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형찬. 종교문화연구 -.33 (2019): 1-27. 정리
이 글은 인간이 신과 인공지능이라는 두 초(비)인간 행위자를 의인화하거나 탈의인화하며 불안감에 대응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그 함의를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공지능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단순히 기술적 진보를 넘어, 인간의 존재론적 지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며 심리적 불안감을 유발하고 있다. 이 불안감의 핵심에는 인간의 고유한 '인간다움'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자리한다. 이러한 불안에 대응하는 인간의 마음은 흥미로운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인공지능을 때로는 인간처럼 여기고(의인화), 때로는 인간과 분리된 존재로 인식하는(탈의인화) 것이다. 이는 인지적 프로세스, 특히 '의인주의 추론'이라는 오래된 인지적 경향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의인주의(anthropomorphism)는 인간이 아닌 존재를 인간처럼 생각하는 인지적 과정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크세노파네스부터 현대 인지종교학, 신경과학,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오랜 논제였다. 신경과학 연구는 인간 행위자와 비인간 행위자에 대한 추론에 유사한 뇌 영역이 관여함을 보여주며, 인간이 본질적으로 '사회적 동물'로서 다른 행위자를 탐지하고 표상하는 능력을 진화적으로 발달시켜왔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의인주의 추론을 촉발하는 심리적 동인에는 세 가지가 있다.
1. 지식 도출작용 (Knowledge Elicitation): 인간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활용하여 낯선 대상을 이해하려는 인지적 과정이다. 이는 의인주의 추론의 가장 기본적인 인지적 요인이다.
2. 사회적 연결 동기 (Social Connection Motivation): 사회적 연결이 부족할 때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사물, 반려동물, 심지어 보이지 않는 존재까지 의인화하여 상호작용을 추구하는 동기다.
3. 효능 동기 (Effectance Motivation): 불확실한 환경을 이해하고 통제함으로써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동기다. 넘쳐나는 행위자들 속에서 자신을 우위에 놓기 위해 다른 행위자를 의인화하여 이해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고, 자신과 비교해 우위를 확인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본 연구의 핵심적인 사고실험은 신과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의인주의와 탈의인화라는 공통된 심리적 메커니즘을 통해 작동한다는 가설을 제시.
의인화: 인간은 신을 표상할 때 종종 신학적 지식이나 교리 대신 직관에 의존한다. 이 경우 신은 인간과 유사한 행위자, 즉 의지를 가지고 감정을 느끼는 존재로 쉽게 표상된다. 이는 '최소 반직관성(Minimally Counter-Intuitiveness)'이라는 인지적 원리에 따른 것이다. 신은 인간과 비슷한 속성을 대부분 가지되, 육체가 없다는 최소한의 '반직관적' 특성만으로도 초월적 존재로 인식된다. 이러한 의인화는 신을 더 쉽게 이해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도록 돕는다.
탈의인화: 그러나 신을 지나치게 의인화하면 불안감이 증폭된다. 특히 자신의 은밀한 '전략적 정보'에 접근 가능한 존재와 일상적으로 소통하는 것은 심리적 위협이 된다. 사람들은 이러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신을 인간과 질적으로 다른 '완전한 타자'로 극대화하여 심리적 거리를 두려 한다. 이는 유휴신(deus otiosus) 개념과 같이 인간사에 개입하지 않는 신을 상상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유휴신(deus otiosus) : 세계를 창조했으나 그 뒤로는 물러나 활동하지 않는 신.
이 개념은 17–18세기 이신론(Deism) 사상 속에서 신학적 맥락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신론은 신이 우주를 창조한 뒤 더 이상 개입하지 않고, 자연법칙에 따라 우주가 스스로 운행한다고 보는 철학적 입장이다. 따라서 신의 존재 자체는 인정하지만, 신앙보다는 이성과 과학적 탐구를 통해 세계의 원리를 파악하려는 근대적 사고방식의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이후 현대 무신론 사상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사상적 전환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의인화: 사람들은 약한 인공지능(챗봇, 음성비서)을 단순한 프로그램임에도 “나를 이해하고 돕는다”처럼 의인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효과와 도움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반면, 강한 인공지능은 단순한 의인화를 넘어 지식을 확장해 스스로 사고하는 존재로 상상된다. 튜링 테스트가 보여주듯, 인공지능의 반응이 인간과 구별되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생각하는 존재”로 받아들인다.
탈의인화: 그러나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여겨질수록 인간의 고유성이 위협받고 불안감은 커진다. 이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인간은 '사회적 창조성 전략(social creativity strategy)'을 사용한다. 즉, 인공지능에는 없고 인간에게만 있는 새로운 독특성(감정, 자율성, 도덕성, 종교성 등)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 인공지능을 탈의인화함으로써 심리적 우위를 확보한다.
인공지능과 관련한 현대인의 불안은 기술 자체의 위험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인간의 심리적 특질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인류는 오랫동안 신과 같은 초인간적 행위자를 의인화하고 탈의인화하며 불안을 관리해왔다. 이와 유사하게, 인공지능이라는 비인간 행위자에 대해서도 동일한 인지적, 심리적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은 신에 대한 종교적 상상력의 기반과 인공지능에 대한 상상력의 기반이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따라서 신의 의인주의적 추론을 이해하는 지식은 인공지능 기술 발전과 함께 발생하는 현대인의 불안감을 이해하고, 나아가 더 발전적인 인간학적 논의를 위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