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 신이라고 부른 것의 정체

250910 한국 그리스도교의 이해(3)

by 김희우

신이 사라진 자리

데카르트 이후, 지식의 주체가 신의 계시가 아닌 인간의 이성으로 옮겨오면서, 종교적 지식은 냉혹한 검증의 무대에 서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신은 이러하다"라는 주장에 대해 "그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묻기 시작했다.


이 질문에 가장 먼저 응답한 것은 자연주의적 관점이었다. 이 입장은 '환원주의*'를 통해 모든 현상의 원인을 자연의 법칙 안에서 찾는다. 예를 들어, 신비로운 '방언' 체험이나 '신과의 합일' 같은 종교적 경험은 영적 현상이 아니라, 과호흡이나 특정 리듬의 반복으로 인한 심리적·신체적 상태의 결과로 설명되었다. 종교적 의례 속에서 반복되는 북소리와 몸짓은 특정 뇌 부위를 활성화시켜 엑스터시 상태를 유도하고, 무의식의 경계를 허물어 억눌린 감정을 표출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주의적 시도는 초자연적 존재의 개입 없이도 종교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초월적 믿음을 '나이브'한 것으로 치부했다. 종교는 더 이상 초월적 진리가 아닌, 인간의 심리적 질서에서 비롯된 하나의 현상으로 전락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 논리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경험의 본질'을 놓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환원주의 : 복잡한 현상이나 높은 단계의 개념을 더 낮은 단계의 단순한 요소나 부분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철학적, 방법론적 입장


'현상'의 발견, 진리를 넘어선 존재의 심연

여기서 철학의 새로운 돌파구가 열렸다. 바로 칸트가 제시한 '인식의 한계'로부터 시작된 현상학적 접근이다. 칸트는 우리가 외부 세계의 '물자체(Ding an sich)'를 있는 그대로 알 수 없으며, 단지 우리의 인식 틀을 거쳐 가공된 '현상(phenomenon)'만을 경험한다고 주장했다. 이 통찰은 '존재론(Ontology)'의 무의미함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신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에 대한 경험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이러한 현상학적 관점은 종교학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신의 실재를 증명하는 대신, 종교적 경험 자체의 본질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상학자들은 '방언'이나 '합일' 같은 종교적 경험이 자연주의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일반적인 자연적 경험과는 질적으로 다른, 환원 불가능한 인간의 독특한 경험이라고 주장했다. 즉, 종교의 본질은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내면에서 겪는 궁극적인 경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모든 인간에게 종교적 경험을 할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며, 마치 예술이나 수학에 천재성이 있는 사람이 있듯이, 종교적 '천재성'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종교의 핵심적인 경험을 이끌어내는 존재들(예: 교주)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해석'이라는 예술, 상징계에서 창조되는 신성

그러나 여기서 또 하나의 깊은 통찰이 등장한다. 바로 ‘경험-해석 모델’이다. 이 모델은 현상학을 한 걸음 더 나아가, 순수한 경험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자크 라캉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실재 그 자체(실재계)를 직접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언어와 문화가 구성한 상징계를 통해서만 세계를 인식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종교에서 일어나는 경험은 근원적으로 동일할지라도, 그것을 표현하고 해석하는 방식은 언어와 문화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야훼'와 '알라', '공(空)'과 '합일'은 같은 경험을 가리키는 서로 다른 '해석의 언어'일 수 있다. 즉, 종교적 진리는 객관적 실재의 반영이 아니라, 주체가 경험을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표현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모든 종교의 근원적 경험은 동일할 수 있으나, 그 표현과 의미는 각자의 문화와 언어에 따라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통해 경험하는 정서와, 서구인이 'Love'라는 단어를 통해 경험하는 정서가 질적으로 다르듯, 종교적 경험 또한 맥락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대의 우리는 더 이상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신'이라는 미지의 물자체를 알 수 없으며, 심지어 종교적 경험 자체도 순수한 실체가 아닌 ‘해석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이 깨달음은 진리의 독점적 소유를 주장하며 타자를 배척하는 제국주의적 오만을 무너뜨리는 근본적인 출발점이다. 진정으로 성숙한 존재는 자신이 믿는 것이 곧 세계의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하는 대신, 존재의 신비 앞에서 자신의 '해석'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타자의 '해석'에 깊이 귀 기울이는 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슐라이어마허  vs 루돌프 오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