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아래는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한국도로교통공단 <김경식의 오토쇼 으라차차 - 목.소.리> 코너 초대석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한 글입니다.
택배 일을 하거나, 앞으로 그 일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P.S. 얼마전 국악방송과 교보문고 유튜브 채널에서 나눈 대화도 브런치에 공유하려 했는데, 인터뷰 내용이 어디에 있는지 찾질 못했네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곧장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20대 초반에는 여러 아르바이트도 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도 잠깐 했었죠. 군대를 다녀온 뒤에는 사회생활을 하며 좋은 인연들이 생겼고, 그 계기로 광고회사를 차릴 수 있었습니다. 시작은 꽤 잘돼서 ‘운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함께 일하던 파트너가 돈을 빌린 뒤 잠적하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어요. 피해 금액 자체가 치명적이지는 않았지만, 프로젝트들이 동시에 막히면서 큰 타격이 왔죠.
힘들었던 건 그분이 과거에도 같은 수법으로 사기 전과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는 거예요. ‘사람을 도대체 어떻게 믿어야 하나’ 하는 불신이 커지면서 의욕도 급격히 떨어지고, 결국 모든 걸 내려놓고 싶어졌죠. 그 결과 약 1년 6개월 정도 은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통장 잔고에 20만 원이라는 숫자가 찍힌 걸 보는 순간, ‘이제 정말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돈을 조금씩 모아왔는데, 결국 남은 게 20만 원이라니 두렵더군요. ‘빨리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에,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떠오른 조건이 ‘될 수 있으면 사람들과 많이 부딪히지 않고, 월 500만 원 정도를 안정적으로 벌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였어요. 여러 일을 비교해보다 결국 ‘택배 일’을 선택하게 됐죠.
무엇보다 트럭을 사야 했습니다. 알바를 병행하며 돈을 모으려 했지만,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서 결국 어머니께 1,000만 원을 빌렸어요(그리고 택배를 시작하고 3개월만에 갚고요. 아무튼). 그렇게 화물차를 사고, 얼마간 수리한 뒤 운송장 프린터·바코드 스캐너·카트 같은 기본 장비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집배점장과 계약을 맺어 특정 구역을 인수받았죠.
택배기사를 하려면 화물차가 필요하고, 운전면허(2종 보통 가능), 화물운송종사자격증이 있어야 해요. 구역을 인수받아야만 택배기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거래처’라 부르기보다는 ‘집배점’ 혹은 ‘대리점’ 개념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입문 자체가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리 어렵지 않아요.
택배기사마다 근무 패턴이 모두 달라요. 배송만 하는 기사님들은 하루 4~6시간 정도로 끝내는 경우도 있지만, 아침에 터미널에 나와 물건을 분류하는 작업(일명 ‘까데기’)부터 시작해, 배송을 마친 후 저녁까지 집화 업무(업체가 한꺼번에 발송하는 물량을 수거)를 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아침 7시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일하기도 하고, 반대로 오후 한두 시에 나와 서너 시간 만에 마치는 기사님도 계시죠.
수입도 정말 다양합니다. 이른바 ‘좋은 구역’을 맡은 기사님들은 월 500~600만 원, 많게는 집화 물량을 많이 확보해 월 800~1,000만 원까지 벌기도 해요. 반면, 처음 시작하셨거나 ‘적당히만 하겠다’는 분들은 200~300만 원대 수익에 그칠 수 있죠.
그리고 노동 강도와 수익이 반드시 정비례하지 않습니다. 배송은 집집마다 방문해야 하니 한계가 있지만, 집화는 한 업체에서 대량 물건을 한 번에 싣기 때문에 더 많은 물량을 처리할 수 있거든요. 집화 거래처를 많이 확보하면 수익이 확 뛰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사업적으로 어떻게 택배에 접근할 수 있을지는 제이런점에서 택배가 생각보다 ‘사업’처럼 확장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이라면 매력인 것 같습니다. 책 《청년 택배기사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중 〈택배기사에게는 어떤 비전이 있을까〉를 보시면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네, 다시 생각해도 마음이 아픈데... 택배를 시작한 첫날부터 주차돼 있던 차를 살짝 박았거든요. 그래서 물어줄 돈을 계산해보니까, 그날 택배로 벌어들인 수익에서, 물어줄 금액을 빼니까 마이너스 60만 원쯤 되더라고요. 흔히 말하는 ‘초심자의 행운’이 아니라 ‘초심자의 불행’을 제대로 맛본 거예요. 그래도 그 일을 계기로 늘 조심하게 됐죠. 배송 실수나 분실 사례 등도 처음엔 몇 번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노하우가 쌓이면서 동선·시간 관리, 고객 대응 등에 익숙해지더라고요.
