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일 할 건데 왜요?

by 김희우

택배일에 대해 생각할 때 처음으로 떠올랐던 건 이십 대 초반에 만났던 전 여자친구다.

그 친구는 집에 돈이 없으면 결코 할 수 없는, 비싼 악기를 전공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예술대학 중 한 곳을 다니고 있었다.

그 친구의 아버지 직업이 바로 택배 기사였다.

이미 지나간 인연의 자세한 사정을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친구에게 아버지는 극복하기 힘든 열등감이었고, 상처였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으로 택배 일이라는 게 사람들에게 쉽게 무시당하곤 하는 육체노동인 한 편, 딸에게 비싼 악기와 레슨비를 지원하며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있을 만큼 돈을 버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대학 졸업장 없이 가장 빨리 잃었던 8천만 원을 벌 수 있는 합법적인 일.

그런 일이 무엇인가 고민할 때 가장 먼저 택배가 떠오른 건 그 친구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있었던 것 같다.


두 번째로 떠올랐던 건 뭘 하며 돈을 벌어야 하나, 머리를 싸매고 있던 어느 저녁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났던 한 택배기사다.

3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택배기사로 느긋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 표정이 참 여유롭고 좋아 보여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물었다.

“택배 일 어때요?”

어떻게 생각하면 무례하고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이 질문에 그는 시원스레 이렇게 답해주었다.

“진작 안 한 게 후회돼요.”

바로 이런 답이 나올 줄은 몰랐기에 나도 모르게 급히 되물었다.

“왜요?”

“그게, 생각보다 벌이가 좋더라고요. 힘들긴 한데 다른 일에 비해 들이는 시간 대비 돈을 많이 벌어요.”

막연히 돈이 되는 일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되니 이건 또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택배 일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나 택배 일 할 거야.’

우선 주변에 선언부터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결심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이상한 반응들이 돌아왔다.

“택배와 관련된 새로운 사업을 하려는 거야?”

친구들을 만난 날, 택배 일을 하겠다고 하자 한 친구가 이렇게 물어왔다.

“아니, 그냥 택배일 할 건데?”

당당하게 대답했지만, 내 친구들은 내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네가 말하는 택배 일이라는 게 대체 뭘 말하는 거야? 무슨 사업인데?

“아, 그냥 ‘택배일’, 사업 같은 게 아니라. 인터넷으로 물건 사면 갖다 주는 그거!”

이렇게까지 얘기하니, 겨우 이해한 듯했다.

하지만 내 말뜻이 무언인지 깨닫는 그 순간 친구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창백해졌다.

“… 택배 기사?”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어오는 한 친구에게 더 이상 말할 의지도 없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다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씩 보태기 시작했다.

“대체 왜 그런 일을 하려는 거야?”

“제정신이야?”

“너 정말 사업이 제대로 망하긴 했구나?”

조롱하는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이렇게 물어오는 친구도 있었다.

기분이 상하진 않았다. 그들의 입장에선 내가 무슨 외계인처럼 보였을 것이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환경에서 자라왔고 돈을 벌기 위해 육체노동을 진지한 업으로 삼는다는 건 그들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잠깐 부모님에게 반항하고자 재미로 한두 달 한다면 모를까, 직업으로 삼는 건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다.

나의 경제적 상황과 배경은 친구들 것과는 많이 달랐다.

뜬금없고 조금은 민망한 고백이지만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중산층으로 보이는 가정에서 자랐다.

소위 ‘강남 8 학군’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강남 사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 때문인지 ‘잘 사는 집 아이'처럼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우리 집은 잘 사는 집이 아니었다.

친구들이 우리 집보다 훨씬 잘 산다는 건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조건과 배경으로 대놓고 차별하지는 않는, 최소한의 예의와 교양을 지키는 분위기,

흔히 ‘강남 8 학군에는 왕따가 없다’는 속설을 뒷받침하는 그 특유의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나와 내 친구들의 경제적 격차는 어린 시절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집에나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사정이 있고, 우리 집도 다르지 않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아버지는 주식투자로 전 재산을 날렸다.

그 일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그때 내가 너무 어렸던 터라 알 수 없지만,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에 친가로 보내져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다 자라 다시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을 때는 마치 남의 집에 입양된 것 마냥 한동안은 모든 게 낯설었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나아졌지만 우리 집은 항상 자산보다 빚이 더 많았고, 스무 살 무렵까지도 가족 네 명이 15평도 안 되는 낡은 상가주택에 살았다.

고등학교 때는 집을 뛰쳐나가 고시원을 전전하며 막노동을 했고, 그때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처음 해봤다.

군 제대 후에는 스피닝과 운동강사를 했으며 이후 무자본 창업을 하여 최저시급도 못 벌 때도 있었지만 수많은 밤을 지새우고 일을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게는 항상 돌아갈 집이 있었고, 정말 길거리에 나앉을 상황이라면 내게 손을 내밀어 줄 가족들이 있었다.

내가 아무리 스스로 독립적인 인간이고, 혼자 잘 살아왔어도 그건 변치 않는 사실이다.

이제는 내가 가족의 그늘이 되어주어야 한다.

많은 힘듦이 예상되지만 그런 고민할 여유도 없다.

나처럼 대학 입시에 편승조차 하지 않은, 취업률을 포함한 청년 통계의 가장 어두운 부분마다 위치한 궤도 밖 인간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어쨌든 친구들이 경악스럽다는 반응을 보이자 오히려 택배 일이 하루빨리하고 싶어졌다.

그들이 밑바닥으로 여기는, 상상도 하지 못한 그 자리에서 오로지 내 몸과 내 정신력으로 땀 흘려 돈을 벌고 싶었다.

그게 아니면 1년 반이라는 내 인생의 공백기에 영원히 멈춰있게 될 것만 같았다.

나는 정말 절실히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다시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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