도망을 쳤다.

 “복도 끝 왼쪽 계단으로 가면 있어요.”

 맞은 편의 남자가 말해 주었다.




 정신을 차리고 돌아왔을 때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서슴없이 스킨십을 하며 옆의 남자를 붙잡은 그녀와 그에 장단을 맞추는 남자, 술을 권하며 마시는 척 몰래 버리는 모습과 이미 취한 그녀에게 끊임없이 술을 따르는 장면 속에서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것은 성별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잡고 잡힌 모습에서 나는 다시금 어지러움을 느꼈다. 먼저 가보겠다고 말을 하고 나와야지, 자리로 돌아가며 그 결심을 할 뿐이었다.

 “어딜 갔다가 이제 온 거야!”

 그녀는 문학 소년이라는 낯부끄러운 말로 나를 부르며 아이 다루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기에 오면서 했던 이야기들 때문이었다. 나는 화장실을 못 찾아서 조금 늦었다며, 예의상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느냐 물었다.

 “내 인생 얘기해주고 있었지, 기구하고 슬프고 소설 같은 이야기 말이야. 근데 이 남자들은 가슴도 없으면서 괜찮다고 비웃는 거 있지! 우리 애기는 그렇게 이야기 잘 들어줬는데, 머리 좀 컸다고 말이야. 가슴 없는 여자도 여자라고!”

 “섭섭하게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선택을 받은 남자는 애교를 부리며 그녀의 팔을 끌었다. 그의 품으로 향하던 그녀는 자리로 돌아가는 듯싶었으나 갑자기 앞에 있던 과자를 더 큰 접시에 쏟아부었다. 스테인리스로 된 오목하고 반짝이는 두 접시가 그녀의 앞에 놓였다. 그러면서 테이블에는 과자가 뒤섞인 과일화채와 이리저리 튀어 나간 과자들로 난장판이 되었다. 그들은 무얼 하나 지켜볼 뿐이었다. 그녀는 접시를 뒤집어 놓더니 손바닥을 가운데에 두고 다섯 손가락을 펼쳐서 하나씩 집어 들었다.

 “너희가 아무리 뭐라 해도 말이야, 나도 가슴이 있다고! 자, 이러면 어때!”

 양손에 하나씩, 그 접시들은 그녀의 가슴이 되었다. 노래방 기계의 빨갛고 파란 조명과 남자들과 나의 모습이 반사된 그것은 생각보다 컸다. 왜소한 그녀의 몸과 비율이 맞지 않아서 대충 만든 종이인형의 옷처럼 보일 정도였다. 새하얀 그녀의 손은 접시를 한껏 부여잡았지만 불안하기 짝이 없었고, 손가락들이 겨우 그것을 받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자신만만하게 일어나는 그녀의 모습에 남자들은 웃었다. 유난스럽게, 이전보다 훨씬 크게 웃었다. 그 웃음에 취했는지 그녀도 덩달아 웃었다.

 “누나, 뭐하시는 거예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과 접시를 잡으려 하자 소중한 것을 지키듯 그녀는 반대편으로 몸을 틀었다. 옆에 있던 남자의 품으로 들어가며 그녀는 장난스레 웃을 뿐이었다. 때마침 그 남자는 왼팔로 그녀를 감싸 안았다. 잠깐 서로를 바라보던 그들. 그녀의 오른손에 쥐어진 접시가 바닥에 떨어지며 한없이 가벼운 금속음을 냈다.

 “만져볼래?”

 대답은 듣지도 않고 그녀가 직접 남자의 오른손을 가져다 자신의 오른쪽 가슴으로 잡아 끌 동안, 그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항도 하지 않았으며 텅 빈 웃음만 보였다. 흘러내리던 그녀의 셔츠를 한껏 뚫고 들어가는 검은 팔. 남자의 손이 살에 닿고서도 그녀는 별 말이 없었다. 그 남자를 바라보며 답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진짜 없네?”

 와하하, 진짜로 웃으며 그는 손을 뺐다. 그녀도 그저 웃었다. 나는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남은 한쪽 가슴도 바닥에 떨어졌다. 한번 튕기고 옆으로 구르며 가냘픈 소리가 울렸다.

 “그러지 말고 술이나 더 마시자, 자!”

 맞은편의 남자가 술잔을 채워서 들어 올리니 그녀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 앉았다. 나는 대충 시늉을 하고 테이블 밑에 시들을 발로 끌어와 집었다. 술인지 물인지 끈적한 뭔가가 잔뜩 묻은 그것을 하나로 포개어 그녀와 가장 먼 곳에 두었다. 이미 그녀는 그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술을 한껏 들이켜고 나서는 그 남자들과 비슷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새벽 6시, 그녀가 먼저 일어나자고 할 때까지 나는 그곳에 있었다. 취기가 더 오른 그녀는 이후에 별다른 소동을 벌이지 않았는데, 오히려 늘어져서는 일본에서 있던 자잘한 일들을 늘어놨을 뿐이었다. 남자들은 그럼에도 일관되게 웃어 보이며 술을 버렸다.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서 그들을 바라봤다. 아무튼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고 나오자 바깥은 이미 아침이었다. 등산복 차림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우리를 지나쳐 지하철역으로 걸어가셨다. 길 건너편의 돼지국밥집에서 한 무리의 남자들이 소주를 마시고 있었고, 우리 같은 손님을 찾으려는 택시가 길가에 어슬렁거렸다. 그녀가 모든 계산을 하여서 나는 숙취해소제를 사 왔다. 물 한 모금에 한 포를 털어 넣는 그녀의 모습에서 부스스하게 부푼 머리와 푸석푸석해진 피부가 눈에 띄었다. 건물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등진 그녀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즐거웠다며, 집에 가겠다며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나중에 작가가 되면 내 이야기 꼭 써줘야 한다! 그리고 그만한 인세 대신에 술 한 번 더 사주는 걸로, 알았지?”

 “알았어요, 조심히 가세요.”

 정말로 나를 문학 소년이라 생각한 그 말을 끝으로 택시는 순식간에 멀어졌다. 은회색 택시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나는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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