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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 Jul 14. 2022

세탁기 안에, 1

 “뭐 하는 거야, 미쳤어? 빨리 나와!!”

 나는 그의 팔뚝을 잡는다. 그는 지금 세탁기로 들어가려 한다.


 우리는 5년간의 연애를 거치고 결혼에 도달했다. 광주과기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뒤 서울대에 어느 연구실로 채용된 직후였다. 편의점부터 카페와 식당에서 알바를 하며 연애 중이던 그는 결혼을 하고 함께 서울에서 살자고 말했다. 나는 불안했다. 이제 막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계약직으로 들어가는 연구원의 수입을 생각해보라. 하지만 집이 생긴다면 이야기는 달랐다. 그의 부모님은 돈이 정말 많았다. 둘이 살 만한 서울의 아파트 한 채와 어느 정도의 생활비는 쉽게 줄 정도로.

 결혼은 약식으로 진행하고 대대적으로 알리지는 않았다. 나는 속물로 보일까 두려워서, 그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서. 모든 살림살이도 그의 부모님이 준비해 주셨다. 냉장고와 식기세척기, 드럼 세탁기는 살림에 비해 조금 컸다. 어차피 잘 안 보는 거라며 텔레비전 대신에 빔 프로젝터와 스피커를 놓았다. 회갈색 소파는 밝은 나무 식탁과 거실장에 잘 어울렸다. 그러나 어떠한 요구사항도 없이 그냥 주는 것들은 묘한 의심을 키우기 마련. 때마다 그는 나를 안심시켰다.

 “그럴 분들이 아니야. 걱정 말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와. 혹시 무슨 일 생겨도 내가 다 막아줄게.”

 당시에 그는 정상이었으며 나는 그를 믿었다. 전업주부(夫)가 꿈이라던 말도 믿었다.


 그의 생활력은 경이로웠다. 식비는 계획보다 매월 2만 원 정도가 남았다. 그는 그 돈으로 말일이 되면 조금 비싼 고기와 싼 와인을 사 왔다. 아침은 식빵과 과일 몇 조각에 커피 한잔. 항상 먼저 일어난 그는 아침을 다 준비하고서 나를 깨웠다. 저녁은 또 어떻고! 매일 새 밥에다가 새로운 반찬으로 저녁을 준비해줬다. 봄에는 쑥 된장국, 여름에는 오이냉국, 겨울에는 톤지루. 그는 국물에 진심이었고 그에 걸맞은 음식 솜씨가 있었다.

 그는 작은 방 하나를 내 서재로 꾸며주었다. 널찍한 책상에 작은 책장 하나, 내가 쓰던 스탠드와 컴퓨터를 놓았다. 책상도 뚝딱 조립하고 작은 무드등을 골라와서는 금세 분위기를 잡았다. 새벽이 되도록 일을 하다가 나오면 안방에서 새근새근 자는 소리가 들렸다. 살금살금 이불에 들어가면 그는 돌아 누우며 고생했어, 하곤 나를 끌어안았다. 주말에는 데이트를 했다. 같이 빨래를 널고 마트에 가는 것부터 매운 닭발과 주먹밥에 소맥을 말고, 거하게 취하면 침대에서 뒹굴었다. 우리는 출산 계획이 없을 뿐 섹스리스가 아니었으므로 밤이 짧았다. 부모님의 독촉은 귓등으로 흘리고 우리 둘만의 삶을 꿈꿨다.

 어느 주말에는 그가 산부인과에 가자고 했다. 임신이 가능한지, 그러니까 나중을 위해서 검사를 받아보자는 말이었다. 그도 검사를 받았다.

 “아내분은 별 이상 없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주기가 불규칙적일 수 있는데 너무 힘들면 약을 처방해드릴 수 있어요. 문제는 남편분인데…”


 세탁기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그 이후였다. 처음에는 쭈그리고 앉아서 돌돌 거리는 안쪽을 유심히 관찰했다. 30분, 1시간, 점점 길어지다가 한 나절이 넘도록 그는 꼼짝하지 않았다.

 “난 너만 있으면 충분해. 애초에 우리 아이도 생각 안 했잖아.”

 그는 말이 없었다.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주부로서 그의 업무는 이전처럼 완벽했다. 오직 주말에만 베란다 한 귀퉁이 세탁기 앞에 앉아 있었다. 점심 뭐 먹을까, 물어봐야 그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일어났다. 그러나 점심을 먹고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방석을 챙겨 그의 옆에 앉았다. 가만히 그를 안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다음 주에는 아예 식탁 의자 하나가 세탁기 앞으로 옮겨졌다.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위로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다음 주도 마찬가지였다. 시부모님에게 연락을 하고 병원에 데려가야겠어. 시부모님은 그의 무정자증을 아직 모른다.


 “들어갈 수도 없는데 왜 그러는 거야!”

 왼팔과 머리가 들어간 상태의 그는 꾸역꾸역 몸을 밀어 넣었다. 평소 운동도 하지 않던 사람인데 남자라서, 뭔가 단단히 홀려서 그의 힘을 감당할 수 없었다. 도움을 요청할 정신이 없었다. 오른 팔뚝을 잡고 거의 울다시피 매달렸다. 그러자 그가 짧게 말했다. 지금껏 세탁기 앞에 있으면서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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