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종교학의 ‘종교’ 개념 고찰. 종교와 문화(1)

구형찬.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2022). 42, 71-97. 정리

by 김희우

제1: 종교를 구성하는 인지적 모듈과 개념적 기반


1.1 종교 현상의 인지적 분해: 최소 반직관적(MCI) 개념의 역할

인지종교학은 종교가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여러 독립적인 인지적 모듈의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이 중에서도 종교적 믿음이 문화적으로 성공적으로 전파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 바로 '최소 반직관적(Minimally Counterintuitive, MCI)' 개념이다.


파스칼 보이어(Pascal Boyer)를 비롯한 학자들은 인간의 인지 시스템이 직관적인 범주(예: 사람, 동물, 도구)에 따라 세상을 이해하지만, 이 직관적 범주를 최소한으로 위배하는 개념들이 특별히 기억하기 쉽고 매력적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생각하는 돌'은 직관적 범주인 '돌'이 '사람'의 특성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반직관적이다. 반면, '날아다니는 자동차'는 단지 직관적 범주에 새로운 속성('나는 것')이 추가된 것이기에 상대적으로 덜 흥미롭다. 종교적 믿음, 즉 '죽지 않는 조상신'이나 '전지전능한 존재'는 MCI 개념의 전형적인 예시이다.


이들은 직관적인 '사람' 범주를 따르면서도 '죽지 않음'이나 '무한한 지식'과 같은 최소한의 반직관적 특성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특성은 개념을 독특하고 기억하기 쉽게 만들어, 구전이나 문화적 전파 과정에서 쉽게 살아남고 널리 퍼지게 되는 인지적 이점을 갖는다. MCI 개념은 종교적 관념이 왜 특정 형태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복잡한 신학적 교리보다 단순한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더 쉽게 확산되는지를 인지적으로 설명하는 강력한 틀을 제공한다.


1.2 종교적 행위자(Agents) 생성의 인지적 메커니즘

종교적 신념의 핵심에는 '초자연적 행위자', 즉 신, 정령, 조상신과 같은 개념이 있다. CSR은 이러한 존재들이 인간의 보편적인 인지적 모듈에 의해 자연스럽게 생성되고 강화된다고 설명한다.


첫 번째는 '과잉 행위자 탐지 장치(Hyperactive Agency Detection Device, HADD)'이다. 이는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 생존을 위해 발전시킨 인지적 기제이다. 예를 들어, 덤불 속의 미세한 소리나 그림자를 재빨리 잠재적 포식자(행위자)로 인식하는 능력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HADD는 불확실한 환경에서 행위자의 존재를 과잉으로 탐지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인지적 경향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초자연적 행위자를 상상하고 믿게 만드는 심리적 토대가 된다.


두 번째는 '마음 이론(Theory of Mind, ToM)'이다. ToM은 타인의 의도, 감정, 신념을 추론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HADD를 통해 감지된 모호한 행위자 개념은 ToM을 통해 '마음'을 가진 존재로 구체화된다. 즉, 인간은 초자연적 존재가 자신을 보고 있거나, 자신의 기도를 듣고 있으며, 특정 의도나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추론한다. 신적 존재에게 전지전능함이나 도덕적 심판자의 역할을 부여하는 것 역시 ToM의 확장을 통해 이루어진다.


HADD와 ToM은 조나단 하이트(Jonathan Haidt)의 도덕적 토대 이론과 결합되어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초자연적 행위자에게 부여된 '전지적(omniscience)' 마음은 인간의 도덕적 직관을 감시하고 강화하는 '빅 갓(Big Gods)' 개념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신적 존재는 단순히 힘을 가진 초월적 존재를 넘어, 사회적 규범을 위반하는 행위를 감시하고 처벌하는 도덕적 감시자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인간 집단 내의 협력과 신뢰를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개별적인 인지 모듈들은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초자연적 행위자'라는 개념을 인지적으로 생성하고, 그에게 '마음'을 부여하며, 그 마음이 '도덕적' 기능을 수행하도록 만드는 일련의 인지적 구성 과정을 형성한다. HADD가 모호한 자극에서 '누군가 있다'는 인상을 만드는 첫 번째 단계라면, ToM은 이 '누군가'에게 '생각과 의도'를 부여하여 복합적인 행위자로 만든다. MCI는 이 행위자에게 '불멸'이나 '전지성'과 같은 기억하기 쉬운 특성을 부여하고, 하이트의 도덕적 토대는 이 행위자가 사회적 결속을 위한 '도덕적 감시자' 역할을 수행하도록 기능적 맥락을 제공한다. 이 과정은 CSR이 종교를 단일한 실체가 아닌, 다양한 인지적 모듈의 복잡한 상호작용 결과물로 본다는 핵심 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표 : 종교 현상을 설명하는 주요 인지적 메커니즘 및 기능


