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10 한국 그리스도교의 이해(2)
'진리'는 언제나 인류를 매혹하는 가장 강력한 단어였다. 하지만 그 숭고한 이름 아래, 인류는 무수한 폭력을 정당화해왔다. 서구 열강이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제3세계를 식민지화하고 착취하는 과정의 밑바탕에는 하나의 확고한 '진리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가진 문명이 곧 진리이고, 너희의 야만은 버려야 할 것"이라는 독선적인 믿음이었다.
근대 서구 열강에게 '시빌라이제이션(Civilization)'은 단순한 문화적 확장을 넘어선, 자신들이 소유한 '합리적 인간 질서'를 '야만적 자연 상태'에 놓인 세계로 확장해야 하는 도덕적·신성한 의무, 즉 '문명화의 사명(Civilizing Mission)'이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관념은 서구의 팽창주의를 정당화하는 핵심적인 근거로 기능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탐험가 정신과 프론티어 정신은 단순한 모험심의 발현이 아니라, 이 '문명화의 사명'을 최전선에서 수행하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그들은 미지의 영역을 '발견'하고 '개척'함으로써 자연을 문화화하고 질서를 부여하는 영웅적 존재로 추앙받았다. 이 정신은 오늘날에도 기업가정신이나 혁신적 기술 개발의 원동력으로 재해석되며, 새로운 시장이나 영역을 '개척'하는 행위의 윤리적 정당성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이러한 제국주의적 진리관은 종교에서 또한 잘 나타나고 있다. 자신이 유일한 진리를 소유했다는 명분 아래, 타 종교와 문화를 '미신'으로 규정하고 배척했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단순명료한 구호는 '진리'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이 낳은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폭력적 선언이었다.
일본 제국주의 또한 이와 매우 흡사한 논리를 바탕으로 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했다. 일본은 서구의 압력 아래 근대화를 시작하면서, 서구 문명을 자신들의 기준으로 삼아 맹목적으로 수용했다. 이 과정에서 '탈아입구(脫亞入歐)', 즉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간다'는 슬로건을 내세웠는데, 이는 서구를 '문명'의 상징으로 보고, 아시아를 '야만'으로 규정하는 서구의 진리관을 그대로 내재화한 것이었다.
그 후, 일본이 군국주의를 강화하고 주변국을 침략할 때 내세운 명분 역시 서구 열강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서구의 제국주의적 침략으로부터 아시아를 해방시키고,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건설하여 아시아를 문명화하는 '윤리적 사명'을 띠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우리가 진리를 가지고 있으니 너희는 우리에게 복종하라"는 서구 제국주의의 논리를 아시아에서 그대로 재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근대 모더니즘의 이성이 종교적 진리에 던진 첫 번째 의문은 '주관적 의식'과 '객관적 실재' 사이의 간극에 대한 것이었다. 이미 칸트는 '물자체(Ding an sich)'와 우리가 인식하는 '현상(phenomenon)'을 구분하며, 인간의 인식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선언했다. 그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경험 가능한 현상뿐이며, 그 현상 너머에 있는 '존재 그 자체'는 결코 온전히 알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칸트의 통찰은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주장을 핵심으로 삼았던 전통적인 존재론(Ontology)을 무의미하게 만들었고,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던 모든 시도들의 철학적 기반을 흔들었다. 이는 종교적 지식이 객관적 증명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했으며, 이로 인해 종교는 더 이상 학문적 지식의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이후, 19세기부터 발전한 자연주의 과학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화했다. 종교적 경험이나 '계시'의 순간이 뇌의 특정 부분 활성화나 특정 리듬의 반복으로 유도되는 '엑스터시' 상태와 유사하다는 심리학적, 신경과학적 연구 결과들이 등장했다. 이는 종교적 신비 체험이 초자연적 존재의 개입이 아니라, 얼마든지 자연주의적 언어로 설명될 수 있는 현상임을 시사했다.
이러한 흐름은 초자연적인 것을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을 '나이브'한 자들로 치부하며, 종교적 지식의 불명예를 가속화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철학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우리는 더 이상 "신은 무엇인가?"라고 묻기보다, "신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무엇인가?"라고 물어야 하게 되었다. 이는 진리를 독점하려는 오만을 꺾고, '알 수 없음'의 영역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새로운 태도를 낳았다.
진정으로 성숙한 문명은 자신의 진리를 강요하지 않고, 타자의 신비에 귀 기울이는 자세에서 탄생한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진리의 이름으로 타인을 정복하려 했던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존재의 근원적 신비를 겸손하게 탐구하며 서로 다른 '앎'의 방식들을 존중하는 데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