생수는 워낙 무겁잖아요. 하루 200~300팩씩 배송하니 처음엔 무척 힘들었어요.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무릎 관절 보호대도 착용해야 했고요. 그렇지만 오히려 ‘생수 배송까지 해봤으니 이제 웬만한 육체노동은 두렵지 않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나중에 일반 택배로 옮기니까 너무 가벼웠어요. 그래서 책에도 ‘출근길 발걸음이 누구보다 가볍다’고 적었죠.
크게 다친 적은 없고, 손에 물집이 잡히는 정도였어요. 오히려 일반 택배하던 시절, 장마철 빗길에 미끄러진 적이 몇 번 있었던 게 더 기억에 남아요(21년도에 비가 많이 왔거든요).
가장 흔한 대책은 물건을 내려놓고 이곳에 분명히 놓았다라고 사진을 찍는 거예요. 그래야 고객님도 “어디다 뒀는지” 확인할 수 있고, 기사도 “내가 여기 확실히 놔뒀다”는 걸 증명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맡았던 구역 중에는 대학교 기숙사가 있었는데, 거기는 CCTV가 없어서 분실 사고가 자주 터졌어요. 사진 찍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워 보여서, 기숙사·경비실·총무과 등을 찾아가 CCTV 설치를 건의했죠.
그러데 모두 우리들의 권한이 아니라고 하셔서 결국에 경비아저씨게서 못봐주시겠는지, 그러면 뭐 “총장님이라도 찾아가시든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기숙사에 CCTV를 설치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편지를 써서 총장실에 두고 온 적이 있어요. 다행히 이후 CCTV가 설치되고부터 분실 사고가 크게 줄었습니다. 학생들의 불편도 해소되었고, 택배기사로서 뿌듯했습니다.
‘택배는 빨리빨리 하는 게 최고다’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제 경험상 ‘조급하지 않은 마음’이 더 중요하더라고요. 사실 이건 택배뿐 아니라 어떤 일이든 비슷하겠지만, 마음이 급하면 작은 실수가 크게 번질 수 있습니다. 자칫 안전사고나 고객과의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쉽고요.
그래서 저는 틈날 때마다 ‘마음챙김’을 해요. 예를 들어 ‘내가 왜 이렇게 급해졌지? 지금 몸 어디가 긴장돼 있지?’ 등을 스스로 체크하고, 알아차린 즉시 숨을 고르고 이완하는 훈련을 합니다. 이런 습관이 자리 잡으면 사고 위험도 줄고, 정신적으로 훨씬 여유가 생기죠. 택배가 아니더라도, 모든 일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크게 두 가지가 생각나요. 첫째는 작업 환경 개선입니다. 야외노동이 많은 만큼, 기사들이 모이는 터미널에만이라도 최소한의 편의시설 지원이 필요하다고 봐요. 깨끗한 화장실이나, 휴게실 같은 곳이 더 잘 갖춰졌으면 좋겠죠.
둘째는 택배 단가와 수익 배분 구조의 투명성이에요. 택배 한 건당 얼마를 고객이 지불하면, 그 금액이 집화기사·집배점·택배사·배송기사에게 어떤 비율로 분배되는지 정확히 아는 분이 적거든요. 제 책에 예시로 자세히 적어두긴 했는데, 기사님들이 이 구조를 잘 알고 합리적으로 개선해나가면 좋겠습니다.
네, 사실 저는 4년제 대학을 다닌 적이 없어서 ‘고졸’로 소개되어 있는데요, 우리나라에는 ‘학점은행제’라는 제도가 있잖아요. 제가 6년 정도 틈틈이 학점을 모아서 학위를 취득하고, 지금은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석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왜 종교학이냐’고 물으시는데, 고등학교 시절부터 문학·예술에 관심이 많았고, 자연스레 인간 내면이나 종교에도 호기심을 느꼈어요. 택배 일을 통해 생계를 해결했다면, 종교학과 심리학 공부는 마음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대학원 수업에 매진하고 있어요. 틈틈이 새로운 책도 준비하고, 시나 칼럼도 쓰고 있습니다. 인터뷰가 끝나면 바로 수업에 또 수업에 가야하고요.
어떤 일이든 ‘열린 마음’과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재촉하더라도 잠깐 멈춰서서 호흡을 가다듬고, 따뜻한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우리가 스스로를 격려할 줄 알고, 또 서로를 격려할 수 있는 행복한 근로자의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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