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걸림돌이 주는 뜻밖의 선물

250602 심층심리학 - 김재영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by 김희우

우리 대부분은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사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면, 즉 ‘그림자’가 숨어 있다. 우리는 이 낯선 그림자를 애써 외면하고, ‘나’라는 틀을 단단히 쌓아 올리려 한다. 하지만 진실은 그 틀 너머에 있다. 인간은 본래 불완전한 존재라 모든 것을 다 품을 수는 없다. 이러한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나도 모르는 나를 찾아내어 하나로 합쳐 나가는 삶의 여정을 걷게 된다. 종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거나 보지 못했던 내면의 깊은 부분을 마주하게 돕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기독교의 그리스도 상징은 단순히 역사 속 실존 인물인 예수를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예수는 인류 전체의 마음과 무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린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구원의 모습, 즉 ‘원형’을 대표한다. 이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완전하고 보편적인 상징이며, 개인의 차원을 넘어 신비롭고 우주적인 존재의 형상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원형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역동적인 흐름 속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우리 안의 진정한 자아(Self) 역시 한 가지 모습으로만 머물러 있으면 살아 있을 수 없다. 자아는 쪼개지고 다시 합쳐지면서 생명력을 얻는다. 칼 융의 통찰처럼, 모든 에너지는 서로 반대되는 것들의 긴장과 상호작용에서 발생한다. 선과 악, 빛과 그림자처럼 상반되는 것들이 부딪히고 통합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다. 과거의 거대한 종교적, 사회적 변화들 또한 그 시대의 정신과 깊이 공명하며 일어난 ‘분열과 통합’의 과정이었다.



우리가 모르는 나를 통합해 나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오히려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겪을 수도 있다. 우리 안에는 보기 싫은 수많은 모습들이 숨어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나’의 일부라는 사실을 마주해야 한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대면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안다고 생각했던 ‘나’가 전부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 안에 부족하고 채워지지 않은 부분을 인정하고 다듬어가는 과정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데 꼭 필요한 걸음이다. 꿈을 꾸거나 종교 활동을 하거나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는 것 등은 바로 이런 부족함을 채우는 균형 잡기 활동과 같다. 이 활동들을 통해 우리는 내면의 성숙(초월 기능)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게 된다.



우리의 부족하고 결핍된 측면을 마주하고 조율하는 과정은 진정한 자아로 나아가는 필수적인 문턱이다. 이러한 보상 작용(compensatory functions)이 바로 꿈이나 종교, 그리고 진정한 대화가 ‘초월 기능(하나의 심리적 태도나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태도나 관점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향하는 길목인 것이다. 기도를 하고, 성서를 읽거나, 진심 어린 소통을 하면서 우리는 우리 안의 깊은 상징과 만날 수 있다. 이러한 통합의 과정이 진정한 영적인 삶이며 종교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더는 못 버티겠어"라고 외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왜 우리가 그 자리에 서 있는지를 깊이 성찰하는 것이다. 의미 있는 삶은 고통 없이 순탄한 길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를 이해하며 새롭게 창조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의심과 불안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온전한 삶을 위한 본질적인 요소이고, 진정한 삶은 죽음까지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세상은 혼돈 속에서 시작하지만, 인간은 그 속에서 질서(코스모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



칼 융이 그의 책 <욥에게 답하다>에서 신의 ‘어두운 측면’을 파헤쳤듯이, 상징은 때때로 무너지면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이는 상징을 있는 그대로 지키려 하는 종교적인 해석과는 달리, 상징이 무너지는 것을 허용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심리학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빅터 화이트와 융 사이의 갈등은 ‘선과 악의 이분법’을 넘어서려는 근대 이후의 영적 탐구를 잘 보여준다. 심리학은 악을 외면하거나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받아들이고, 알아차리며, 의식 속으로 가져오려 한다. 진정한 중재자는 양쪽에 모두 속하면서도 어느 한쪽에 완전히 갇히지 않는, 마치 위태로운 ‘지식의 다리’와 같다. 빅터 화이트의 삶이 보여주듯이, 진정한 중재자는 모두를 위해 싸우지만, 결국 누구에게도 온전히 환영받지 못하는 고독한 운명을 지닌다.



빅터 화이트가 마지막 편지에서 융의 말을 인용한 "Petrus scandali"(예수의 길을 막아섰던 베드로를 뜻하는 말, 마태복음 16:23)는 ‘걸림돌이지만 결국 성장을 이끄는 존재’라는 역설적인 의미를 통해 우리에게 삶의 깊은 진실을 전한다. 삶은 서로 반대되는 요소들을 함께 껴안고 살아가는 실존적인 고통이다. 그는 융이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었음에 감사하며, 그 관계에서 비롯된 여러 내적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여 자신의 일부로 만들었다. 그의 인생 자체가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복잡한 여정이었던 것이다. 삶의 의미와 방향을 근본적으로 묻는 종교의 역할, 그리고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내면의 결핍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상징으로서의 종교는 바로 이러한 통합의 과정 속에서 그 진정한 의미를 드러낸다. 우리가 보기 싫어했던, 보지 못했던 내면의 그림자를 마주하고 통합해 나가는 삶. 이것이 바로 Essential teleological tendency, 즉 삶의 본질적인 목적론적 경향이자 예수가 보여주고자 했던 영적인 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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