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들을 위한 명상 소사이어티 '센터원' - 고요의 바다 2기(4회기)
명상은 늘 가까이에 있다. 우리가 무심코 디디는 발걸음과 흐르는 호흡이 이미 명상의 문턱이기 때문이다. Asi 님(노상충 대표님)은 이러한 통찰을 “명상은 발바닥 밑에 있으며, 코끝에 걸려 있다”라고 표현한다.
고요와 충만은 먼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언제든 눈을 돌려 마주할 수 있는 일상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평범한 순간조차 경이로 가득한 ‘지금 여기’가 된다. 들숨을 의미하는 아나(āna), 날숨을 뜻하는 아빠나(apāna), 그리고 알아차림을 의미하는 사띠(sati)가 자연스럽게 하나로(아나빠나-사띠) 어우러지는 경험이 펼쳐진다.
호흡이 코끝을 넘어 부드럽게 복부와 하단전까지 퍼지면, 숨이 한층 더 깊어지고 느려져 그 섬세한 흐름을 온전히 체험할 수 있다. 붓다도 바로 이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호흡과 알아차림’의 원리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으며, 이후 전개된 다양한 명상법들 역시 결국 이러한 뿌리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다.
《장자》 ‘대종사’ 편에서도 이와 유사한 통찰이 나온다.
“진인(眞人)은 발뒤꿈치로 숨을 쉰다”라는 구절은, 평온한 마음 상태에서 호흡이 몸 전체로 스며든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범부는 목구멍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외부 자극에 쉽게 휘둘리는 반면, 진인은 자신이 딛고 선 발바닥까지 의식을 확장해 깊은 숨을 쉰다. 단순히 ‘콧구멍으로 들이마신다’라는 물리적 현상을 넘어, 한 호흡 한 호흡이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 명료한 자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는 곧 ‘알아차림’, 즉 명상의 본질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잡는 호흡(pranayama)’ 은 몸속 에너지 통로인 나디(nadi)를 정화(shodhana)하여 미묘한 기운까지 다스리는 원리를 담고 있다. 이는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에 제시된 라자요가(Rāja Yoga)의 여덟 단계 가운데 네 번째인 프라나야마(prāṇāyāma)에 해당한다. 라자요가는 마음의 작용을 고요히 멈춰 삼매(samadhi)와 해탈(moksha)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데,
1. 야마(yama)와
2. 니야마(niyama)가 도덕률과 계행(戒行) : 마음과 행동을 바르게 하고,
3. 아사나(āsana)와
4. 프라나야마(prāṇāyāma)가 육체적 통제의 과정이다. 즉 몸을 감독해야 비로소 호흡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다.
5. 프라트야하라(pratyāhāra)에서는 감각을 적절히 제어함으로써 외부 자극에 흔들리지 않는 내적 안정의 토대를 갖춘다.
6. 다라나(dhāraṇā)에서 정신 집중을 키우고,
7. 디야나(dhyāna)에서 대상을 초월한 무념무상의 상태로 나아가면,
8. 사마디(samādhi)에 머물러 완전한 몰입과 초월적 자각을 체험하게 된다.
불교 역시 비슷한 선정(禪定)의 계위를 설명한다.
초선에서는 감각적 욕망과 불선법(不善法)*을 버려 한결 맑은 고요에 들고, 이선에 이르면 지각과 관찰마저 잦아들어 고요가 더욱 깊어진다. 삼선에 이르면 기쁨조차 희미해지고 평온과 알아차림이 전면에 드러나며, 사선에서는 괴로움과 즐거움이라는 양극의 감각이 거의 사라진 평정과 바른 앎으로 말미암는 청정이 자리 잡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더욱 정밀해진 마음이 통찰(Insight)을 꽃피울 밑거름이 되는데, 그 너머 무색계 선정에 들어가면 대상 자체가 대부분 사라져 순수 의식만 남게 된다. 다만 불교는 무색계 선정 상태에만 머무르지 말고 사선의 바탕에서 통찰을 깨쳐야 진정한 지혜에 도달한다고 강조한다.
