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로 회사 대표에서 상봉동 택배기사가 되기까지

by 김희우

살면서 가장 많은 돈을 벌었던 시절은 광고 업계에 몸담았던 때다.

그때 나는 삼성역과 신논현 사이 테헤란로의 빌딩들을 점령하고 있는 수많은 코인 회사들을 상대로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내 나이는 20대 중반. 남들 같으면 군대를 다녀와 한창 대학생활을 하고 있을 시기였다.

코인이라고 하면 가상화폐가 아닌 코인노래방을 떠올리는 게 더 자연스러울 나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때 내가 했던 일은 ‘코인백서’를 쓰는 일이었다.

코인백서란 새로 론칭되는 코인에 대한, 그 코인을 만든 회사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소개서 같은 거다.

코인 투자자들은 이 백서를 참고해 코인의 투자 가치를 판단한다.

고로 잘 쓴 백서는 코인의 가치를 올리기도 하지만, 그 코인에 실질적인 가치가 없을 경우 투자자를 속이게 된다.

일을 시작할 때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한국의 코인 업계는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IT의 가면을 쓴 다단계였다.

온갖 근사해 보이는 말과 개념은 다 갖다 붙인 정체 모를 회사들이 일확천금을 미끼로 투자자들을 유혹했다. 돈이 진리이며 도덕이며 유일한 가치인 그곳은 잠시라도 한숨을 돌렸다가는 눈 뜬 채로 코 베이는 지옥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수백 명의 ‘대표’를 만나 미팅을 했다.

그러면서 정말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두루 접했다.

상당수 그들의 명함엔 여러 개의 직함이 적혀있고 말이 청산유수였다.

이제 막 유행하기 시작해 조금은 낯선 경제경영 용어들, 세상을 발아래 둔 듯 자신만만하다 못해 거만한 태도, 말끝마다 붙이는 ‘신사업’ 그리고 ‘돈’. 그럴싸한 겉치레를 두르고는 돈을 위해서는 양심도 팔아치울 수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아직 업계의 그런 분위기에 물들지 않았던 나는 그런 사람들을 경멸했다.

하지만 뻔히 보이는 사기꾼들과 불법적으로 엮이는 것만 피하면, 그 어떤 일보다 큰돈을 만질 수 있는 건 사실이었다.

백서를 하나 쓰면 천만 원에서 천오백만 원 정도의 돈이 들어왔다.

주변에서는 하루에도 상상할 수 없는 단위의 큰돈이 오가며 누군가는 천국에 또 누군가는 지옥에 갔다.

돈벌이의 즐거움을 알아갈수록 나는 점점 무감각해져 갔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그토록 경멸하던 그들의 어떤 부분을 스스로 답습하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포장하고 온갖 새로운 용어가 들어간 장황한 말들을 술술 내뱉고 있었다. 그걸 깨닫게 해 준 건 친구의 말 한마디였다.


“야, 너 좀 사기꾼 같아.”

반은 장난인 친구의 말에 나는 두개골이 반으로 갈라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 친구가 내 어떤 점을 보고 그런 말을 하는지 나 자신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업계에 처음 들어와 이런저런 사람들을 보고 느낀 혐오스러운 이질감이 그 친구의 말에 농축돼 있었다. 사실 그때 처음, 내가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사실을 직시했다.

"아, 지금 내가 잘못된 일을 하고 있구나,

이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는 건 나도 똑같은 사기꾼이 되는 거랑 마찬가지구나."

마침 얼마 되지 않아 업계에 피해금액이 1조원이 넘는 사건이 일어났다.

수많은 사람들의 돈을 갈취한 폰지사기 사건이었다.

폰지사기란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배당금을 주어 마치 실제로 투자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전형적인 다단계형 사기다.

그때 체포된 코인 회사의 대표는 직접적인 친분은 없어도, 나 역시 업계에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건은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사기꾼 같다, 생각은 했지만 이것들 정말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최악의 사기였구나.

돈이고 뭐고 하루빨리 그 바닥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 외엔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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