제2장: 종교 개념에 대한 주요 이론 모델 및 학술적 쟁점 심화


2.1 종교의 기원: 부산물 대 적응 모델, 그리고 새로운 통합 모델

인지종교학 내부의 주요 논쟁은 종교가 진화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비롯된다. 이는 '부산물(By-product) 모델'과 '적응(Adaptation) 모델'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부산물 모델파스칼 보이어를 중심으로 한 이론으로, 종교가 생존에 직접적인 이점 없이 우연히 발생한 인지적 결과물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이 관점에 따르면, HADD, ToM, MCI와 같은 인간의 다른 인지 능력들은 생존에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하지만, 종교는 이 능력들이 의도치 않게 만들어낸 '부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종교적 믿음 자체는 진화적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인지적 특성의 결과라는 주장이다.


반면, 적응 모델은 아란 노렌자얀(Ara Norenzayan)을 비롯한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으로, 종교가 집단 간 협력과 사회적 결속을 강화함으로써 생존과 번영에 진화적 이점을 제공하는 '적응적' 특성이라는 입장이다. 이들은 종교적 신념과 의례가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고, 이타주의를 촉진하며, 집단의 생존 능력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했다고 본다.

초기 학계에서는 이 두 모델이 이분법적인 대립각을 세웠으나, 현대 CSR 연구는 이러한 단순한 구분을 넘어선 공진화적(Co-evolutionary)이고 통합적인 관점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는 '어느 쪽이 옳은가?'라는 질문 대신, '부산물로 시작된 인지적 경향이 어떻게 문화적 선택 압력에 의해 적응적 기능으로 재활용되었는가?'라는 더 복잡한 질문으로 논의를 확장한다. 즉, HADD와 같은 인지적 '기본 설정'이 우연히 발생한 '부산물'일지라도, 이러한 인지적 경향이 집단 결속과 같은 '적응적' 기능을 수행하는 특정 종교적 관념과 관행을 '선택적'으로 퍼뜨리고 강화했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유전자-문화 공진화(gene-culture co-evolution) 이론을 통해 더욱 명확하게 설명될 수 있으며, CSR 학계의 이론적 성숙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다.


2.2 종교적 실천: 의례와 집단 결속의 인지적 기제

인지종교학은 종교적 믿음뿐만 아니라, 의례(ritual)와 같은 종교적 실천 역시 인지적 차원에서 분석한다. 의례적 행위는 단순히 상징적이거나 의미론적인 행위가 아니라, 참여자들의 심리적 몰입을 강화하고, 집단 구성원 간의 신뢰와 협력을 구축하는 인지적 메커니즘을 내포한다. 예를 들어,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복잡하고 반복적인 의례는 참여자 간의 감정적 동기화를 촉진하고, 이는 곧 집단 정체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또한, CSR은 종교적 의례를 '비용 신호(Costly Signaling)' 이론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시간, 에너지, 심지어 재정적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비용이 많이 드는(costly)' 종교적 의례는 참여자의 진정한 헌신과 신뢰를 나타내는 강력한 신호 역할을 한다. 이러한 비용 신호는 종교 공동체 내에서 '무임승차자'를 걸러내는 기능을 하여, 집단 구성원 간의 협력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이처럼 의례는 단순히 신념을 표현하는 행위를 넘어, 사회적 결속과 협력을 인지적으로 촉진하는 중요한 기제로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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