* 불선법(不善法) : 해로운 법을 뜻하며, 살생, 도둑질, 악담, 이간질, 탐욕, 성냄, 양심없음, 자만 등을 가리킨다.
요가철학에서 말하는 ‘투리야(turiya)’ 역시 이와 통하는 면이 있다. 투리야는 깨어 있음, 꿈꾸는 상태, 깊은 잠이라는 세 가지 의식 상태를 넘어서는 ‘네 번째 자각’으로서, 알아차림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경지를 직접 체험하고 그 자각을 흔들림 없이 일상으로 가져오는 데 핵심이 있다. 몸과 마음이 온전히 이완된 상태에서 사띠(sati), 즉 분명한 알아차림을 유지하면, 진정한 고요와 통찰이 열린다. 이것은 억지로 무엇을 붙잡거나 집중하려고 애쓰는 긴장된 방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놓여 있는 평온 속에서 스스로 맑아지는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맑아진 상태에선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일이 더욱 투명하게 드러나고, 그 미세한 순간을 포착하는 일이 곧 온전한 알아차림이 된다. 예를 들어 한 번 호흡을 들이마시면서 발바닥까지 찬찬히 의식을 퍼뜨린다면, 그 순간 이미 고요한 바다 한가운데서 우주와 함께 숨쉬고 있는 셈이다.
결국 명상은 일상 속에서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몸이 긴장된 것도 모른 채 하루를 보낸다. 그래서 바디스캔을 통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을 살피고, 느껴지는 뻣뻣함이나 통증이 있다면 의식적으로 풀어주는 이완 연습이 필요하다. 조금씩 익숙해지면 이완은 아주 짧은 순간에도 가능해지고, 고요 속에 머무는 일이 자연스러운 습관이 된다. 그렇게 쌓인 고요가 일상 전반으로 확장되면, 바깥의 자극이 예전만큼 강렬하게 정신을 뒤흔들지 못한다. 순간적으로 분노나 불안이 솟아오르더라도 얼른 알아차리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데, 이런 정(定)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혜(慧)는 더욱 선명한 빛을 발한다. 삶의 여러 굴곡 속에서도 ‘다시 알아차림으로 돌아오고’, ‘놓쳤다가 또 되찾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명상은 더 이상 특별한 시간에만 하는 수련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관통하는 힘이 된다.
삼매(samādhi)나 투리야(turiya) 같은 심오한 체험이 소중한 까닭은, 그 어떤 감각적 대상과도 바꿀 수 없는 깊고도 무한한 자유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삼매나 투리야가 아니더라도 명상으로 단 한 번이라도 그 진정한 고요를 맛본 사람이라면 결코 그 길을 완전히 놓아버릴 수 없다. 이것이 명상의 진정한 힘이자 알아차림의 매력이며, 궁극적으로는 내면 깊숙이 자리한 고요 속에서 모든 현상과 상호작용하면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길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고요는 늘 우리 곁에 있으며, 발밑을 살피라는 조고각하(照顧脚下)를 떠올리며 걸음을 내디디는 바로 그 순간 내 안에 늘 존재하던 맑은 알아차림의 문이 다시 열리기 시작한다. 코끝에서 발바닥까지 이어지는 호흡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때, 우리는 이미 지금 이 자리에서 명상의 한가운데에 서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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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배우나요?
명상의 매커니즘: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명상의 원리를 체계적으로 알아봅니다.
내 안의 지도(Map) 만들기: 각자에게 맞는 ‘명상 로드맵’을 발견하고, 일상에서도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합니다.
언제, 어디서?
기간: 4월 5일(토)부터 5주간
시간: 매주 토요일 오후 2~5시
장소: 센터원(해방촌) : 서울 용산구 신흥로 11, 녹사평역 도보 4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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