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10 한국 그리스도교의 이해(1)
서양의 지성사는 오랫동안 ‘존재(Being)’를 돌덩이처럼 확고하게 고정된 실체로 이해해왔다. 이 관념은 '리얼리티(Reality)'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본래의 의미, 즉 '확실히 있다'는 입자적이고 고정된 개념에서 잘 드러난다. 이 사고방식에 따르면, 어떤 대상이 ‘현실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특정 시간과 공간 좌표를 점유하며, 그곳에 있으면 다른 곳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존재관은 종교적 세계관에도 깊이 뿌리내렸다. 신은 변치 않는 절대적 실체이며, 그의 말씀인 도그마는 흔들리지 않는 진리 그 자체로 여겨졌다. 우리의 자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비록 외형은 변할지라도, 본질적인 '나'라는 실체는 변치 않는다고 믿었다. 이 믿음은 안정감을 주었지만, 동시에 '나'라는 존재를 과거의 결정론적 틀 안에 가두고, 관계의 역동성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현대 물리학과 철학은 이 오랜 신화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양자역학은 물질의 본질이 입자만이 아닌 파동(wave)이라는 혁명적인 통찰을 제시했다. 파동은 한 지점에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퍼져나가며,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할 수 있다. 이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고정된 존재'라는 서양의 전통적 사고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존재의 본질이 멈춰있는 실체가 아니라, 끝없이 운동하는 '과정(Process)'이라면,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어떻게 재해석되어야 할까?
이러한 ‘과정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세상의 모든 것은 정지된 '사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사건'이다. 화이트헤드의 통찰처럼, A와 B라는 존재는 독립적인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의 요소를 받아들이고 거부하며 존재론적 변화를 겪는다. 이 상호작용의 흐름 속에서 모든 것은 매 순간 새롭게 구성된다. 나는 단독적인 실체가 아니라, 나와 외부 세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형성되는 존재인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철학적 유희가 아니다. 이 통찰은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만약 나라는 존재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완전히 동일한 존재가 아니다. 나는 매 순간 새로운 경험과 관계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된다. 이는 과거의 실패나 트라우마에 묶여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거대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나는 매 순간 나 자신을 새롭게 구성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존재가 파동하는 과정이라면, 진리 또한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해석의 과정' 아닐까? 종교가, 철학이, 심지어 가장 엄밀하다는 과학마저도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해석학적 언어'일 뿐이다. 과학적 발견이 기존의 이론을 뒤집는 것처럼, 우리의 인식은 언제나 새로운 경험과 통찰을 통해 수정되고 확장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날 다원주의적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진리는 어느 누구의 독점물도 될 수 없으며, 다양한 관점과 해석은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라는 거대한 파동을 이해하기 위한 각기 다른 시도들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고정된 실체를 찾기 위해 헤매는 것을 멈추고, '관계'와 '과정'의 바다에서 춤추는 우리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진리를 소유하려는 욕심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다름을 존중하고, 우리의 삶을 매 순간 새롭게 창조하는 자유와 책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멈춰있는 돌멩이가 아니라, 끝없이 흐르는 강물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